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서울에서 호영진 박완서의 맏딸로 태어났다. 경기여중고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뿌리깊은 나무》 편집기자로 일했고, 1992년 박완서 문학앨범에 일대기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을 썼다. 201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치울에 머물며 『박완서 소설 전집』 『박완서 산문집』 등을 출간하는 데 관여했으며, 『나목을 말하다』와 박완서 대담집 『박완서의 말』을 엮었다.
그 밖에 쓴 책으로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그리운 곳이 생겼다』 『엄마 박완서의 부엌』 『아치울의 리듬』 『엄마 박완서의 옷장』과 동화 『나는 튤립이에요』 등이 있다.
이순자 작가는 너무나도 훌륭한 서울의 기록을 남겼다.
현진건과 박완서와 방정환과 윤동주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와 염상섭이 어깨를 스칠 수도 있었던 그 공간과 동선을 소상하고도 문학적으로 그려주었다.
어머니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경성역에 내려 보았던 그 구름다리로 시작되는 서울살이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20년 경력의 관광해설사의 그 내공이 놀라워 절로 존경심이 우러난다.
이 책을 들고 서울을 순례하다 보면 서울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리라.
이토록 문학적인 보물을 품고 있는 서울, 그 역사와 문학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강미자 선생님을 안 지는 오래 되었지만 가까워진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였다. 귀국하실 때마다 아치울 집에 오시고 싶어 하셨는데 그 마음이 무척 간절하였다.
처음 만나던 날을 기억한다. 광나루역 지하철 역 1번 출구에서 내 차에 올라타던 모습. 눈빛이 영롱했고 여성적인 부드러운 매력이 있었다. 집에 와서 거실에 앉아 들려주던 이야기 속으로 나는 빠져들었다.
어머니와 절친하던 분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강미자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강원도 벽촌에서 이화여중에 입학한 소녀가 겪은 이야기의 강이 노래처럼 흐르고 있었다.
아티스트라는 최고의 찬사를 하고 싶었다. 여든이 넘어서도 독창회를 하고 싶어 몸을 단련하며 애쓰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캘리포니아의 집 마당에 있는 레몬트리와 자쿠지가 떠오르는 강미자선생님.
그 후 둘이 나눈 글들과 사진들은 참으로 소중했다. 나는 선생님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솔직해졌다. 얼마나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고 내 글을 인정해 주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개인적으로 다정한 관계를 갖기란 쉽지 않다. 나는 선생님의 독창회에 가본 적이 없지만 오래된 영상을 찾아 보게 되었다. 1988년 말 뉴욕 센트럴파크를 울리던 "그리운 금강산"을 좋아한다.
철원 노동당사의 폐허를 울리던 한운사 작사의 "남과 북"을 들으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그 노래를 강미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르는 걸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스팡클이 반짝이는 무대의상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음악가를 본 적이 없다. 피아노 반주가 나오는 동안 피아노에 다소곳이 손을 얹고 몰입하는 손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연기를 좋아한다.
뉴욕의 콘서트홀에서 리스트의 곡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O Lieb, so Lang du Lieben kannst)를 부를 때 입었던 푸른보라 드레스의 스팡클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어머니가 계셨으면 정지용의 시 ‘향수’를 부르시는 장면을 분명 좋아하셨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 글을 읽으며 사전을 찾게 된다. 사전적인 의미와 함께 나만이 알고 느끼는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정확함에 안도하게 되고 어머니의 문학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래되어도 빛나는 물건이나 예술품처럼 이제는 세상에 없는 어떤 이의 흔적을 되짚으며 빛나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내가 더 이상 존재
글쎄요. 체험 안 한 거라도 체험한 것처럼 쓰는 게 제일 좋겠지요. 당연히 제가 쓰는 이야기들도 모두 체험한 것들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런 건 있어요. 뭐든 체험한 듯한 상태가 될 때까지 가야 쓸 수 있습니다. 내가 등단 초기에는 남자들 얘기도 배경도 그렇습니다. 그런 걸 쓰는 동안에는 남자가 돼야 하는 것이죠. 배경도 그렇습니다. 주인공이 상계동에 살면 좋겠다 싶으면 상계
그렇게 여러가지 꽃나무가 있는 줄은 몰랐다.향기 짙은 흰 라일락을 비롯해서 보랏빛 아이리스, 불꽃 같은 연산홍, 간드러지게 요염한 유도화, 홍등가의 등불 같은 석류꽃, 숨가뿐 치자곷,그런 것들이 불온한 열정-화냥기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분출했다. [그 남자네 집, 진절한 복희씨] 지난 봄날이 떠오른다. 아치울 마을을 찾아뵜는 일행에 끼게 되었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 작가의 말, 친절한 복자씨 ]내가 이직도 소설을 위한 권위 있고 엄숙한 정의를 못 얻어 가진 것도 '소설은 이야기다'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이 뿌리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뛰어난 이야기 꾼이고 싶다. 남이야 소설에도 효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