제1절 문학과 문학연구
우리는 먼저 문학文學이라는 용어가 포함하고 있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활동영역을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 그 하나는 시, 소설, 희곡과 같은 작품 그 자체, 또는 그 작품을 생산하는 예술활동을 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작품들을 대상으로 연구하여 학적學的인 체계를 세우는 학문활동을 지칭한다. 전자를 문학예술, 즉 문예文藝라고 한다면, 후자는 그 문예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學問을 뜻한다. 엄격히 말해서 문학은 그것이 學인 한, 후자를 지칭하는 것이고 전자는 문예라고 함이 더욱 타당할 듯이 보인다.
문예는 하나의 창조적 행위이며 인간의 상상력에 의한 정신적 산물spiritual product, 또는 그것을 산출하는 형성적 행위이다. 문예는 정서와 감정의 흐름으로서 감성적pathos 세계이며, 비논리적?비합리적 세계요, 주관적 세계이다. 이와 반면에 문학은 그러한 문예를 대상으로 학적인 체계를 세우고 그 원리를 추구하는 행위로서 이성적logos 세계이며 그것이 학문이라는 의미에 있어서 객관적?논리적?실증적이며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영역은 혼동되어 쓰여 오다가 최근에 와서야 더욱 명확하게 구별되었다.
우리는 먼저 문학과 문학연구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둘은 별개의 활동으로서 하나는 창조적인 것 즉 예술이라고 한다면, 다른 하나는 엄밀하게 말해서 과학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식의 일종이거나 학문의 일종이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통칭해왔던 문학이라는 용어 속에는 예술영역과 과학영역이라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영역이 포함되어 있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장文章이라는 용어가 이 두 활동영역을 대신해 왔고 문학이라는 용어는 근대 이후 literature를 문학으로 번역하여 사용한 일본을 통해서 들어와 통용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인식해야 할 것은 이 둘의 서로 다른 영역을 명백히 구별하는 일이다.
즉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이나 그 작품을 문예라고 하고 그 과정을 다루는 것이 문예창작론이라고 한다면 그 작품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학문적인 체계를 객관적으로 세우는 것을 문학이라고 하며 그것에 접근하기 위한 것이 문학이론인 셈이다.
이 책과 같은 문학이론서는 문학의 두 영역 중 학문에 관한 것이고 그것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시나 소설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가?’라고 하는 예술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시나 소설이라고 하는 구체적 존재를 대상으로 하여 그것에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기초이론서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영역을 명백히 구분했다고 해도 사정이 그렇게 수월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문예의 영역에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접근한다는 데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최근까지 문예와 문학이 동일하게 인식되어 왔다든가, ‘문학은 과연 연구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되풀이되어 제기되고 있다든가, 앞에서 르네 웰렉Rene Wellek이 ‘엄밀하게 말해서 과학은 아니라 하더라도’라고 말한 것은 모두 이 두 가지의 영역을 명백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즉, 문학이란 학문을 뜻하고 그것이 학문인 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요구하는 반면 그 대상이 되는 문학작품들은 그와 상반되는 주관적인 상상력에 의해 표출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연구대상과는 다르다. 문학과 문학연구를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연과학의 방법을 문학에 적용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문학에서 연구대상으로 하는 문학작품은 자연과학에서 연구대상으로 하는 것들과는 엄밀히 다르다. 문학의 연구대상인 문학작품들은 항상 동일한 차원에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들은 주관적으로 표출된 비논리적인 것으로서, 그 대상을 관찰하는 연구자의 주관에 따라 가치평가는 언제나 달라지게 마련이다. 즉, 자연과학의 대상들은 어느 시대 어느 연구자에게나 동일하게 인식되고 그 가치가 동일하다고 한다면 문학의 대상인 문학작품은 연구자 개개인에 따라, 나아가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항상 달리 인식될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문학은 논리적이고도 합리적인 진술을 지향하면서도 그 대상은 비논리적?비합리적?주관적인 것이기에 문학연구는 근본적인 모순점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학연구의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논리성과 객관성을 갖추어야 하면서도 그 대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감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연구대상인 문학작품에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 대상을 정확히 읽고 감상할 줄 알아야 하고 때로는 그것이 창작되기까지의 정신적 과정을 역으로 추적할 필요도 생기는 반면, 그것을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하여야 하는 상반된 정신활동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연구가에게는 이 두 가지의 상반된 정신활동을 어떻게 병치시키고 전환하느냐가 최대의 관건이자 어려움이라고 하겠다.
문학의 이 두 분야는 르네 웰렉R.Wellek의 말대로 구별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두 분야가 상호 배타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창작예술로서의 문학과 학문으로서의 문학은 상호 유기적인 관련 하에서 이해되고 연구되어야 한다.
창작예술로서의 문학을 경시한 문학연구는 공허한 것이 되기 쉽고 학문으로서의 문학을 도외시한 창작은 부질없는 생활의 기록이 되기 쉽다. 왜냐하면 학문으로서의 문학이론은 예술활동의 소산인 문학작품들에서 추출되어 정립된 것이며 창작으로서의 예술활동은 그 이론들의 토대 위에서 새롭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작품과 작가는 문학연구에 의해서 비로소 가치가 주어지며 그 결과로 문학사에서 위치를 부여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문학이라는 이 두 가지의 영역이 창조라는 측면과 일종의 지식이라고 하는 별개의 활동이면서 상호 유기적인 관련 하에 있음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