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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영화 언어

[ 양장 ]
이상용 | 난다 | 2021년 02월 2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2 리뷰 6건 | 판매지수 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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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82g | 130*195*20mm
ISBN13 9791188862849
ISBN10 118886284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이 집요하게 추격해온
1993~2019 봉준호 영화의 모든 것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꾼, 봉준호.
봉준호의 언어는 언제나 흔들린다.
그것은 봉준호의 영화가 도착하는 최종 목적지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개 부문 석권. 간출한 설명만으로 전 세계를 매혹한 봉준호의 쾌거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봉월드’라는 별칭대로, 감독 봉준호가 쌓아올린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두고 유수의 평단으로부터 찬사가 쏟아졌고 무수한 해석이 있어왔다. 그러나 여기 봉준호의 영화를 ‘세계’가 아닌 ‘언어’로 다가서보는 시도가 있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의 저자 이상용은 봉준호의 성과가 “상업적인 성공이나 명성과는 다른,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일”임에 주목한다. 영화평론가로서 보고 읽고 썼으며,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한국 영화를 지키고 알리는 데 힘써온 그다.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비평을 시작한 이래, 20년이 훌쩍 넘도록 멈추지 않는 ‘씀’으로 달려왔으나, 그는 “영화비평이나 영화에 관한 책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성실한 관객이자 독자로서 ‘충분한 사랑’이란 없다는 것, 영화를 향한 고백이자 애정 어린 당부다.

[백색인](1993)부터 [기생충]까지, 7개의 장편과 5개의 단편영화 전작을 다루었다. 봉준호의 출발부터 지금에 이르는 ‘근본적인 계획’, 그 청사진이자 지도를 그려낸다. 개별 작품 분석을 넘어 편지, 추격전, 보는 것, 괴물 등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언어들을 중심으로 모든 영화가 끈을 잇고 얽히며 모여들도록 이끈다. 각각의 키워드를 표제어라 할 때, 이 책은 봉준호라는 언어를 탐구하는, 개념은 물론 용례에도 충실한 ‘언어 사전’이라 부름직하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작가의 말―충실한 독자로서의 봉준호 _ 007

chapter 1. 짧은 연대기 _ 011
chapter 2. 부치지 않은 편지 _ 035
chapter 3. 추격하는 세계 _ 049
chapter 4. 괴물의 시학 _ 081
chapter 5. 보는 것의 변증법 _ 105
chapter 6. 헤테로토피아에서 _ 149
chapter 7.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_ 175
chapter 8. 사물들, 기호들 _ 201
chapter 9. 〈기생충〉 이후 _ 235
chapter 10. 작품 리스트 _ 265
chapter 11. 참고 문헌 _ 301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수상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다”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다. 많은 작가와 감독이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가 남겨지는 경우는 꽤나 예외적이고 드물다는 것을 말이다. ‘단 하나의 언어’인 영화 안에는 수많은 작가의 언어가 있고, 그 언어들 가운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여전히 드물다. 그것은 상업적인 성공이나 명성과는 다른,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 p.8~9, 「작가의 말」 중에서

봉준호의 영화가 장르적 쾌감을 동반하면서도 그 이상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신나게 타고 온 버스가 엉뚱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버스 기사에게 항의하는 대신 질문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탄 버스가 맞나?’ ‘여기는 어디인가?’ 등. 이 질문은 한 편의 영화에 풍요롭게 탑승하는 방식이 된다.
--- p.62, 「추격하는 세계」 중에서

봉준호 영화의 시각적 변증법은 대립하는 두 세계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둠으로써 일어나는 착시 효과인 동시에 각성을 일으키는 비전이 된다. 그 시각적 형상은 입체파의 그림처럼 완전히 왜곡되어 있지는 않을지라도, 현실을 비틀어 그 틈새로 들여다보게 하는 인식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카메라가 관객의 시선을 이끌어가는 곳이 바로 그 틈새들이다. 그리하여, 주인공들은 쉼없이 바라본다. 시체가 놓여 있는 하수구를, 괴물이 올라오는 한강 둔치를. 언제 다시 켜질지 모르는 대저택의 불빛을 응시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 p.147, 「보는 것의 변증법」 중에서

