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란 곳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울타리 너머로 시선을 옮길 때 어린이는 청소년이 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아니에게 이 의심은 바람 소리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벽 너머로, 배관을 타고 흐르던 바람 소리가 의미 있는 단어로 들리는 순간 드디어 모험이 시작된다.
프리지는 울타리 안의 세계에서 최상류층에 속하는 아이다. 자신들이 누리는 부과 권력을 아무런 부채감 없이 받아들이는 부모나 조부와 달리 주위를 돌아볼 줄 알던 프리지 역시, 책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 순간 비로소 낯선 세계로 걸음을 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영어덜트에 등장하는 갇힌 세계와 그 세계를 굳건히 유지하고자 애쓰는 내부자들은 견고한 성을 쌓아 사람들을 가두고, 사람들이 바깥을 꿈꾸지 못하도록 각종 음모를 꾸민다. 자신들의 헛된 믿음과 끝없는 탐욕을 벽돌 삼아 정교한 건축물을 구축한다. 통제 사회에 관한 색다른 상상력과 그릇된 욕망의 뿌리에 질문을 던지는 청소년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정통 영어덜트의 플롯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 우리가 읽던 영어덜트와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 웅성거리는 바람 소리에서 시작된 아니와 프리지의 여정이 무너진 땅길을 통과해 바깥세상에 당도했을 때, 분명한 의미를 가진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만난다는 점이다.
이들이 도착한 바깥 세계는 시와 노래를 소중히 품고 살아 온 존재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향기로운 시공간이다. 숲을 보금자리 삼아 오래된 미래를 실천하는 ‘바깥 사람들’을 만난 순간 두 청소년은 지금까지 살아 온 세계가 거짓된 이야기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거짓의 공간에서 아니의 할머니, 야기와 같은 민중이 새로운 생명을 키워 내고 선동의 언어에 속지 않으며,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소리를 경청하여 진실된 이야기를 간직했음도 알게 된다.
통제 사회와의 싸움에서 이들, 바깥 사람들의 무기는 시와 노래다. 거짓된 세계에서는 선전용으로만 쓰이던 시의 언어를 살려 내어 인간의 내면에 남아 있는 따뜻한 연대의 불씨를 피워 올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 준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작가가 시에 게 보내는 한 권 분량의 헌사일 수도 있다.
시와 소설을 흔히 주관과 객관의 언어로 구분한다. 시가 인간의 정서를 드러내다면 소설은 사건을 지켜보며 거리를 두고 성찰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모든 서사가 운문으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운문 서사(Novels in Verse)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시의 힘으로 내면의 불화살을 당겨 견고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평화를 노래하는 서사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시로 노래하는 혁명의 스토리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새로운 이야기가 내 안에서 들려온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의심하며, 우리 내면에 흐르는 바람 소리는 어떤 단어를 싣고 있는가? 그 속삭이는 시와 노래는 우리의 무엇을 건드려 마침내 무너지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