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여기에 공감하는 댓글이 주르륵 달리거든요. 공허함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라잖아요. 그리고 처음엔 예쁜 사진으로 팔로워를 모았다면, 일정 이상이 되면 공감 글이 중요해지는 시기가 와요. 너무 예쁘고 멋있는 모습만 보여 주면 반감만 사요. 연예인도 관찰 예능 나와서 자주 울잖아요. 그거랑 같은 거예요. 공감과 동정, 그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거죠. 그러면서 또 멋진 모습도 보여 줘야 하고…….
선생님, 제가 사실 여기를 꼭 오지 않아도 됐어요. 아시겠지만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권유한 거지 강제는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제가 굳이 온 이유는,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예요.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아, 그게…… 그게 있잖아요. 진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의 제가 너무 싫어요. 근데 인스타그램 속의 저는 좋거든요. 그럼 저는 저를 싫어하는 건가요, 좋아하는 건가요?
---「새로고침」중에서
다음 날, 눈을 뜨니 K는 소라게가 되어 있었다. 물론 껍데기가 없는 소라게였다. 나선형의 부드럽고 연약한 복부를 끌고, 무엇이든 자신을 보호할 만한 것을 찾아 헤맸지만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사방은 어둡고 물로 가득 차 있다. 이끼 냄새와 물비린내가 난다. 여섯 개의 다리로 아무리 걸어도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도 다른 갑각류의 껍데기는커녕 병뚜껑 하나 발견할 수 없다.
어디선가 “하하하,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열심히 더듬이를 흔들며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재현이었다. 찌그러진 코카콜라 캔 반쪽을 등에 이고 의기양양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반장도 있다. 부서진 치약 뚜껑 안에 들어가 있다. 짝도, 김우성도, 모든 반 아이가 깨지거나 찢어지거나 손상된 무언가에 몸을 반쯤 밀어 넣고 태연한 척 유유히 기어 다니고 있다. 자신이 어떤 모양새인 줄 모르는 것 같다. 모두들 우스꽝스럽고 필사적이다. 필사적이어서 우스꽝스럽다.
그 순간 K는 깨닫는다. 의자 뺏기 게임처럼 어차피 껍데기의 수는 개체의 수보다 필연적으로 적다. 나도, 재현도, 우성도 누구도 그 주인은 아니다. 사실 제대로 된 껍데기란 하나도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존재감이 없으면 뭐로? 근성, 눈치, 독기? 어서 아무 거나 뒤집어쓰란 말이야.
---「껍데기는 하나도 없다」중에서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는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다음 휴대폰의 음악 어플을 실행시킨다. 볼륨을 높이자 빠른 비트의 댄스음악이 고막을 때린다. 그와 동시에 엄마 목소리는 멀어진다. 현실과도 점점 멀어진다. 어느 사이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낸다. 방문 너머는 잠잠하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는다. 눈앞에 거울이 있다.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은 예전과 많이 다르다. 몰라보게 살찐 얼굴이 우울하고 처량해 보인다. 집 안에 틀어박히면서 몸무게가 엄청나게 불었다. 활동량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군것질거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잠깐 생각에 빠져든다. 침대와 책상, 행거만 놓인 단출한 방. 만약 이 공간을 의인화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이지 않을까. 말없이 내 옆을 지켜준 친구. 여태껏 아무 요구 없이 나를 품어 준 방이 애틋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주술사의 시간」중에서
채널 이름은 내가 지었다. 멸종위기종 쓰레기 대장. ‘멸종위기종’은 지금 청소년 세대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와 두려움을 담은 말이다. 기후 위기의 직접적인 피해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쓰레기 대장’은 우리 청소년이 앞장섰다는 뜻이다. 청소년도 이렇게 나서는데 어른들은 뭐 하세요, 그런 마음도 담았다.
수행평가는 나도 시아도 만점을 받았다. 우리 채널에 동영상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또래는 같은 멸종위기종이라며 응원 댓글을 남겼다. 댓글이 달리고 조회수도 1000이 넘어가니 정말 뿌듯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하기로 했다. 분리배출 시리즈 영상을 더 만들어 올렸다. 지금은 네 개뿐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할 거다. 기업에게 재활용 가능한 포장용기를 개발하라고 촉구하는 영상도 만들고 싶다. 우리 콘텐츠를 본 사람들과 함께 정부와 기업을 달달 볶고 싶다.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고 똑바로 시행하라고. 혼자서는 못 하지만 시아랑 싱귤이랑 함께라면 문제없다.
---「뜬구름 사이에서 우리는」중에서
집에 가자마자 들깨탕 끓일 준비를 했다. 보온병과 보온 도시락이 필요했다. “아빠가 드실 들깨탕이니까 내가 최선을 다해서 끓일게. 음식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그 말, 사실이지?”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쌀을 깨끗하게 씻어서 밥솥에 안쳤다. 물을 어느 정도 넣어야 하는지 알 만큼 이제는 자신 있었다. 버섯을 씻고 정성을 다해 썰었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배추를 찾았는데 없었다. 부엌 서랍장을 열어 보니 미역이 있었다. 미역을 넣은 들깨탕은 무슨 맛일까. 문득 내가 서 있는 부엌이 낯설어졌다. 아빠가 이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먹는 날이 다시 올까. 아빠가 노트에 쓴 주부백서가 떠올랐다. 아빠가 나에게 남기는 편지 같았다.
---「식사를 합시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