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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리뷰 총점9.5 리뷰 46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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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0
판매가
13,320 (10% 할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694g | 148*221*34mm
ISBN13 9788934991540
ISBN10 893499154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버지는 다시 나를 보았다. “내가 네 엄마를 만나기 전에.” 아버지는 손가락을 모아 주먹을 쥐며 말했다. “네 엄마와 콘스턴스…… 둘은 사귀는 사이였어.”
나는 아버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엄마가요?” 나는 《밀랍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엄마가 이 여자랑 사귀었다고요?”
“그래.”
“엄마가 레즈비언이었어요?”
“글쎄다, 로지. 그럴 수도 있고. 한동안 둘은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널 낳았으니 내가…… 장담할 수는 없구나.”
“그럼 양성애자였어요?”
“그렇게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버지는 온몸을 둥그렇게 말고 다시는 펴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 p.43

삼십 년 넘게 마음을 죄어온 메시지와 더는 싸울 기력이 없어질 때까지 나를 갉아먹고 또 갉아먹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누구인지, 대체 나 자신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아무런 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전도 없고 서투르기만 한 내가 부끄러웠다. 누구나 상실이 있고 부끄러움이 있고 집착이 있지만, 남들은 어떻게든 극복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해낸다. 포기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느 여자 유령과 자신만의 환상 속에 사는 남자친구에게 사로잡혀 내 손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내겐 몰도, 엄청난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내 이름으로 발표한 책도, 바닷가에서 함께 살 아내도 없었다.
--- p.89

임신하고 첫 석 달은 어이없을 정도의 원초적인 피로와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잘한 메스꺼움에 시달렸다. 주말에는 눈을 떴다가 다시 다섯 시간을 더 자고 일어나도 피곤했다. 침대에서 변기로, 다시 침대로. 이따금 주방에 들러 물 한 잔을 마시고 종이 타월을 가져다 화장실 타일에 묻은 토사물을 닦느라 비틀거리는 동안 생각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왜 더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왜 과학적 연구가 더 많이 진행되지 않을까.
여자는 여기에 침착하게 대처해야 하며, 계속 일하고 먹고 자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엘리스에겐 이 상황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세상이 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엘리스에게 알려주는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모두 다산하는 여자를 원하는데, 하늘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내려서 방해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진통제도, 소독 장갑도, 부드러운 베개도, 멍하니 볼 텔레비전도 없이) 앞서 살았던 여자들을 생각했다.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자신이 겪는 일을 그 여자들도 겪었을 텐데, 사회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누군들 이상해지지 않았을까.
--- p.380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제시 버튼은 동화의 토대 위에 거대한 이야기의 성을 세웠다.”_〈가디언〉
2017년, 런던. 카페에서 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로즈’는 아버지에게서 갑작스럽게 충격적 고백을 듣게 된다. 단 두 권의 소설만 남기고 사라진 희대의 소설가 ‘콘스턴스 홀든’이 실종된 로즈의 어머니와 연인 사이였고, 심지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이라는 것. 로즈는 삼십 년 전 그날의 진상에 대해 듣기 위해 신분을 속인 채 콘스턴스에게 접근하는데… 조금씩 이어지는 고백들, 그 끝에 도사린 가슴 저린 진실은 무엇일까.
17세기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 미니어처하우스의 비밀을 추적하는 고딕 미스터리 《미니어처리스트》. 뮤즈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여성 예술가의 사랑과 욕망을 섬세하게 살핀 장편소설 《뮤즈》. 두 편의 장편소설로 글로벌 밀리언셀러 작가이자 가장 주목받는 스토리텔러로 우뚝 선 제시 버튼이 세 번째 작품 《컨페션》을 선보인다. 워터스톤과 내셔널북어워드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는 등 수많은 영예와 인기를 누린 작가답게, 《컨페션》 역시 출간 즉시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등 저력을 또다시 증명했다.
자료 조사에만 몇 년을 매달릴 수 있는 끈기와 그 진득함에서 비롯된 풍성한 디테일, 미스터리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함에 따라 읽다가 멈추기 힘들 만큼 긴장감 넘치는 정교한 플롯, 각자의 뚜렷한 욕망을 바탕으로 얽히고설키는 생생한 캐릭터, 미세한 결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한 심리 묘사까지… 제시 버튼 특유의 색깔은 더욱 진해지고 뚜렷해졌다. 새벽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이야기의 마력’에 가슴 설레는 이들에게 《컨페션》은 또 한 번 기나긴 밤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여성들에게 바치는 나의 러브레터입니다.”_작가 인터뷰에서
우아하고 창의적인 스토리텔링 능력도 매혹적이지만, 그 속에 울림 있는 주제 의식을 담는 것 또한 제시 버튼 작품의 강점. 《미니어처리스트》에서는 “모든 여성은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건축가다”라는 선언으로 여성의 자주성을 응원했고, 《뮤즈》에서는 남성 예술가에게 영감을 선사하는 존재로만 인식되는 ‘뮤즈’의 억압을 보기 좋게 비틀었다.
이미 제시 버튼은 여성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장 우아한 형식으로 펼쳐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컨페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장 현실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관계 속에서의 삶’이라는 문제를 꺼내놓는다. 누군가의 딸 혹은 누군가의 애인,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오롯이 ‘나’로 살기 위한 아름다운 분투를 담는 것. 얼핏 전형적 구조를 따라가는 것 같던 이야기가 전형성을 부수며 급물살을 타는 순간, 타고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제시 버튼에게 또 한 번 매료될지 모른다.
작가는 출간 후 한 인터뷰를 통해 《컨페션》은 힘겹지만 굳건히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밝혔다. 그 뜨거운 애정의 마음은 최종 챕터의 “날마다 짓눌리는 걸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싶다. 이것은 바로 당신이 만드는 당신의 이야기니까”라는 문장에 녹아 있는 듯하다. 안주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현실과 과감히 맞부딪히는 이들을 향한 따스한 메시지. 2021년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과 여성의 삶에 바치는 가장 문학적인 응원이 아닐까.

