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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344g | 132*188*14mm
ISBN13 9791196683610
ISBN10 119668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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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아직 더 많이 살아야 할 소녀에게 ‘끝’이란 것은 연필의 끝부분처럼 눈으로 확인될 수 있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 있게 자전거를 타고 ‘끝’을 찾아 내달렸을 것이다. 아마도 소녀는 그날 일을 계기로 어렴풋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사는 일은 그처럼 시작과 끝을 수없이 경험하는 일이라는 것을…….
--- 「그날, 소녀가 가려던 ‘끝’은」 중에서

친구도 나도 알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젊지 않다는 것을, 앞으로 아프지 않은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아질 거라는 것을, 우리의 ‘아픔’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한 과정이고 푸념처럼 서로의 아픔에 대해늘어놓는 건 같은 시간대를 공유한 우리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위로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 「찾았다, 기적!」 중에서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영화관 의자에 덩그러니 남아있어 본 사람은 안다. 천장의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난 뒤 깨닫는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일 때가 있다는 것을. 덕분에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난 얼마간은 세상의 날카로움에도 비교적 무디게 반응하게 된다.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을 보는 관점이 좀 부드러워진달까?
--- 「영화가 소설처럼 읽혔다」 중에서

카페에서 주문 즉시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건 있다. 그건 커피콩의 신선도와 바리스타의 기분 상태다. 특히 신선한 커피콩으로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까지 걸고 만들어 준 커피는 빛깔만 봐도 알 수 있다. 순전히 커피를 좋아하는 취향 덕분에 생긴 능력이 분명한 것 같다.
--- 「취향에 대하여」 중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배우를 찾아 일본에서 배낭을 메고 건너온 할머니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위치를 격하시키거나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삶을 즐길 줄 아는 모습은 누가 뭐래도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날 나는 나이에 있어서만 고수가 아니라 인생의 진정한 고수를 만났다.
--- 「고수를 보았다」 중에서

왼발에서부터 어깨에 이르기까지 내 왼쪽을 취약하게 한 가해자는 화상 치료를 한 의사도 아니고, 나를 잠시 방치한 엄마도 아니고, 옆방에 하숙하던 교사도 아니었다. 나를 가해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무관심’이 분명했다. 공소시효는 없지만 그렇다고 구속할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그것 때문에 아마도 난 살아가는 내내 왼쪽이 불편할 것이다.
--- 「왼쪽이 취약한 이유」 중에서

중요한 건, 제대로 미치는 거다. 경찰의 체포와 탄압이 계속되어도 도시가 존재하는 한 결코 행위를 멈추지 않을 도시탐험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건 그들이 제대로 미친 것 같아서다. 뭔가에 미치기로 작정했으면 온전히 미치는 것, 행위에 대한 설득력은 그렇게도 얻어진다.
--- 「미쳐야 허락된다」 중에서

살아보겠다고 갖은 몸부림으로 대항했을 옥돔을 단순한 요리법으로 먹는다는 것은 결코 녀석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구이나 찜 말고 뭔가 근사한 요리로 녀석의 죽음을 애도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요리법이 없었다. 그날 나는 저녁때까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건 대체 무슨 요리를 해야 죽어서까지도 당당한 옥돔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지에 대한 거였다.
--- 「당당함에 대한 예의」 중에서

과학이 발전될수록 인간의 삶은 점점 더 편해지긴 할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늙지도 않고, 질병도 없이 영생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많아질수록 포기할 것 또한 많을 것 같아서다. 어쩌면 그 범주에는 익숙하고 친근해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대거 포함될 것만 같다.
--- 「포기해야 할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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