봉준호의 영화는 이러한 장소를 탐색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우리가 거주하는 현실에 질문을 던지며 법 너머의 현실을, 질서 속에 있는 이질적인 공간들을, 평온한 대낮에 놓인 살인 현장을 그려내면서 우리를 친숙하고 익숙한 곳에 깃든 낯선 세계로 안내한다. 그곳은 지하실, 하수구, 옷장, 논두렁, 터널, 기차와 같이 어디에나 놓여 있는 헤테로토피아다. 이곳에서 봉준호의 영화가 시작되고, 다시 헤테로토피아를 응시하거나 그곳으로 돌아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관객들은 스크린을 빠져나온다. 푸코가 언급했듯이 극장 또한 이질적인 것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거대한 헤테로토피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p.168, 「헤테로토피아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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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영화 언어를 추구하는 한 감독,
그를 따라가고자 하는 비평의 언어


봉준호에게 영화 인생의 변곡점이라 할 영화 동아리 ‘노란 문’은 사무실 출입문이 노란색임에 착안,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는 동아리를 만들자’는 작정에서 이름을 따왔다. 「작가의 말」에서 밝힌 바, 『봉준호의 영화 언어』 역시 “하나의 영화 언어를 추구하는 한 감독을 따라가고자 하는 비평의 언어다”. 본문에서 자크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를 빌려 편지(letter)를 문자(letter), 곧 언어(letter)와 권력의 관계로 풀어내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닐 터다. 책의 제목 『봉준호의 영화 언어』 그대로, 독자는 봉준호라는 하나의 독자적인 언어로 들어서는 ‘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 문을 통해 존 포드와 히치콕의 영화는 물론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미셸 푸코의 철학, 보르헤스, 보카치오,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활용되고 인용되는 언어의 세계가 펼쳐진다.
저자는 봉준호의 영화에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닮아 있음에 주목했다. 20년 넘게 그의 영화를 집요하게 추격해온 비평가 역시 봉준호의 방식을 글 속에 끌어들인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가 하나의 언어로서 봉준호를 다룰 때, 이를 읽고 듣고 이해하는 청자는 곧 봉준호의 언어를 구사하는 화자인 셈이다. 다채로운 인용과 이를 한 방향으로 그러모으는 구조의 탁월함에서 우리는 ‘봉준호의 언어로 쓰인 봉준호’를 본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언어 봉준호’에 입문하는 사전이자 가이드북, 실용회화집이다.

괴물과 살인마와 폭주하는 기관차 아래
숨어 있는 세계의 비밀


책을 여는 1장 「짧은 연대기」에서는 영화를 꿈꾸고 영화로 꿈꿔온 ‘어린 준호’부터 꿈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영화감독 봉준호’가 되기까지, 봉준호의 계획이 시작되고 완성으로 나아온 자취를 담았다. 한 영화의 시놉시스라 할 만한 스케치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봉준호, 알아나갈 봉준호의 밑그림을 그려본다.
〈기생충〉 속 기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2장 「부치지 않은 편지」는 자크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를 빌려 봉준호가 “필름 위에 눌러쓴” 편지, 주소 없는 봉투가 향하는 곳을 따라가본다. 영화라는 편지의 수신인이 관객이라면 비평집의 수신인은 작가와 예술가가 될 것이다. 이에 더불어 또다른 수신자를 평론가 자신, 또하나의 독자라 밝힐 때, 이 책 역시 ‘부치지 않은 편지’임을 짐작게 한다. 영화 속 세계로 관객을 이끄는 초대장, 영화 전체의 방향을 암시하는 첫머리가 ‘오프닝’이듯, 저자가 개봉하는 편지 봉투를 통해 봉준호라는 언어를 듣는 귀, 말하는 입을 터본다.

