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브장송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등에서 언어학을 강의했다.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 《대변동》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등 100여 권이 있고, 지은 책으로 《원서, 읽(힌)다》 《기획에는 국경도 없다》 등이 있다.
왜 뜬금없이 이 책에서는 ‘느림’을 예찬하는 것일까? 무섭도록 빨리 변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저 위로하려고 느림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특히 SNS에 올라온 글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상대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일 수 있다. 이런 성급한 반응에는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다. 자칫하면 이른바 가짜뉴스에 휘둘리는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실수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바로 ‘느림(lentuer)’이 필요하다. 느림의 어원인 letus에는 지금의 느림을 연상하는 ‘나태함’이란 뜻 이외에 ‘탄력적이고 유연함’이란 뜻이 있었다. 도형으로 말하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직선은 천편일률적이다. 하지만 곡선은 우아하고 다양하다. 곡선적인 삶은 여유로운 삶이며, 곧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삶이다.
죽음과 함께 평생을 살아 온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죽음을 정의했다. 죽음은 고통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죽음은 그저 순전한 은총의 눈송이처럼 우리에게 조용히 찾아올 뿐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한층 자유롭고 분별력 있게, 또 행복하고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저자가 죽음을 앞두고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이다.
유아적 사랑이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라는 원칙을 따른다면,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라는 원칙을 따른다. 미성숙한 사랑은 “나에게 네가 필요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반면, 성숙한 사랑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나에게 필요한 거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