회원리뷰 (46건) 리뷰 총점9.5

혜택 및 유의사항?
파워문화리뷰 『컨페션』자아를 찾는 여정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블* | 2021.04.26 | 추천13 | 댓글3 리뷰제목
자아를 찾는 과정은 늘 모든 것에 가로막힌 상태에서야 가능한 것 같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래된 연인과는 설레는 감정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는 시간 속에 갇힌 상태. 그렇다고 헤어질 수도 없는 오래된 연인. 주변에서는 결혼과 아이를 말하지만 그 또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면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할 것이다.     ;
리뷰제목

자아를 찾는 과정은 늘 모든 것에 가로막힌 상태에서야 가능한 것 같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래된 연인과는 설레는 감정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보내는 시간 속에 갇힌 상태. 그렇다고 헤어질 수도 없는 오래된 연인. 주변에서는 결혼과 아이를 말하지만 그 또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면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할 것이다

 


 

 

미니어처리스트  뮤즈의 작가 제시 버튼이 새로운 판타지를 제공할 여성들의 이야기  컨페션으로 돌아왔다. 1980년 스무 살의 엘리스와 2017년 서른다섯 살의 로즈가 소설을 이끌어간다. 다른 시대인 만큼 서로 다른 인물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데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1980년의 엘리스도, 2017년의 로즈도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 어딘가에 기댈 데도 없고 엄마에 대한 애정에 굶주려 있는 상태였다.  

 

소설은 엘리스가 우연히 서른여섯 살의 여자 코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며 그녀의 보호 아래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하나다. 다른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어딘가로 사라졌던 엄마의 부재를 느끼는 로즈는 아빠로부터 비로소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를 찾기 시작한다. 아빠는 콘스탄스 홀든이라는 작가의 책 두 권을 주었다.  밀랍 심장  초록 토끼라는 소설을 쓴 작가와 엄마가 연인이었다는 말과 함께였다. 수많은 질문을 건네지만 아빠는 말이 없다. 로즈 스스로 찾기를 바랐다. 콘스턴스 홀든이 쓴 소설을 읽고 소설 속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았다. 작가를 찾으면 엄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이전트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가 콘스턴스 홀든의 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하는 걸 보고 로라 브라운이라는 익명의 이름으로 코니를 만났다. 두 가지 이야기로 흘러가지만 2017년의 로즈의 입장에서 읽게 되었다. 코니와 일하게 된 로즈를 응원하고 조와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길 바랐다물려받은 유산의 반을 갈라 조의 사업에 투자했지만 비전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수동적인 여성에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기를 바랐던 건 비단 나만 그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왜 조의 어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며, 하고 싶은 말을 참는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엘리스와는 다르지 않는가.  