이 책은 봉준호가 쓴 영화라는 편지를 상세히 읽는 작업이다. 때로는 편지의 전체 양식을, 때로는 인용되는 편지의 내용들을, 때로는 문장 하나를, 때로는 잉크의 종류를 판별해가면서 필름 위에 눌러쓴 봉준호의 언어를 읽고자 한다. 가능하다면 독자들과 함께 새로운 편지를 쓰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하는 계획이 있다. 그리고 또다른 수신자가 있다. 평론가의 글을 두고 작가와 예술가에게 보내는 하나의 편지라고들 하지만, 이 책의 독자 중 하나는 글을 쓰고 있는 평론가 자신이기도 하다. 운이 좋게도 1990년대 후반부터 평론을 쓰기 시작하여 한국의 주요한 감독들의 영화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 돌아다니던 행위를 멈추고, 그동안 본 것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기생충〉의 기우처럼 근본적인 계획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기초적인 계획이 되기를 바라면서 편지 봉투를 개봉한다.
―「부치지 않은 편지」 중에서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 역시 서로 다른 장면들을 교차시키며 종내 하나의 주제로 모여드는 방식을 택했다. 3장 「추격하는 세계」는 추격전이라는 장르 관습으로 출발해 관객의 예상을 비껴 엉뚱한 종착역으로 이끄는 힘에 주목한다. 어느새 쫓기는 자를 닮아가는 쫓는 자의 아이러니, 순환하는 폭력의 굴레를 짚으며, 영화 속 한낮의 폭력이 극장을 나선 관객의 현실로 확장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4장 「괴물의 시학」이 다루는 ‘괴물’은 영화 〈괴물〉(2006)에 국한되지 않는다. 봉준호가 골몰해온 ‘인간의 얼굴을 한 괴물’ 혹은 ‘현실이라는 괴물’로 논의를 확장하며 그 중층, 폭넓은 외연을 언어학의 방식으로 접근해본다.
「보는 것의 변증법」을 다룬 5장에서는 ‘응시’와 ‘직시’ ‘훔쳐보기’ 등 다양한 시선이 집중되고 엇갈리는 방식을 분석했다. 봉준호의 안을 들여다봄은 물론 히치콕의 〈이창〉(1954),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를 경유하며 봉준호의 밖, ‘영화 속 보기’와 ‘영화를 보기’의 문제까지 시야를 확장시킨다.
6장 「헤테로토피아에서」는 미셸 푸코의 개념을 빌려 봉준호의 ‘공간’으로 들어선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가 보르헤스의 소설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 속 ‘어느 중국 백과사전’을 언급하는 지점은 의미심장하다. 사전의 예시를 통해 언어와 통사법의 관계 맺음을 공간으로 확장한다. 봉준호의 영화와 이 글을 나란히 읽음으로써 독자는 우리의 현실, 일상적 공간의 이면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7장의 표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따왔다. 현실이 끊임없이 진실을 은폐하고 삭제하는 방식을 폭로한다. 어떤 진실은 영화라는 비현실, ‘(현실) 세계의 끝’이자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속에 있다. 우리 앞을 가리고 있던 거짓 언어를 꿰뚫는 눈을 되찾게 한다.
‘봉테일’이라는 별명마저 얻게 한 봉준호의 정교한 장치들은 8장 「사물들, 기호들」에서 만날 수 있다. 산수경석, 대만 카스텔라, 골뱅이와 황금 돼지, 극중 인물의 이름들, 배우들. 봉준호의 영화 속에서 순환하는 사물은 곧 순환하는 언어, ‘기호’이기도 하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촘촘한 봉준호의 설계 도면을 쉬이 스치지 않고 세밀히 들여다본다. ‘많은’ 기호를 살피고 있지만 저자가 우리를 이끄는 종착역은 ‘모든’ 언어를 풀어쓰는 대신 언어를 포착게 하는 눈, ‘말하는 법’이다. 영화에 관해 아무리 많은 말을 한다 해도 끝내 충분할 수 없는 탓이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가 봉준호라는 한 언어의 사전이자 언어학적 탐구이기도 한 이유다.
특기할 점으로 「〈기생충〉 이후」 역시 빠뜨리지 않았다. 다만 저자에게 ‘이후’는 〈기생충〉의 ‘뒷이야기’가 아니다. 도리어 〈마더〉(2009) 〈살인의 추억〉(2003) 〈흔들리는 도쿄〉(2008) 등 봉준호의 자취를 되짚어본다. 돌아봄으로써 나아갈 길을 가늠하는 시도다.

