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음악’ 혹은 ‘음악의 문학’이라는 시공간을 서영처라고 할 수 있지만, 저간의 사정은 간단치 않다. [피아노 악어]를 비롯한 전작들과 [노래의 시대] 등의 산문집에서 서영처는 음악의 이미지를 문장 곳곳에 배열했다. 이 개성적인 문학장에서 이왕의 리듬과 소리까지 다채롭게 호명할 수 있지만, 음악/문학에 대한 시인의 탐구는 이제 음악/문학 너머에 자주 머물려 한다. “눈물, 연꽃, 배임, 횡령, 사기 같은 단어를 섞으면 한 마리 악어가 나타난다/생각이 복잡한 가방 속에서 불쑥 꼬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는 악어의 관능은 여전히 주요한 모티브이지만(「콘트라베이스」) “마음을 휘감는 선율을 따라 너는 남고 나는 바다를 건너 떠나오고”처럼 명징한 장소성 또한 중요해졌다(「라 팔로마」). 첫 시집의 표제작 「피아노 악어」에서 “피아노 뚜껑을 연다/쩌억, 아가리를 벌리며 악어가 수면 위로 솟구친다/여든여덟 개의 면도날 이빨이 덥석 양팔을 문다/숨이 멎는다”부터 시인의 행로는 예감된 바 있다. 하지만 어찌 쉽사리 가늠하겠는가. 음악과 문학이라는 평행선을 따라가는 서영처의 여정은 문학의 발전(發電)과 암전(暗轉)이라는 측면에서 정치한 예측이 쉽지 않다. 이번 시집에서도 음악 요소가 여전히 유효한 시적 통점인 것은 다르지 않지만(「콘트라베이스」), 시적 좌표는 생과(「베를린 천사」) 생활과(「털실 고양이」) 그리고 세계에(「난민 캠프」) 대한 관점으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감각의 근원을 소리라고 믿는 시인에게 기표/이미지는 소리의 종속 갈래이다. 시인은 산문에서 자신의 음악 지향성을 ‘더 견고하고 체계화된 세계 속에서의 충만한 영혼’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진즉에 서영처의 문장 단위가 “울렁거리는 지층에서 태어”난 “검은 줄과 흰 줄의 팽팽한 줄다리기” 같은 영혼의 표면이라고 조금 짐작해 본다(「얼룩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