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여정을 시작할 장소로 월트 디즈니가 우리를 위해 텔레비전, 영화, 테마파크 등을 통해 창조한, 때로는 애니메이션화되고 반론의 여지없이 경이로운 세상보다 더 완벽하고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디즈니는 이 세상을(아니면 최소한 세상의 일부를) ‘매직 킹덤’으로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기에, 우리는 현실을 탈출해 꿈을 꾸며 (아주 잠시) 특별해질 수 있다.
이 책은 스물일곱 개 챕터로 구성되어, 자유, 운명론, 친구, 가족, 윤리, 정체성, 장애, 그리고 죽음 등,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주제를 탐구한다. 각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함께 초기 작품인 미키 마우스와 구피, 〈잠자는 숲속의 공주〉부터 〈인어공주〉, 〈토이 스토리〉, 〈뮬란〉, 〈인크레더블〉, 〈겨울왕국〉까지 다양한 디즈니 명작을 만나보게 된다. 디즈니를 사랑하는 서른두 명의 철학자들이 멋진 동화에서 뽑아낸 흔치 않은 지혜를 들려주며, 디즈니의 철학과 미디어의 영향, 테마파크에 관한 예상치 못한 통찰도 덤으로 얹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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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손에 들면 디즈니의 철학 세계를 항해할 항로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과 믿음, 그리고 약간의 요정 가루뿐이다.
---「머리말」중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이후로 디즈니는 장장 30여 년간 공주 공급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101마리 달마시안〉과 〈정글북〉, 〈로빈 후드〉 같은 클래식 작품으로 성공을 거둔 후에야 굳센 의지를 지닌 여주인공을 내세운 〈인어공주〉로 다시 공주 계보를 잇기 시작했다. 에리얼은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공주였다. 그리고 뒤이어 탄생한 비슷한 맥락의 작품들이 〈미녀와 야수〉, 〈포카혼타스〉, 〈뮬란〉이다. 그렇다면 에리얼로 인해 디즈니 공주들의 문제점이 전부 해결됐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발전을 이끌어낸 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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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위치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종종 인간을 곤경에 빠뜨린다. 특히나 여성은 목소리 때문에 그러한 재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성서에서 이브의 혀는 인류를 죄악으로 인도하는 덫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치자 신들이 인류에게 형벌을 내리기 위해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를 보낸다. 그녀의 호기심은 온 땅에 불행을 야기한다. 또 다른 신화에서 카산드라는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진실을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저주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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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우슬라가 에리얼을 인간으로 만들어주겠다며 그 대가로 목소리를 요구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날 저물녘까지 에릭의 키스를 받아내면 계속해서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면 우슬라에게 영혼을 내줘야 한다는 게 구체적인 조건이었다. 우슬라는 에리얼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목소리의 가치를 최대한 폄하한다. “뭐 대단한 걸 달라는 게
아니야. 아주 작은, 정말 사소한 거야. 그게 없어져도 넌 전혀 불편하지 않을 거야. 내가 가져갈 것은…… 네 목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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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못 내는데 어떻게 에릭에게 키스를 받느냐고 에리얼이 항의하자, 우슬라는 이렇게 타이른다. “하지만 네 외모는 그대로야! 넌 얼굴이 예쁘잖아! 그리고 의사 전달은 몸짓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하하하!” 그러면서 네가 목소리를 못 낸다고 왕자가 아쉬워할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며, 외모와 몸짓으로 키스를 얻어내면 된다고 한다. 이렇듯 우슬라는 두 다리를 주는 대가로 에리얼의 목소리를 빼앗아가며, 남성의 욕구에 맞춘 전형적인 여성, 즉 말수가 적고 아름다운 여성을 에릭에게 선사한다.
---pp.23,29
우리는 안나와 엘사에게서 사랑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처음에 이들의 관계는 일종의 경고처럼 보인다. 욕망은 사람과 사람을 멀어지게 하며, 친밀감을 향한 욕망은 우리를 실망시킬 뿐이라고. 하지만 안나와 엘사의 강한 형제애는 결국 사랑이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걸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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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옹은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렇다는 확인을 통해 확신을 얻게 되길 소망한다. 누군가가 “그럼, 널 사랑해”라고 해주는 것과 “아니, 사랑하지 않아”라고 하는 것, 심지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사랑은 그것을 알고 확신하고 싶은 매우 인간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널 사랑해”라는 단순한 말이 우리 문화에
서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기만적이다. “널 사랑해”라고 말하는 건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옹의 표현에 따르면, 이 진술은 우리 자신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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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만이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두 자매를 구하는 건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난 행동이다. 〈겨울왕국〉에서 펼쳐지는 진정한 사랑은 왕자가 공주를 구하는 전형적이고 이차원적인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이 사랑은 훨씬 더 복잡하고 강력하다. 잠시 마리옹의 사랑 철학으로 되돌아가 사랑이란 무엇인지 명확히 살펴보고, 사랑을 우리의 욕구가 타인에게 충족되고 있다는 느낌으로 쉽게 정의해버리는 우리 문화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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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옹은 사랑의 풍요로움과 소중함을 회복하려면 사랑의 진술을 다음과 같은 질문의 형태로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 밖에 누군가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여기서는 “아니오”라는 대답을 들을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을 거부당할 가능성과 맞서 싸워야 한다. 안나와 엘사가 이러한 위험을 무릅쓴다는 점에서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진정한 사랑의 변혁적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안나는 간단한 질문(“같이 눈사람 만들래?”)으로 사랑을 표현하지만, 이 질문은 거부당할 위험을 안고 있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엘사의 대답은 “아니”다.
---pp.290,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