흔들리는 집의 위기 속에 목적을 향하는 빛이 있고, 찾는 자의 클로즈업이 있으며, 허망하게 부서지는 이미지와 죽음이 있다. 봉준호의 영화는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흔들리는 이미지를 이어간다. 이미지의 불꽃놀이가 끝날 때 관객들은 〈흔들리는 도쿄〉의 마지막 대사처럼 비로소 말하게 될 것이다. “흔들린다.” 그것이 봉준호의 영화가 도착하려는 최종 목적지다.
―「〈기생충〉 이후」 중에서

뒤편에는 「작품 리스트」를 수록했다. 연대순으로 12개의 개별 작품을 모두 다루었다. 이제 막 ‘봉월드’로 들어서는 관객에겐 봉준호의 언어에 입문하는 개론이고, 봉준호를 읽어온 이들에겐 맞춤한 총론일 것이다. 「참고 문헌」 역시 출처를 밝힘에 그치지 않고 더 넓은 세계, 번지고 퍼져나갈 이야기의 주소지로 채웠다. 본문을 더욱 단단히 하는 아교가 될 보론을 담았다.

그리하여 ‘근본적인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쓴다


현장은 영화 제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평의 현장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쉼없이 달려온 저자 이상용은 『봉준호의 영화 언어』를 통해 “이제 돌아다니던 행위를 멈추고, 그동안 본 것들을 정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질주하는 봉준호의 영화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고르는 이 정류장에서, 저자는 여전히 멈춰 앉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을 봉준호라는, 영화라는 ‘버스’에 탑승하도록 이끈다. “감독들이 다음 영화를 만들듯이, 다음 책으로, 다음 작가로, 다음 이론으로 넘어가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언제나 미래의 영화를 기다리는 비평가의 태도다.
저자가 ‘봉준호의 영화 언어’를 정리하며 평했듯, “많은 작가와 감독이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가 남겨지는 경우는 꽤나 예외적이고 드물다”. 영화라는 ‘단 하나의 언어’ 속에도 작가 저마다의 언어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이 언어가 사어(死語)가 되지 않는 길 역시 단 하나다. 우리는 이제 더 말해야 한다. 영화를 지켜나가는 데 ‘충분한’ 사랑은 없으므로.

이 책은 하나의 영화 언어를 추구하는 한 감독을 따라가고자 하는 비평의 언어다. 자연스럽게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많은 이를 매혹하는 영화와 이론의 숲을 경유하면서, 한국의 유수한 평론가들의 글과 독자들의 해석을 오가면서 이를 언어화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비평의 언어가 으레 그러하듯이 오독도 있고, 상투성에 휘말리기도 할 것이다. 다만, 영화비평이나 영화에 관한 책이 여전히 부족한 한국의 현실에서 우리의 감성과 언어가 하나의 언어로 집약되기를 희망하였다. 이 작업은 감독들이 다음 영화를 만들듯이, 다음 책으로, 다음 작가로, 다음 이론으로 넘어가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회원리뷰 (6건) 리뷰 총점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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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봉준호의 영화 언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산*람 | 2021.03.28 | 추천11 | 댓글0 리뷰제목
봉준호의 영화 언어 이상용 난다/2021.2.22. sanbaram   우리나라 영화 역사는 길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결코 짧지도 않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져 관객들에게 소개 되었고,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영화를 관람해왔다. 그러나 우리 영화가 해외에 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유럽과 미국의 영화제에서 우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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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영화 언어

이상용

난다/2021.2.22.

sanbaram

 