 

로즈는 코니를 만난 후에야 조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조와 함께 있을 때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자아는 영원히 갇히고 말 것 같았다. 드디어 자신의 자아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별을 통보하고 새로운 삶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었다. 모든 소설이 그렇듯 로즈는 코니에게 엄마의 소식을 묻지 못한다. 그저 코니가 쓰고 있는 소설  변심속에서 엄마의 흔적을 유추할 뿐이었다. 코니는 로즈에게 마음을 열어 지난날의 감정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행이라는 것은 참 중요하다.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준다. 산후 우울증이 찾아와 힘들었을 때 엘리스가 선택한 것도 여행이었고, 로즈가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발판을 마련했던 것도 여행이었다. 삶에 있어 아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다. 나의 선택이 마음이 드는지, 내가 행복한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짐을 꾸려야 할 때다. 그 곳이 어디든 우리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여행을 떠나야 할 때다.  안에 갇힌 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때다.

 

 #컨페션  #제시버튼  #비채  #  #책추천  #책리뷰  #도서리뷰  #소설  #소설추천  #영미소설  #영미문학  

1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3 댓글 3
파워문화리뷰 4월의 어느 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꼼* | 2021.04.21 | 추천6 | 댓글0 리뷰제목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본인이라고 믿는다. 하여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삶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비극은 그와 같은 자신감이나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삶이 불행한 이유는 이와 같은 깨달음을 젊은 나이에 미처 깨닫지 못한다거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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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스스로에 대하여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본인이라고 믿는다. 하여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삶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비극은 그와 같은 자신감이나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삶이 불행한 이유는 이와 같은 깨달음을 젊은 나이에 미처 깨닫지 못한다거나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가슴 깊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데 있다. 평생 동안 있을 가혹한 경험들의 대부분이 젊은 시절에 집중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지나친 낙관이나 자신감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쯤이면 자신은 이미 죽음 쪽으로 한 발 가까워졌음을 묵묵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가볍게 선택한 적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팔을 뻗어 여권을 건네는 행동이 진흙탕 속 수초를 헤치며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꼬치고기가 허리께로 쫓아오고, 발은 갈색 진흙 속에 빠지는 곳에서 말이다. 살아있으려고, 머리를 수면 위로 내놓으려고 애쓰는 행동에 날마다 짓눌리는 걸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싶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만드는 당신의 이야기니까. 너무나 불완전하고, 이따금 너무나 그릇되고 불행할지라도."  (p.509)

 

제시 버튼의 소설 <컨페션>은 500쪽이 넘는 상당한 분량의 장편소설이지만 딸(로즈)과 엄마(엘리스)의 삶이 교차되면서 펼쳐지는 까닭에 마치 두 권의 소설을 한꺼번에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1980년부터 1983년에 이르는 엄마(엘리스)의 이야기와 2017년부터 2018년에 이르는 딸(로즈)의 이야기는 각각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개별적인 서사로 꾸려지다가 결국에는 엘리사가 로즈를 낳는 장면으로 합쳐지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엄마의 얼굴도 모른 채 성장한 로즈로 인해 엄마인 엘리사와 딸 로즈가 모녀 관계라는 특별한 연관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단지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엘리사와 로즈의 삶을 한 평면에 올려놓고 개별적인 두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게 된다.

