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그리스도교 7개 공의회에 대한 역사적 ? 신학적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고 끊임없는 관심사이다. 동방정교회는 7개 공의회의 신앙 유산을 수용하며 특별히 니케아 신조와 칼케돈 신조를 수용한다. 동방정교회의 지역교회들은 행정적으로 독립 혹은 자치를 누리면서도 신앙, 예전 그리고 신조의 수용에 대해서는 일치를 추구하면서 스스로 주교들을 세울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전승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동등한 정교회 주교들 안에서 영예에 있어 우선순위로 간주한다.
주후 1천 년 동안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였던 그리스도교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다수의 진지한 학자들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그리스도교가 정교회를 통해서 계속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교회는 오순절에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세운 바로 그 교회(행 2:1-13)인 것이다. 정교회는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끊임없이 계속 전승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ORTHODOX”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교회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2천 년 동안, 올바른 하나의 길을 따라왔다.
---「 동방정교회와 7개 공의회의 역사와 신학」중에서
정교회의 기도 중에 ‘예수기도’라는 기도 형태가 있다. … 정교회 전통에서 ‘예수기도’는 세 단계의 진행 과정을 가진다. 첫째, 입술의 기도로서 외적 자아가 육체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단계이다. 둘째, 마음이 무정념(Apatheia)의 상태에서 평정심을 가지고 드리는 내면적 단계이다. 셋째,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심장으로 드리는 육과 영의 연합된 기도 단계이다. 이런 단계는 기도자의 진보와 더불어 기도 자체의 성장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마음의 상념을 제거하고 간절한 기도의 반복을 통해 기도의 깊은 단계인 무정념의 단계에서 자비의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가져온다.
정교회는 이러한 하나님 경험을 ‘신화’(神化, Theosis)라고 정의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한다. 이러한 신화의 단계에서 기도자는 호흡마다 하나님 성품의 담지자인 예수와 하나 됨을 경험한다. ‘예수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절대적 침묵이다. 이 침묵 기도를 가리켜 ‘헤시카즘’(Hesychasm)이라고 하는데, 기도자 즉 헤시키스트는 기도 속에서 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지향한다.
---「 동방정교회 역사와 영성」중에서
몽고 지배기 러시아 영성의 중심은 수도원이었다. 14세기부터 15세기 중엽에 이르는 약 150년 동안에 180여 개의 새로운 수도원이 창설되었다. 러시아 수도 생활의 전통은 이 시기에 완전히 수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수도원은 신비주의자들이나 금욕주의자들의 은둔처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대부분의 수도원이 수백 명의 수도자를 포함하는 작은 도시와 다름없었다. 수도원은 토지를 소유했고, 그 주변에는 위성도시들과 마을이 생겨났다. 수도자들은 백성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백성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으며, 배고픈 이들에게 빵과 고기를 먹여 주었다. 수도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농부의 역할은 물론, 봇짐장수의 역할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황량한 들판에 버려진 고아와도 같은 러시아인들에게 부모였고, 교사였으며, 지도자였다. 이 시기에 가장 위대한 민족 지도자는 수도자였다.
당시 수도원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삼위일체-성 세르기 대수도원’(Troitse-Sergieva Lavra)이었다. 수도원의 창설자인 라도네주의 세르기(Sergii Radonezhskii, 1314~1392)는 라도네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사망하자 그는 모스크바에서 북동쪽으로 6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울창한 산림 속으로 숨어 들어가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거기서 2년간 기도와 고행 속에 은둔생활을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신앙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들은 조그마한 성당을 세워 본격적인 수도 생활에 들어갔고, 그 조그마한 성당은 훗날 ‘삼위일체-성 세르기 대수도원’으로 성장한다.
---「 러시아정교회 영성의 역사」중에서
러시아가 동방정교를 받아들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 예배 의식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블라디미르는 종교의 원리나 종교에 내포된 사상 혹은 교의가 아니라 감각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자신과 국가의 종교를 결정했다. 동방정교는 로마 가톨릭보다 상대적으로 덜 교의적이고, 덜 체계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사실 동방정교는 따지고, 논하고, 분석하기보다는 관상하고, 전 존재로 체험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러시아인에게 하나님은 진리와 믿음의 신일 뿐 아니라 아름다움의 신이었고, 신앙이란 곧 아름다움이라는 등식이 그들의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아름다움은 곧 진리였으며 진리는 곧 선한 것이었다. 진선미(眞善美)의 합일은 그들에게 있어서 어떤 논리적인 근거나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신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 우주적인 존재의 이상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오늘날까지 러시아의 장인과 화가와 시인들의 가슴 속에서 반향하고 있다. 예술은 신의 선물이며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신과 교감할 수 있다는 확신은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러시아 문화의 전통이다.
따라서 우리가 감히 진단해 볼 수 있는 것은, 예배의 아름다움, 신앙과 아름다움의 합일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중세 문학 작품과 찬란한 이콘과 장엄한 성가, ‘미(美)가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러시아 문화와 예술 전체를 아우르며 1천여 년 동안 면면히 지속되어 온 영성이라 할 수 있다.
---「 러시아정교회 영성과 혜암의 순례자 영성」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