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경계위반 문제는 그 역사는 오래되었으나 연구된 시간은 짧다. 이 논의를 가로막는 많은 금기가 있지만 그중 가장 근접한 비유는 근친상간이다. 동료가 잘못을 저지르면, 마치 근친상간을 한 아버지가 가족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듯이 동료는 그 종사자들에게 수치를 준다. 따라서 비록 많은 이들이 비밀의 존재를 알고 있을 때도 그 비밀은 지켜진다. 일반적으로 트라우마에는 “앎과 알지 못함”(knowing and not-knowing)이라는 특성이 동시에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사고되지 않은 앎(the unthought known)이라는 말로 적절히 설명될 수 있다(Bollas, 1987; Stern, 1997). 사람마다 인식 수준이 다르므로 개별적 정신은 나뉘고, 그 분열은 집단적 차원의 (암묵적) 압박감 탓에 발설되지 않은 채로 유지될 수 있으며, 이는 행위의 도착적 특성을 더한다. 의식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기본 원칙을 둔 직종은, 치유를 위해 만들어진 바로 그 맥락이 해를 끼칠 수 있음을 보지 못한다.
이 책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문제의식과 논의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여러 신화를 불식하는 것이다. 먼저 성적 경계위반 문제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보다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또한 범법자들의 유형은 다양하며, 가장 중요한 점은 가장 빈번한 유형이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는 범법자라는 것이다. 그 정황도 상당히 친숙하다. 자기애적으로 결핍된 남성 또는 여성 정신건강 임상가들이 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에 놓여 있을 경우가 한 예다. 그런 임상가는 치료사, 정신분석가, 교사 또는 성직자의 일원일 수 있다. 우리 모두 이런 유형의 위반에 취약하다는, 지금은 잘 정리된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거나 받아들이길 꺼리는 것은 (범법자, 피해자, 배우자, 동료, 친구 등 모든 관련자에 대한) 반응적인 분노를 자극할 수 있고, 이는 이 성가신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는 능력을 차단한다.
이런 유형의 성적 경계위반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 불완전성을 수용하려 하지 않거나 수용할 수 없는 데에는 다른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 정신건강 종사자들은 위반자에게 매우 처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특히 그런 과도한 반응을 위반자가 피학적으로 환영할 때 그렇다. 또 문제를 밝히려는 용기가 있었을지 모를 피해자에 대한 부당하고도 설명할 수 없는 분노, 이를테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죽여라” 같은 반응의 분노 역시 존재한다. 그 밖에 “이런 일은 나에게 결코 일어날 수 없어”라고 주장하며 우리 모두 제 발로 궁지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향후 정신건강과 안정적인 생활환경에 대한 이러한 포괄적인 예측은 유혹적이지만 전능적인 소망이다.
우리가 불식해야 할 또 다른 신화는 성적 경계위반의 모든 피해자가 경계선 여성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적어도 두 가지 요인의 결과물이다. 하나는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여성을 위험한 유혹자로 인식하는 개탄스러운 경향이다. 이는 여성을 평가절하하고 (특히 성별과 권력 고정관념에 따라) 현상유지를 하려는 너무도 흔한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일부 피해자가 이 스펙트럼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나온 과잉일반화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성적 경계위반의 피해자는 진단 범주의 전체 범위에 걸쳐 있으며, 그중 대다수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타인의 요구를 매우 충족시키는 경향이 있는 여성들이다.
경험에 따르면, 성적 경계위반의 피해자들은 종종 공감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비극적인 시나리오인 이유는 이런 피해자들이 가장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신뢰를 배반당했기 때문이다. 종종 위반자들은 그 피해자들에게 그들이야말로 특별하고 “진정한 사랑”이라 말하곤 했지만, (때때로 동시에 착취당한) 다른 피해자들의 폭로는 충격적이다. 당연히 이 피해자들 가운데 몇몇은 치료적 환경에 다시 도움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많은 피해자들이 정신병질적 포식자(psychopathic predators)에게 착취당해왔다는 것은 불행하지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종종 이런 종류의 위반자들에게 마땅한 분노로 반응한다. 이런 포식자들은 후회가 없으며, 분명 사전 의도와 목적에 따라 착취한다. 그런 인격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모든 임상가가 그런 사악한 동기를 갖고 있진 않음을 믿는다거나 이런 유형의 위반자가 가장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님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 책의 논의 대부분은 더 만연한, 다른 성적 경계위반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위반을 연애 사건의 일부로서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후회스럽고도 재활 가능한 사례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다. 사랑하는 것이 모든 치료적 노력의 본질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 방식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는 위반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위반의 잠재성이 보편적인 불완전성이듯, 우리 모두는 사랑에 우리 마음을 열었을 때 착취당하는 일에도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모든 종류의 정신건강 치료는 깊은 정서적 참여를 요하기 때문에, 고객 또는 환자로서의 우리는 그 과정에 마음을 여는 한 모두 잠재적인 피해자다. 이런 식으로 잠재적인 위반자와 잠재적인 피해자가 우리 모두 안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모든 오해를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대개 전형적으로 잇따르는 도움이 되지 않는 반응을 모두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성적 경계위반 문제에 대한 더 큰 인식과 이해가 정신건강 종사자들과 소비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예방과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일은 나에게 결코 일어날 수 없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은 충분한 예방책이 아니다. 또한 어떤 형태의 극단적인 처벌이 억지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지나치게 처벌적인 법적·전문적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유지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위반자는 자기 행동의 비윤리적 특성과 그것이 가져온 뜻밖의 결과를 잘 알고 있다. 많은 이들이 (되돌아보건대) 어디에서도 돌이킬 수 없었던 절망을 표현한다. 많은 이들에게, 그것은 실제로 사실이었다.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신건강 종사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태도상의 요인과 구조적 요인을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모든 관련 종사자의 개방성, 정직성, 지지를 용이하게 하는 전문적 환경은 위반자들이 필요한 도움을 구하고 받는 것만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나서서 보상을 받는 것도 더욱 안전하게 해줄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해리 스택 설리번(Harry Stack Sullivan)의 ‘우리는 모두 사람 냄새 나는 인간이다’(1953)라는 기본 원칙을 염두에 두는 것이 현명하다.
정신건강 서비스가 활성화되는 데 필수적인 영양소는 모두 사랑으로 강화된다. 사람들이 깊은 욕망에 더 많이 접근할수록, 이 사랑은 온갖 열정적인 갈망과 강렬하게 느껴지는 힘에 휩싸이게 된다. 때때로 한 커플이 방향을 잃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때때로, 특히 비정상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일부 임상가들의 경우, 치료의 틀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퍼펙트 스톰’처럼, 유일한 대응은 구성원 둘 모두를 구조하고 특정 방식의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