우리나라 영화 역사는 길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결코 짧지도 않다. 그동안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져 관객들에게 소개 되었고,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영화를 관람해왔다. 그러나 우리 영화가 해외에 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유럽과 미국의 영화제에서 우수한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우리 영화가 세계에 크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중심으로 그가 만든 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 7편을 9개의 주제에 따라 집중적으로 분석해보는 책이다. 저자 이상용은 1977씨네21>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진주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으며, 지은 책으로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안나 카라리나>, 공저로 씨네상떼>, <30금 쌍담등이 있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부치지 않은 편지에서 이 책은 봉준호가 쓴 영화라는 편지를 상세히 읽는 작업이다. 때로는 편지의 전체 양식을, 때로는 인용되는 편지의 내용들을, 때로는 문장 하나를, 때로는 잉크의 종류를 판별해가면서 필름 위에 눌러쓴 봉준호의 언어를 읽고자 한다.(p.46)”고 저자는 말한다. 봉준호의 영화는 영화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곱 편의 장편을 반복적으로 써내려오면서 이야기를 분리하고, 우회하고, 새롭게 쓸 수 있는 방식들을 스스로 보여준다. 그는 끔찍한 화성의 연쇄살인사건도 다루지만, 한강의 연쇄살인 사건 이야기를 괴물의 유화로 들려주기도 한다. 그것은 더 많은 상상을 가능케 하면서 관객들을 깊은 심연으로 안내한다. 이야기의 본성에 따라 독자는 들려오는 이야기를 마음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불쾌하기도, 유쾌하기도, 즐겁기도, 괴롭기도 한 이야기의 형식을 따라가면서 관객들은 다양한 생각을 취한다고 그는 말한다.

 

아버지에게 편지는 결코 전달되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한 수신자는 자신의 계획을 알아봐줄 환상 속의 상대자다. 편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제대로 가치평가를 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편지를 읽지도 못하는 아버지도 아니고, 죽은 사람들도 아니다. 대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다.(p.45)” 이처럼 봉준호의 영화는 자주 관객들을 향해 시선을 던져왔다.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은 1986년 살인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17년의 시간이 흐른 후인 2003(영화가 개봉된 해)의 시점에서 출발한다. 영업사원이 된 전직 형사 박두만은 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지나가다 멈춰 선다. 시체가 발견되었던 하수도 수로를 응시하는 박두만을 향해 길을 지나던 한 소녀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는다. 소녀는 얼마 전에도 어떤 아저씨가 똑같은 행동을 했다고 말한다. 용의자가 아직 살아 있음을 시사하는 소녀의 증언과 박두만의 물음이 오가고 마지막 순간에 박두만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주인공의 시선은 관객을 향해 있다. 그것은 마치 나는 당신들 중에 범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혹은 당신이 범인이지?’라고 묻는 것 같다.

 

