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뒤에 남을 말을 벤다”는 곡진한 문장이 세상 여기저기 떠돌고 있을 터인데(「말의 섶을 베다」), 이 또한 천영애 시집의 신체 일부라고 저장한다. 시인의 중언부언에 의하면 천영애는 말을 찾아내고 말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그 말은 능동적으로 사유하면서, 쌓이고 반복하고 겹치고 깊어지거나 확장되기까지, 세계 운동의 거부할 수 없는 가역반응을 남기고 시인에게 돌아와 속삭인다. 말 없음을 포함하되 그 말은 가혹함의 영역까지 도달한다. 심지어 말들은 “거즛”이란 역설을 움켜쥔다(「ㅅㆍ랑 거즛말이」). 말과 침묵과 거즛의 종류는 풍화와 진화를 거쳐 예언의 입을 가진다. 온전히 발화하려는 말의 치열함은 세계/생활을 이해하고 공유하려는 시인에게 어느 통점에서 ‘사랑’으로 번안된다. 이 시집이 연가의 형태를 가지면서 사람/존재에 대한 끝없는 환대와 애도를 시도하는 이유가 설명된다. 그 사랑은 천영애의 은유에 의하면 “페르시안 흠집” 같은 아름다움이면서 죽음에 저항하는 방식의 이름(들)이다. 약속이 자꾸 어긋나는 죽음은 살아 있음의 건너편(의식이 사라진)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식이 가능한)의 대자이기에, 천영애 시의 시작과 정체성은 분명하다. 천영애의 말을 다시 생(生)이라는 어휘로 변환 가능케 하는 설명이기도 하다. 천영애의 사랑과 생은 일별하면 김상용의 시조, 사르트르의 [구토], 향가인 「모죽지랑가」와 「풍요」, [만엽집], ‘귀얄무늬 청화백자’, ‘목곽분’, ‘일미진중함시방’, ‘주황얼룩무늬밤나방’ 등에게 연속성을 가진다. 이 매혹적인 질료들은 서로의 공감각에 헌신한다. 마찬가지로 말들의 자리라는 미학을 펼친 이 시집의 독특함은 빼곡한 “모스부호”이면서(「I AM」), 그 해독은 난해하지만 정결하고 어둡지만 드맑다.
친밀한 독자들이여, 천영애의 ‘말’과 ‘사랑’은 당신에게 도착해서 당신의 어떤 운명이 되려고 하는가, 하회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