 

"엘리스는 내심 결혼이라는 개념에 (상대와 하나, 하나의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여겼다. 생각해보라. 그런 식으로 자신을 소멸시키고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니! 계속해서 한 사람으로 살기는 너무 힘겨웠다. 사려 깊고 상냥한, 더 나은 사람을 발견하고, 내 마음이 그날 밤 상대의 곁에 누워 있기만 하면 변화한다고 상상해보라!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걸어가는 느낌이면서도 상대의 인도를 받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렇게 쉬운 일이 있다니!"  (p.164)

 

작가인 제시 버튼은 스무 살의 매력적인 여인 엘리사가 유명 소설가인 콘스턴스 홀든(코니)을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한다. 젊고 매력적이지만 웨이트리스, 극장 안내원, 모델 등 변변치 않은 일을 전전하던 엘리스와 <밀랍 심장>이라는 소설로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서른여섯 살의 코니.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매력에 끌려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다소 의존적인 성향의 엘리스는 코니의 자신만만함에,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꼿꼿한 성향의 코니는 엘리스의 외적 아름다움과 자신에게는 없는 의존적인 성향에 이끌려...

 

<밀랍 심장>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엘리스와 코니는 영국을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타지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엘리스와 유명 작가이자 영화의 원작 소설가로서 셀럽 대우를 받는 코니의 일상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코니는 영화의 여주인공을 맡은 바버라와 급격히 가까워졌고, 바버라의 주선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더불어 그녀의 일상도 바쁘게 돌아간다. 반면 코니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온 엘리스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코니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코니는 엘리스의 생일도 잊은 채 지나치고, 이를 섭섭하게 여긴 엘리스는 화를 내고 만다. 미안했던 코니는 뒤늦게 엘리스의 생일 파티를 성대하게 연다. 술에 취해 잠자리에 들었던 엘리스는 문득 잠에서 깨어 창밖을 내다보게 되고, 코니와 바버라의 연인처럼 가까운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다. 사건은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엘리스는 코니의 절친인 샤라의 연하 남편이자 자신의 서핑 강사인 맷을 유혹하고...

 

"샤라의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아이는 진짜 사람이었다. 그녀의 것이었다. 샤라는 잃어버린 생명을 키웠다. 단순한 개념이 아니었다. 엘리스에게 주관적이고 터무니없는 주문을 했지만 그 속에는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인간 본연의 확신이 있었다. 샤라를 돕고 싶었다.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싶었다. 엘리스는 일어나서 풀밭을 향해 외쳤다. "혹시 임신하게 되면 그럴게요. 약속해요." 샤라가 돌아서서 엘리스를 보았다. 두 사람은 웃었다."  (p.220)

 

서른 살이 넘도록 뚜렷한 인생의 목표도 없이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한 일상을 살아오던 로즈는 어느 날 아버지인 맷으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두 권의 소설을 쓰고 잠적한 유명 작가 콘스턴스 홀든이 엄마인 엘리스의 옛 연인이었으며 로즈를 낳은 후 사라지던 날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역시 콘스턴스 홀든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로즈는 중증 관절염을 앓고 있는 은둔 작가 코니가 요리와 타이핑을 대신해 줄 비서를 구한다는 기사를 읽고 이름을 속인 채 가짜 신분으로 지원한다.

 

"코니는 나를 빤히 보았다.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 후회를 밀어내주죠. 좋든 나쁘든 간에요. 모두 언제나 변해요. 그러니까 동등하지만 상이하게 풍요로운 두 길, 똑같이 고난을 겪을 두 길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해봐요. 그 생각에 익숙해지면, 어느 길로 가더라도 성공과 실패를 다 겪을 거라고 여기게 되면, 그땐 마음을 정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할 말이 생각 안 나서 코니를 보기만 했다."  (p.364)

 