할리우드와 일본의 괴수 장르가 일정한 규모를 가진 자본력을 요구하는데 반해, 한국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거대한 괴물이 아니라 괴물적인 인간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p.88)” 괴물은 봉준호에게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안겨준 영화다. 할리우드 CG팀 오퍼나지와 뉴질랜드의 웨타가 괴물의 캐릭터 작업에 참여하였고, 한강을 배경으로 가족의 추격전을 다룬다. 할리우드 괴물 장르의 관습을 따라가면서도,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등장하는 희생당한 주인공들을 보여줌으로써 두 종류의 괴물을 종합한다. 그 이접 속에 이 영화의 특징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괴수가 등장하지만 그들은 감히 영웅의 반열에 오르거나 괴물 자체로 전락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괴물은 천천히 등장한다. 이상한 자연현상이나 지진과 같은 전조들이 일어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흔히 괴물을 쫓는 영웅이나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이 장르의 진정한 주인공은 괴물 자체다. 봉준호의 괴물에서는 시작과 함께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을 탐구하는 과학자도 없고, 괴물을 추적하는 근사한 영웅도 없다. 느닷없이 등장한 괴물이 한강 둔치를 휩쓸고 지나간 후에도 괴물을 둘러싼 연구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괴물의 등장 이후 다른 이야기로 관객을 안내한다. 바이러스 운운하는 가짜 뉴스들, 재대로 통제되지 않는 한강의 검역 시스템, 그리고 에이전트 옐로우 살포를 결정한 무능한 정부와 미국의 정치적 결탁은 괴물이 사라진 후 등장하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바이러스를 찾기 위해 괴물과 접촉한 이들의 몸을 해부한다. 그 행동이야말로 괴물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진짜 괴물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괴물을 제외하고, 봉준호의 영화에 등장하는 현실적인 괴물들은 매우 평범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근세처럼 평범한 인간들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괴물로 오인을 받거나 살인의 추억의 범인처럼 결코 등장하지 않는 존재다.(p.93)”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의 괴물적 인간들이 가공할 만한 위협으로 직접 등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를 납치하여 살해하는 고윤주 역시 나중에 교수가 되는 보통의 속물적 인간이며, 아들을 위해 노인을 살해한 마더의 엄마 역시 평범함 그 자체다. 그들이 벌인 행위에 비해 인간 자체는 평범하다는 사실은 봉준호의 영화가 지닌 핵심 중 하나다. 봉준호의 영화에 등장하는 진짜 괴물은 이와 같은 착각과 오인의 결과다. 말해도 듣지 않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인간의 맹목성이야말로 현실을 가려버리는 괴물의 무서운 어둠이다. 그리하여 봉준호의 영화는 마지막 대목에서 어둠을 응시하자고 제안한다. 한강 둔치를 바라보는 괴물의 마지막 장면처럼, 하수구를 응시하는 살인의 추억처럼 그곳에 여전히 진짜 괴물이 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최대한 환상의 비전과 현실의 풍경을 좁혀서 겹쳐놓는다. 봉준호 영화의 시각적 변증법은 대립하는 두 세계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둠으로써 일어나는 착시 효과인 동시에 각성을 일으키는 비전이 된다.(p.147)” 그 시각적 형상은 입체파의 그림처럼 완전히 왜곡되어 있지는 않을지라도, 현실을 비틀어 그 틈새로 들여다보게 하는 인식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설국열차는 기차야말로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유토피아라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커티스는 이러한 유토피아의 신념에 따라 꼬리 칸에서 엔진실로 진출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환상을 지녔다. 그는 향락에 취한 앞칸의 이질적인 장소들을 보았으면서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궁민수는 이 세계의 가장 이질적인 장소인 열차 바깥이야말로 진정한 문 너머의 세계이며, 자신이 크로놀을 모은 것은 엔진실을 날려버릴 폭탄의 원료로 쓰기 위함이었음을 토로한다. 남궁민수는 질서 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기관차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새로운 장소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기생충에서는 시각만큼이나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후각이다. 비록 박사장은 지하실의 존재를 보지 못하는 눈먼 자처럼 보이지만 그의 후각은 지하에 머무는 존재들을 예민하게 지각한다.(p.212)” 그러나 박사장과는 달리 기택의 가족은 아내 연교에게 냄새 운운하는 박사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자신들의 냄새를 맡아본다. 하지만 냄새의 정체를 쉽게 파악하지는 못한다. <기생충에서 구현된 계급의 문제는, 대만 카스텔라라는 경제적 기표로 출발하여 냄새라는 감각으로 계급 내의 연대와 계급 차이의 불안을 오간다. 이는 오늘날 자본주의에서 중요하게 떠오르는 것이 경제적 차이가 아니며, 냄새라는 신체 감각이야말로 실존적으로 예민하게 다가오는 차이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기택은 어째서 박사장을 찔렀는가? 박사장은 이번 사태와는 무관한 인물처럼 보인다. 박사장은 기절한 막내를 안고 나가려고 기택에게 자동차 열쇠를 던지라고 고함을 지른다. 한참을 머뭇거리며 던진 열쇠는 근세의 몸 아래에 깔리고, 박사장은 냄새를 의식하며 코를 쥐고 열쇠를 집어 올린다. 박사장의 변함없는 이 몸짓은 기택의 본능을 자극한다.(p.246)”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못 가진 자와 더 못 가진 자, 축하를 위해 온 손님 등이 뒤엉켜 있는 하나의 세계다. 이 집에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고, 각각의 구역은 선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구별 짓는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은 근세가 선을 넘어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집의 선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박사장은 기정의 상처를 지혈하는 기택의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만을 말한다. 무엇보다 근세에게서 흘러나오는 선을 넘는 냄새에 대한 불쾌함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선을 강조한다. 그 모습이 기택을 자극한다. 지하실에서 나온 근세가 선의 경계를 넘었다면, 기택의 행동은 선을 넘어 들어간다. <기생충의 내부와 외부, 지상과 지하를 구별 짓는 선들이 무너지며 일어나는 낯선 두려움의 혼란, 집의 질서가 해체되는 순간이라고 한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수상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은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다.”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단 하나의 언어인 영화 안에는 수많은 작가의 언어가 있고, 그 언어들 가운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드물다. 그것은 상업적인 성공이나 명성과는 다른,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이 책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독특한 목소리를 분석하여 독자가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영화, 특히 봉준호 감독 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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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영화는 언어다 (feat 봉준호) - 봉준호의 영화 언어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i | 2021.03.27 | 추천5 | 댓글0 리뷰제목
   책을 읽으며 '내가 어떤 영화를 봤었지?' 하고 생각해 본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 이렇게 본 것 같다. 스텝으로 참여한 작품을 포함하면 1 편이 추가된다. 왜 이 영화를 보게 되었을까? 작가의 말처럼 봉준호는 어떻게 나를 버스에 태웠을까?    버스라는 표현 아주 맘에 든다. 이 버스 '인천 갑니다'하고 손님을 태워 '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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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며 '내가 어떤 영화를 봤었지?' 하고 생각해 본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 이렇게 본 것 같다. 스텝으로 참여한 작품을 포함하면 1 편이 추가된다. 왜 이 영화를 보게 되었을까? 작가의 말처럼 봉준호는 어떻게 나를 버스에 태웠을까?

