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번역가. 33년 동안 저널리스트로서 자본주의 정글을 탐사하며 석학들을 두루 만났다. 매일경제신문 런던 특파원, 금융팀장, 논설실장, 고려대 관훈정신영기금 교수를 지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정글노믹스』 『부자 클럽 유럽』 『증권 24시』를 썼고, 『보수주의』 『좁은 회랑』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불평등을 넘어』 『21세기 자본』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속적 성장은 혁신이 있어야 하는데. 혁신은 반드시 창조적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는 경제적인 면에서 옛것을 새로운 것으로 갈아치울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기성 권력 기반을 뒤흔들기 마련이다. 착취적 제도를 장악한 엘리트층은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거부하기 때문에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어쩔 수 없이 단기에 그치고 만다. 둘째, 착취적 제도를
산업화 시도는 1958년 2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악명 높은 대약진정책으로 확대되었다. 마오쩌둥은 형편없이 작은 “뒷마당” 용광로뿐인데도 철강 생산이 1년 이내에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15년이 지나면 중국이 영국 철강 생산을 따라잡을 것이란은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할 방도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 계획의 목표를 달성
지난 목요일 저는 미국의 정부 형태를 헌법이 미국 국민에게 삶의 터전을 일굴 수 있도록 제공한 삼두마차 체제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물론 삼두마차란 3권으로 분리된 정부 권력, 다시 말해 입법, 행정, 사법부를 가리킵니다. 이 중 의회와 행정부, 두 마리의 말은 오늘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애를 쓰고 있지만, 나머지 세 번째 말은 그렇지 못합니다.
18세기 프랑스 도시의 삶은 고되고 불결했다. 수공업은 막강한 길드의 규제를 받았다. 길드는 일원에게는 두둑한 수입을 보장했지만, 외부의 진입이나 창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이른바 앙시앵레짐은 영속성과 안정성을 자랑하는 체제였다. 기업가나 재능이 있는 개인이 새로운 직종에 진출하면 불안정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니 용납 못할 일이다. 도시인이 고된 삶을 살았을 정도면
영국의 박애주의자 로버트 오언이 어느정도 사회개혁을 채택해 곤궁한 인민의 고충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오스트리아 정부를 설득했을때. 메테르니히의 측근 중 하나인 프리드리히 폰 겐츠는 이렇게 대꾸했다. “일반 대중이 모두 자립해 잘사는 걸 전혀 바라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통치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