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그는 전액 장학금을 따내고 학생회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정치인의 꿈을 향하여 첫 걸음마를
뗐다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그에겐 학생회장으로서 남다른 포부가 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빵돌이’ 같은 친구들에게 힘이 되는 학생회장이 되겠다는 다짐이 그것이다.
---「빵돌이, 학생회장이 되다」중에서
유신 치하, 긴급조치가 발령된 상황에서 총학생회장이 된 그는 유신반대 집회를 조직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유신독재가 유화정책을 펼 시기여서 기소도 안 되고 풀려난다. 그가 대학을 떠날 무렵에는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유신 독재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그 잔혹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독재에 저항하는 후배들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암울한 풍경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면서 그는 대학을 떠나 사회를 향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돈 안 드는 선거」중에서
그때 증인으로 나온 한보의 정태수 회장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나온다. 청문회에서, 정회장은 자신이 돈 뿌린 사람들을 일일이 거명하지 않았다. 그저 많은 사람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줬다는 사실만 순순히 시인한 상태였다. 그때, 정회장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한마디 덧붙인다. “정치자금을 거부한 사람이 딱 하나 있다.” 그게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정회장의 대답은 짧고도 명료했다.
“새정치국민회의의 정세균 의원이다.”
---「‘안 받아먹은’ 유일한 의원」중에서
그가 줄기차게 재벌개혁을 강조한 이유는 그가 재벌기업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재벌이 어떻게 움직이고, 돈이 어떻게 왔다 갔다 하는지, 그는 재벌의 빛과 그림자를 꿰뚫고 있었다. 어떤 조직을 개혁하고자 할 때, 그 조직의 생리를 제대로 모른다면, 그 개혁의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그는 재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었기에 개혁의 방향을 정확히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중에서
탄핵안 처리를 막기 위한 농성에서 의장석을 지키는 임무가 그에게 주어졌다. 점거농성 3일째인 3월 12일 새벽 3시 50분, 야당 의원들이 들이닥쳐 의장석을 차지하려고 했다. 뜬눈으로 지새다 잠시 눈 붙이고 있던 그는 추리닝 바람으로 의장석을 붙잡고 완강히 버텼다. 그 힘의 완강함에 질린 야당 의원들은 일단 퇴각을 결정했다.
---「추리닝 바람으로 국회의장석을 지키다」중에서
2009년, 그는 상주의 자격으로 두 번의 장례식을 치른다. 자신이 모셨던 두 분의 대통령을 차례로 떠나보낸 것이다. 그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기질과 행동은 달랐지만 꿈을 공유했던 정치적 동지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따르고 싶은 롤 모델이자 큰 산처럼 그를 일깨워주는 정치적 스승이었다. 당시 그의 심정은 부모님을 차례로 떠나 보내는 상주의 슬픔과도 같았으리라.
---「슬픔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상주로」중에서
그는 왜 소파의 높낮이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낮은 높이의 소파에 앉아도 괜찮습니다만, 정세균 개인 자격으로 일본 총리를 접견하는 게 아니라 한국 국회의장 자격으로 일본 총리와 회담하는 자리입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은 개인보다는 자기 나라 국민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야 하지요. 모든 일은 국민들이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결국 우리는 같은 높이의 소파에 앉아 회담을 했습니다. 국가간 외교는 언제나 대등해야 합니다.” 그의 소파론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소파는 가구가 아닙니다. 국격입니다.”
---「소파는 가구가 아니다 국격이다」중에서
인연과 악연을 교차하던 두 사람은 결국, 악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는 자리에 그가 서게 된 것이다. 2016년 12월 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투표자 299명 중 가 234표, 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오랜 인연과 악연을 거쳐온 현직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한 순간, 의사봉을 두드리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복합적인 감정들이 물밀 듯 밀려왔겠지만 그의 의사봉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 땅! 땅!
---「탄핵의 의사봉을 들다」중에서
2020년 1월 설 명절을 맞아, 그는 독립운동가 김영관 애국지사의 자택을 방문했다. 김영관 애국지사는 경기도 포천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군에 강제 징병되어 배속됐다가 중국 무석(無錫)에서 탈출해 한국광복군 징모 제3분처에 입대하여 항일 운동에 매진하신 분이다. 이제 하늘에 계셔서 명절에 뵙지 못하는 장인 어른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그는 그 곳에 가지 않았을까. 장인 어른이 못 다 이룬 꿈, 더 크게 이루겠다는 다짐을 안고.
---「포항이 낳은 독립운동가의 사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