 

 버스라는 표현 아주 맘에 든다. 이 버스 '인천 갑니다'하고 손님을 태워 '의정부'에 데려다주는 버스라면 한 번 타볼 만도 하다. 대학 친구들이 한 겨울에 술 마시고 지하철 막차로 행선지를 엇갈아 타고 종점까지 갔다. 잊지 못할 추억이 구경꾼인 나에게도 남았다.

 

  유일하게 사람만이 난 저기로 갈 거야 말하고 반대로 간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화도 나지만 세상이 심심하지 않다. 내 삶을 돌아봐도 저기로 가야지 하고 가보면 내가 생각하던 것이 아니고, 가던 길에서 미끄러지거나 굴러서 다른 길에 들어섰는데 꽤 맘에 드는 길을 찾기도 했다. 그런 인생을 표현한다고 보면 꽤 인간적이다. 

 

 

 나는 영화를 작가이자 평론가처럼 분석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분석적, 심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것을 극복할 생각이 없다. 괴물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보고 재미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VOD로 본 마더는 잘 이해되지만 따뜻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를 지은 부모나 자식을 대하는 인간의 이성적 감성적 태도에 대한 갈등이 없다. 단호가 결정만이 존재한다. 설국열차는 궁금했다. 스토리는 다르지만 매트릭스가 그리는 세상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세상의 구조, 세상은 아름다움과 추함이 함께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가치를 더 느낀다. 세상은 원래 그러했고, 그러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생충도 호평보다는 호기심 때문이고 나는 설국열차의 끈이 이어져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넓게 볼 것인가 깊게 볼 것인가의 차이가 아닐까?