코니의 비서가 된 로즈는 코니를 위해 요리도 해주고, 코니가 쓴 원고를 타이핑하면서 가까워진다. 코니는 자신의 비서가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엘리스가 뉴욕에서 낳은 신생아 로즈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능력은 있지만 그저 남을 위해 희생할 줄만 아는 불쌍한 '로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코니가 새로운 소설을 탈고할 무렵 코니의 매니저인 데버라에 의해 로즈의 신분이 들통나고 만다. 로즈는 이미 조의 아이를 임신한 채 자신의 사업 파트너이자 오랜 연인이었던 조와 결별하고 코니의 집으로 이사한 상태였다. 로즈는 자신이 듣고 싶어 하던 엄마의 이야기도 듣지 못한 채 코니의 집에서 쫓겨나고...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로즈는 우수한 학생이었음에도 남자친구인 조에게 의지하여 카페에서 일을 하고, 모아두었던 돈도 조의 사업에 투자한 상태였다. 게다가 언제 하겠다는 결혼 약속도 없는 조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조를 따라 그의 부모님과 가족이 모이는 곳에서 휴가를 보내곤 했다. 엄마인 엘리스와는 다른 사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의존적인 성향은 비슷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찾아왔지만, 코니는 내게 어머니 대신 자아를 주었다.'는 로즈의 고백처럼 로즈로 인해 엘리스와 로즈의 삶이 바뀌는 것도 비슷했다. 젊은 시절 코니는 지나친 자신감과 거침없는 말투로 인해 엘리스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그로 인해 그들의 남은 삶을 달라지게 했지만 그 시절의 코니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했다.

 

계절을 앞선 더위가 어리둥절 사람들의 발길을 더디게 했던 4월의 어느 날, 자신의 삶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과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인해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는지 곰곰 되짚어본다. 화단의 철쭉이 비현실적인 화려함으로 빛나는 4월의 어느 날 제시 버튼의 소설 <컨페션>이 마음을 사로잡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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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엘리스와 로즈의 길 찾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샨**티 | 2021.05.11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일흔여섯의 어머니를 찾는 시간은 존재의 알갱이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질책할 때에도 어머니는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였을 것이라며 딸을 믿고 정서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아버지는 상상 속에나 자리하였고 기박한 세월을 보낸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오누이를 길렀다. 신산한 삶에 자애로운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어머;
리뷰제목

   일흔여섯의 어머니를 찾는 시간은 존재의 알갱이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질책할 때에도 어머니는 그럴 만한 일이 있어서였을 것이라며 딸을 믿고 정서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아버지는 상상 속에나 자리하였고 기박한 세월을 보낸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오누이를 길렀다. 신산한 삶에 자애로운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어머니였지만 자식을 향한 어머니 마음은 화톳불처럼 타올라 목울대를 적실 때가 많았다. 내리사랑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인 어머니는 사랑의 결정체이자 헌신적 사랑의 정수로 자리한다. 점점 땅과 가까워져 가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오지만 음성으로 안부를 전하고 단걸음에 찾아갈 수 있는 곳에 머무르는 어머니가 있어 든든하다. 노쇠한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며 소통할 수 있어 다행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엘리스와 로즈의 자백 속으로 빠져든다.

 

   그 시간, 그 공간에 머무르지 않았다면 인생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는 회의는 지금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기 때문일 테다. 누군가를 만나러 나간 거리에서 그 대상을 만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미로 속에 갇힐 때가 있다. 스무 살 엘리스는 기다리던 남자를 만나지 못한 대신 서른여섯 살 코니를 만나 헤어나기 힘든 사랑에 빠져들었다. 카페 종업원, 국립극장 안내원, 모델 일을 하며 지내던 엘리스는 코니의 보호를 받으며 그녀의 삶 깊숙이 들어갔다. 코니는 마치 엘리스를 새로운 모양으로 만들어내려는 듯 자신보다 열여섯 살이나 어린 그녀를 나만의 작품으로 창조하려는 욕망이 컸다. 환희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인의 손길이 머무는 시간을 탐닉하던 엘리스는 코니와의 생활에서 점점 자아를 잃어갔다. 코니의 사랑을 느끼고 확인하며 존재의 기쁨을 느끼던 엘리스의 감정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휘발되어갔다.

