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공부는 우리가 영감 되었다고 말하는 그 본문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워가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배워가는 일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하나님의 성 품이 어떠한지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얻게 한다. 물론 예수님은 이 모든 것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가 되신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와 산상수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만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는 것의 전부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지 사복음서만 허락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많은 뜻을 품고 계심이 너무나 분명하다.
--- p.22, 「1. 진지한 성경공부는 유약한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중에서
초자연적 세계와 관련하여,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물어봐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성경 인물들과 저자들이 믿었던 초자연적 세계를 나는 과연 어느 정도나 믿고 있는가?" 부정적으로 질문한다면 다음과 같다. "나는 현대인으로서 성경 인물들과 저자들이 믿었던 초자연적 세계를 과연 어느 정도 무시해야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불편해지지 않는가?" 이 질문들에 정직하게 대답해 보라. 초자연적 세계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성경의 권위에 우리가 어느 정도로 진지한지 알게 될 것이다.
--- p.34, 「3. 진정성 있는 성경 읽기와 초자연적 세계」 중에서
성경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모든 피조물보다 선재하시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사들도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명백한 어조로 가르친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 "천사"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 자체가 하나님도 하나의 천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 천사가 '하나님'이심을 단언한다. 또한 본문에서 "복을 주다"라는 동사는 문법적으로 '단수형'이다. 이것이 문법적으로 복수형 동사였다면 야곱이 서로 다른 두 인격적 존재에게 아이들의 복을 구하고 있음을 의미했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 쓰인 단수형 동사는 두 신적인 존재의 하나 됨을 암시하고 있다.
--- p.108, 「16. 구약에 나타난 여호와의 천사」 중에서
성경 저자들은 망령(ghosts), 즉 사후 세계에 살며 우리와 접촉이 가능한 죽은 자들의 존재를 믿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접촉은?금지되었다(신 18:9?14). 접촉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접촉은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영적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을 오직 그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만 찾도록 제한하셨기 때문이다. 이 금지 명령은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즉 이는 그들이 해를 입거나 속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였다.
--- p.149, 「24. 사무엘의 영, 그리고 사울에게 임한 심판」 중에서
고대 근동 곳곳에서 발견되는 지혜 문헌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법을 교훈하는 등 유사한 지향점을 갖고 있다. 때때로 그런 권면은 인간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형성될 뿐 아니라, (시공간이 다를지라도) 모든 사회는 사람들 간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유사한 경험과 환경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 본래의 문맥 밖에서도 여전히 적실성이 있다.
--- p.182, 「31. 잠언이 이집트의 지혜라고?」 중에서
십자가는 성경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이다. 십자가 없이는 구속도,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한 반전도, 새 땅에서의 에덴의 회복도, 그리고 사탄의 패배도 없다. 그러나 지적 존재인 악한 권세들, 심지어 사탄조차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을 때 그 의중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탄이 하나님의 계획을 눈치챘다면, 악한 권세들 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오히려 막았을지도 모른다. 어둠의 권세들은 굳이 하나님보다 강해질 필요도 없고,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 p.246, 「46. 깨닫지 못하게 하신 신적인 섭리」 중에서
성경의 저작 이면에 있는 인간적 측면을 최소화하거나 또는 부정하는 것은 성경 영감의 교리를 약화시키는 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성경을 어떤 초고도의 지능을 가진 신적 존재가 영적 세계에서 나눠준 기이한 책으로 설명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 속에서 실제로 보는 것과는 조화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견해와는 달리, 성경의 영감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신실하게 인도함을 받은 하나의 긴 과정으로 본다면, 성경의 경이로움을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할 것이다.
--- p.292, 「55. 영감은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다」 중에서
신중하고 세심하게 성경을 배우는 학생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에게 이미 내재해 있는 특정한 전제와 선입견으로 성경이 말하는 바를 걸러내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신학은 성경 본문 자체에서 도출되어야 하지, 우리의 전통적인 성경 읽기 방식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된다.
--- p.308, 「59. 우리의 선입견을 주의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