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일생 동안 수없는 변화를 겪는다. 마지막 변화가 죽음이다. 나는 강원도 시골에서 자라면서 누에를 길러 본 경험이 있다. 누에가 네 번 자고 성충이 된 다음에 스스로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로 고치를 만든 후 그 속에 번데기가 되어 죽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비로 변화하여 고치를 열고 날아 나온다. 생명의 변화와 신비를 배운다.--- p.24
죽음에의 철학은 배워 지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정직한 사색의 결과로 저절로 고백되는 언어에 담기는 것이다. 죽음에의 철학적 접근은 ‘이것이 죽어야 하는 이유’라고 고백하는 그 내용에서, ‘이렇게 죽어야 한다’라고 고백하는 그 내용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이 일이 쉽지는 않다. 사랑을 고백하는 일이 그렇듯이. 그러나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의 철학적 접근을 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p.42
죽음 현상이 현대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상적 사건들이 되고 죽음 과정과 사후 시신 처리가 지극히 사무적이고 기계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지면, 그 사람이나 가족과 문회 사회의 삶도 그렇게 된다. 죽음을 소외시키면 삶도 소외된다. 죽음을 순수한 생물학적이고 물질적 과정으로만 생각하면 삶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 사회 전반이 약육강식의 동물왕국으로 변하게 된다. 한마디로 죽음에 대한 외면과 소외는 비인간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p.44
죽음은 삶에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 준다. 즉 죽음 앞에서 인간은 비로소 ‘존재(being)’로 존재하게 되며, 죽음은 ‘존재의 바로 그 순간’에 가장 많이 묻는 “과연 내 삶은 의미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나머지의 삶을 더욱 의미 있는 삶으로 이끌어 주는 가장 강력한 삶의 자극인 것이다.--- p.60
마찬가지로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그 어딘가에 ‘의미’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의미가 없다면 어떻게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무의미하게 느낀다는 것 자체가 바로 내 삶에 반드시 의미가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p.68
유달리 이승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으로 보이는 일상적 한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죽음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한국인에게 죽음은 ‘이승에서의 해방’이나 ‘하늘나라의 부르심’이라기보다는 ‘죄의 대가’라든가 ‘원한의 결과’, ‘업력의 부족’ 등과 같이 좋지 않은 이미지로 일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p.87
어른들은 때로 아픈 일을 어린이가 겪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숨기고 싶어 하지만 어린이들도 슬픔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를 배울 필요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p.113
죽음에 관해 가르치는 것은 곧 산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며, 죽음에 관한 교육은 죽음의 막연한 공포를 제거함으로써 삶에 대한 인간의 존경심과 환희를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는 곧 인간의 삶에 관한 문제이므로, 우리는 죽음의 문제를 더 이상 교육의 영역에서 소외시할 수 없는 중요한 교육 내용임을 상기할 수 있다.--- p.130
죽음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인간의 행복 증진이라고 진술하는 것이 다소 역설적인 것 같지만, 죽음에 대한 학습을 통해 우리는 삶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고, 실제로 보다 더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다.--- p.137
우리는 여전히 죽음이 무엇인지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고 다양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삶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그 부분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p.156
이번 생이 유일한 생이고 죽음은 삶의 마지막 단계이고 삶의 완성임을 받아들일 때 죽음은 행복과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열망, 열정, 그리고 의지로 변할 것이다.--- p.163
성인기라 할지라도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대상’을 사고나 질병 등으로 잃게 되면 역시 심리적 고통, 일상의 훼손 등이 나타나 개인적,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p.167
출산이나 예술 작품은 고통을 통하여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참고 견딜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말기 암환자들이 겪어야 할 고통들은 참아야 할 목표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일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 고통들을 완화시키고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p.187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모든 고통받는 사람의 육체적, 비육체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자신의 인생을 잘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인적 돌봄으로 이해할 수 있다.--- p.193
오늘날은 오로지 삶에만, 살아 있는 몸에만 관심을 갖고 있으며 영혼에는 관심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죽음은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철저하게 타자화되어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삶 속에서 부단히 직접적으로 죽음과 마주치는 훈련이다.--- p.232
산다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그 죽음이라는 종료가 없다면 지금의 생의 지속은 의미가 없다. 그러니 죽음이 있기에 인간은 이 주어진 한계적 삶을 절실하게, 의미 있게 살고자 한다. 삶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죽음인 것이다.--- p.244
고귀한 영적 존재인 우리는 촘촘하게 짜인 그물의 씨줄과 날줄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상호 연결성과 영속성 속에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게 된다면,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의미로 나라는 존재를 대하게 될 것이다.--- p.261
청년 초기에는 죽음에 대해 낭만적인 생각을 하여 죽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용감하고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속도의 자동차나 오토바이 운전을 즐기거나 약물복용 심지어는 자살도 가능케 한다.--- p.272
사망 직후 즉각적인 돌봄으로는 일단 의사의 사망 선언을 확인하고 모든 의학적 장비와 공급 튜브 제거, 환자의 존엄성 유지를 위해 씻김과 환복, 분비물이 새어 나오는 곳의 드레싱, 실금을 위한 기저귀 착용 등 임종 처치를 한 후 가족과 함께 안치실로 보내드린다.--- p.296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겪게 되는 비탄과 애도의 과정에 대해 배우는 것은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일이다. 또한, 애도상담을 배우는 것은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돌보고, 더 나아가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치유와 회복을 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p.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