 

 이 책과 같은 분석적인 측면이 영화의 맛을 더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양념 안에 어떤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 어떤 비율로 조합해야 하는지 그 각각의 맛이 주는 감각을 음미하는 것은 아마추어에게도 좋은 이야기 꺼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내겐 그 양념을 왜 만들고, 어디에 쓸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아님 맛있던가? 재미있던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영화, 눈으로 보고 머리로 분석하는 영화 그런 시각적, 감각적 커뮤니케이션을 감독과 한다. 감독의 눈에 보인 세상과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을 영화란 도구를 통해서 소통한다. 배우는 다시 매개체가 되어 극적인 효과를 돕는다. 그런 점 아주 화려하고 다차원적인 언어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이게 잘 되면 인기가 좋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마더 #설국열차 #기생충 #살인의추억 #봉준호의영화언어 #리뷰어클럽 #khori

 

Yes24 리뷰어클레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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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되는 영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b*****4 | 2021.03.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이상용 평론가께서 강의를 하셨는데, 당시엔 저학년이라 듣지 못했다. 이후에는 내가 학교를 옮기게 되면서 아쉽게 강의 들을 기회는 없어졌다. 그 후 시간이 지나 한 감독의 영화 세계를 구심점으로 엮인 책으로 만나게 됐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 기존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온 부분과 더불어 이상용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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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이상용 평론가께서 강의를 하셨는데, 당시엔 저학년이라 듣지 못했다. 이후에는 내가 학교를 옮기게 되면서 아쉽게 강의 들을 기회는 없어졌다. 그 후 시간이 지나 한 감독의 영화 세계를 구심점으로 엮인 책으로 만나게 됐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 기존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온 부분과 더불어 이상용 평론가의 관점에서 확장된 얘기들을 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유사와 상사, 상사성의 전략을 연상적 작용으로 연결한 부분이 어렵지 않게 전달됐다고 생각하고, 헤테로토피아와 관련한 얘기들을 봉준호 감독의 근작이 지닌 지점들로 연장시킨 것이 의미 있었다. 많은 수의 인덱스 스티커가 흥미로운 부분들을 대변해 준다.

 

책에서 니체의 문장을 인용하여 괴물의 추격자가 괴물과 흡사한 속성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마더>의 엄마와 <기생충>의 기택을 예시로 든다.) 그러면서 “쫓는 자의 위기는 이러한 심연을 발견하는 순간”이라고 하는데, ‘쫓는 자의 위기’를 바라보는 나와 이상용 평론가의 방향이 조금 달랐다.

 

쫓는 자의 괴물 같은 내면을 발견하는 것은 순간이 가져다주는 위기라기보다 징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해당 글의 앞선 챕터에서는 대타자(지젝?라캉 논의에서의 대타자. 윤리적 믿음 등의 상징적 효력)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데, (이 논의를 끌고 오자면) 인물들이 잊고 있던 대타자에 대한 인식이 위에 얘기한 ‘순간’에 말 그대로 출현했을 뿐, 위기는 영화의 어느 시점 이후 계속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쫓는 자의 위기가 표면에 드러나는 순간 이미 영화 속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라거나 혹은 서사의 변곡점으로 작용한다는 해석이 더 온당하지 않을까. 위기는 한 지점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잠복해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 속 인물에게도 마찬가지고 영화 밖 일종의 대타자인 관객의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마 책의 특성상 모든 부분을 상세하게 적어내기는 어려웠으리라 본다.

 

일관된 목소리로 한 감독의 영화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항상 경외롭다. 보는 것만큼이나 글을 통해 접근해도 재밌는 것이 영화다.

 

“집을 나온 자만이 언젠가는 새로운 식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흔들리는 집의 위기 속에 목적을 향하는 빛이 있고, 찾는 자의 클로즈업이 있으며, 허망하게 부서지는 이미지와 죽음이 있다. 봉준호의 영화는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흔들리는 이미지를 이어간다. 이미지의 불꽃놀이가 끝날 때 관객들은 <흔들리는 도쿄>의 마지막 대사처럼 비로소 말하게 될 것이다. ‘흔들린다.’ 그것이 봉준호의 영화가 도착하려는 최종 목적지다.”_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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