   

  욕망 때문에 편협해진 머리 작은 새

   라고 여긴 엘리스는 코니와의 동거가 점점 자신을 무능하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행복을 발견하는 양가성에 의문을 품는다. 런던을 떠나 콘을 따라다닌 엘리스는 언젠가는 그녀가 자신을 어딘가로 치워두고 싶어 할 수도 있음을 가늠하였다. 누군가에게 관찰되고, 누군가에게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을 드러낸 엘리스는 특별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잃어가는 일을 용인하기는 힘들었다. 코니의 작품 밀랍심장을 영화 촬영으로 그녀를 따라 할리우드에 왔지만 엘리스가 할 일은 없었고 무료함으로 채워질 뿐이었다. 엘리스의 생일도 기억하지 못한 날, 코니는 매력적인 여배우 바버라와 점점 가까워지면서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향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발견한다. 엘리스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모델 일을 자처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여기던 때, 인생에서 여자보다는 바다를 더 원한 남자 맷에게 서핑을 배운 엘리스는 또 다른 환락의 세계로 향한다. 코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변심한 그녀에게 보란 듯이 맷과 함께 바다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종국에는 그의 아기를 갖게 되었다.

  임신한 걸 알게 되면 아이를 꼭 낳아요.’

   뱃속에 품었던 아이를 잃고 힘들어하는 샤라는 남편의 아이를 잉태한 엘리스와 약속을 한 뒤였다. 상대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엘리스는 로즈를 낳았고 그녀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되었다.

저는 엄마를 몰라요. 아기일 때 엄마가 떠났어요.’

엄마의 부재로 아버지와 함께 지낸 로즈는 어딘가로 사라진 엄마의 소식을 찾아 나섰다. 아버지는 엄마의 일화를 들려주기보다는 콘스탄스 홀든이 쓴 두 권의 소설을 말하며 작가가 엄마와 연인이었다는 말만 전했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에? 재규어가 사는 나라로 가고 싶어.’

건너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며 엄마의 궤적을 찾기 위해 아빠에게 물음을 던졌지만 아빠는 딸 스스로 어머니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기를 바랐다. 자기 집착에 사로잡혀 감정적으로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조와 지낸 햇수가 쌓일수록 로지는 지리멸렬한 관계를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딸 로즈는 작가가 쓴 소설을 읽고 작가 콘스턴스를 찾아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세상을 제 뜻대로 주무르는 데 익숙한 작가는 타자를 칠 수 있는 가정부가 필요했다.

 

   엄마의 소식을 찾아 나선 로라 브라운은 놓쳐버린 길 어딘가에 진정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작가와 함께하였다. 자신감이 적고 두려움이 많았던 로즈에서 대담하고 능률적이며 재미있는 로라로 변신한 딸은 엄마의 자취를 찾아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 상황을 조작해 코니 집에서 일하게 된 로라-로즈-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진짜 누구인지 무시한 채 지내게 되었다. 비밀을 간직한 양파처럼 껍질을 벗겨내도 진실을 쉽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로라는 변심타이핑이 끝나가면서 처음보다 알기 힘든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 머무르자 코니 곁을 떠날 때가 머지 않았음을 예감했다.

 

   오랜 시간을 보낸 삶의 궤적보다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지 못할 때 우리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연인으로 보낸 시간의 다감했던 일들보다 남은 시간이 슬픔으로 채워질 수도 있음을 간파한 이들은 이별을 선택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서로 가꾸지 않으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처럼 허탈감을 남긴다. 엘리스가 코니를 떠나 다른 선택을 한 것처럼 로즈 역시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아 나섰다. 로즈 역시 아이를 출산하고 생물학적 아버지를 묻어 둔 채 가보지 않은 곳으로 향하며 인생 여행에 오른다. 코니는 연인이었던 엘리스와 딸 로즈가 함께 만든 초록 토끼 그림을 액자에 담아 그녀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삶을 지속하듯 로즈 역시 여행에서 돌아와 지난 시간을 정리하며 새 길을 찾아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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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7건) 한줄평 총점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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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5점
제시버튼이 또 제시버튼했다라고밖에. 너무나 재미있는, 하지만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책!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플**르 | 2021.05.11
평점5점
의 나침반이 되어준 책이고 참으로 깊은 여운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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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 2021.04.29
평점5점
간의 흔적들을 따라가며 더욱이 아리고도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는 이 책은 정말 제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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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 |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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