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 중 하나로 경제 전문 방송 CNBC의 간판 프로그램 <매드 머니>를 20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대중 앞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그는 ‘신흥 산업 중심의 개별주 장기 투자’를 강조해왔다. 과거 펀드 투자 중심에 치우쳐 있던 미국인들의 투자 양상이 오늘날의 종목 투자 중심으로 전환한 데에는 이처럼 개별주 투자의 선봉장으로 나서서 활동해온 그의 영향이 크다.
어린 시절, 회사가 망해서 주식이 휴짓조각이 되더라도 절대 팔지 않던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수익이 나면 매도해서 쇼핑을 즐기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투자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신문기자로 일하던 때에도 집에 도둑이 들어 전 재산을 잃고 차에서 노숙하던 시절에도 푼돈이 생기면 주식을 매수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지인의 부탁으로 투자 자금을 대신 운용해 15만 달러의 수익을 낸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증권 산업에 진출하게 됐다. 골드만 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3년간 근무한 후 회사를 나와 자신의 이름을 건 헤지펀드 ‘크레이머 버코위츠’를 설립했다. 1987년부터 2001년까지 그가 직접 펀드를 운영하는 동안 크레이머 버코위츠는 무려 연평균 24%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이는 아직도 월가의 전설적인 펀드 운용 사례로 남아 있다.
1996년에는 ‘기관 투자자보다 개인 투자자가 더 빨리, 더 좋은 정보를 가져야 한다’는 자신만의 철학 아래 증권 전문 인터넷 신문사 <더스트리트닷컴>을 창립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모든 금융 정보는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배런스> 등의 종이 신문을 통해서 하루 늦게 전파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더스트리트닷컴>이 등장하면서 시장 소식이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알려지는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또한 대형 투자은행과 상장기업에 우호적인 태도 일색이던 기존 금융 언론사들과 달리 <더스트리트닷컴>은 월가의 이해상충과 기업 편향성을 매우 직설적으로 비판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그렇게 구독자 수가 급속도로 증가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기업 가치만 15억 달러에 달하며 미국 최대 언론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방송인이 된 이후에도 시장 분석의 측면에서는 언제나 개인 투자자의 편에 서서 연준과 월가의 행태를 기탄없이 비판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 연준 관계자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는 발언을 내놓자 그는 생방송 도중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며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분노했다. 이듬해인 2008년에는 수많은 비판과 압박을 무릅쓰고 “앞으로 5년 안에 필요할지도 모르는 돈이라면 지금 당장 주식시장에서 빼라.”고 경고했는데, 다음날 곧장 시장 지수가 1,000포인트 하락하는 등 큰 파장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의 발언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마지막 경고장이자 그것의 시작을 알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2009년부터 엔비디아 매수를 강력히 주장했다. 시청자들의 뇌리에 회사 이름을 각인시키고자 집에서 기르는 반려견 이름까지 엔비디아로 바꾸기도 했다. 만약 이때 엔비디아에 투자했다면 그 수익률은 무려 39,000%에 달했을 것이다. 2013년에는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을 한데 묶은 ‘FAANG’이라는 단어를 직접 창안해 방송에서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투자 시장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도 집중 조명되었고 ‘빅테크 성장주’라는 하나의 투자 테마가 대중적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처럼 화려한 종목 발굴 이력 덕분에 그의 트위터 계정 팔로워 수는 현재 246만 명에 달하며, 지금도 ‘당신 덕분에 부자가 됐다’는 감사의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