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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바깥 소리 … 9
Ⅱ. 비밀 … 35 Ⅲ. 붕괴 … 51 Ⅳ. 만남 … 73 Ⅴ. 물의 숲 … 101 Ⅵ. 별밤 … 129 Ⅶ. 귀환 … 149 Ⅷ. 잠입 … 179 Ⅸ. 약속 … 203 Ⅹ. 다짐 … 225 Ⅺ. 하루 … 249 Ⅻ. 전쟁 … 265 에필로그 … 321 작가의 말 추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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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의 그림책, 동화책을 쓴 윤여림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상자 세상〉, 〈코끼리 고모부〉 등의 그림책과 〈콩가면 선생님〉 시리즈, 〈수달 씨, 작가 되다〉 등의 동화책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윤여림 작가가 처음으로 청소년 소설을 선보인다. 정치 권력이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눈앞에 닥쳐 온 환경과 기후 문제, 시와 문학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이 어린 판타지 소설로, 첫 청소년 소설임에도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자랑하는 장편이기도 하다. 한 번 세계관에 익숙해지면 빠르게 읽을 수 있는 흡인력 있는 세계 속에서, 작가는 새로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윤여림 작가가 처음으로 집필한 청소년 소설을 만나러 가 본다. · 닫힌 세상, 이를 통제하는 정부가 그려진 정통 디스토피아 〈아니와 프리지〉는 노랫말로 시작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아니’가 세 살 무렵에 보고 있던 유아 필수 시청 영상 속 노래다. 바깥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범죄자들 연투국 다섯 지도자 국민이 될 수 없었다네. 이야호 이야호 이야아아아호! 보라, 불길에 타 죽는 바깥 사람들을. 본문 10쪽 세 살짜리 아니가 보고 듣던 영상을 통해 독자는 〈아니와 프리지〉의 배경과 세계관을 한 번에 이해하게 된다. ‘바깥은 불에 집어삼켜졌다. 불바다가 된 세상에는 정부가 ‘범죄자’라고 판단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 연투국 정부가 만든 안전한 주거 단지에서 사람들이 이주해 살아가고 있다.‘라는 〈아니와 프리지〉의 세계관이다. 그와 동시에 독자는 깨달을 수 있다. 노골적으로 정부를 찬양하고 바깥을 경계하는 노래를 어린 시절부터 ’필수‘로 시청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정부의 엄격한 통제하에 사회가 돌아가며 국민 누구도 지적하지 않아 작중 인물은 인식하지 못하는 디스토피아라는 것 역시 알게 되는 셈이다. 윤여림 작가는 바깥이 불에 타들어 가기에 사람들이 따로 마련된 안전하고도 제한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세계는 당연하게도 평등하지 않다. 바깥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았던 시민들은 지하 연뿌리 단지로, 정부 기관에서 일하던 특권층은 지상에 건축된 연잎 단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니를 비롯한 연뿌리 단지의 많은 사람은 불 세상에서 지켜 준 정부를 믿고 따르며, 연잎 단지와의 주거환경·진로 차별점에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있다. 〈멋진 신세계〉, 〈1984〉 등 디스토피아 문학의 고전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디스토피아의 핵심은 강력한 통제에 있다. 차별 역시 당연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이미 그 환경에 익숙해진 주인공은 계기가 없다면 그 체제에 순응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아니와 프리지〉는 정통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며, 청소년 주인공들이 세계의 진실을 목도하고 이를 알리고자 용기를 내고 성장한다는 점에서 정통적인 청소년 소설이다. · 어째서 세상은 불타올랐을까, 자연과 기후 재난 그렇다면 세상을 불태운 불은 어디서 왔을까. 불바다의 원인은 바깥세상에서 살았던 아니의 할머니 ‘야기’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초원을 태웠고, 숲을 태웠어. 초원과 숲 근처 사람들 마을을 집어삼키고 그 너머 초원과 숲을 타고 넘어 또 다른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그렇게 불은 급속히 퍼져 나갔어. 그리고 바다가 불에 타기 시작했다. (…)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방송을 탔던 유일한 시기가 바로 그때였어. 기업들이 폐기물을 바다에 버려도 제지하지 않던 정부의 탓이 크다는 내용들이었지. 며칠 못 가고 다 사라져 버렸지만. - 본문 278~279쪽 불은 자연에서 시작된 재해였다. 하지만 불이 이야기 속 행성의 전체를 태우는 재난이 되어 버린 건 인간의 탓이었다. 이건 비단 이야기 속 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산불과 홍수로 많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니와 프리지〉는 자연과 기후 재난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윤여림 작가는 특히 어린이에게 직면한 생존 문제로서의 기후 재난을 고려하다가, 들불이 자주 발생하는 거주지의 특성을 떠올리며 〈아니와 프리지〉의 배경이 된 불 세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배경이 정해지는 것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차별이 당연한, 불 세상으로부터 안전한 연투국을 지배하는 다섯 지도자라는 ‘정치 권력’이 탄생했다. 환경 문제는 불평등 문제와 분리될 수 없기에, 정치 권력이 개입한 디스토피아로서 배경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추구하다가 바다까지 오염시키고 불에 타게 된 〈아니와 프리지〉의 배경이 과연 멀리에 있을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어떨까? 환경과 기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자연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할 기회를 줄 것이다. · 시와 예술로 다시금 살아나는 인간성과 연대의 마음 아니와 프리지는 불을 피해 만들어진, 정부 입맛에 맞는 갇힌 세상에서 태어나 자라게 된다. 바깥은 여전히 불바다이고, 단지 안은 권력자가 엄격하게 통제하며 차별은 일상화되었고, 노래는 정부의 선전용 도구로만 쓰이는 세계다. 그 세계에서 우연히 빠져나간 아이들이 마주한 건 되살아나는 자연과 바깥세상의 ‘시’다. 정부의 공을 선전하거나 애국을 위한 노래가 아닌,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고 타인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어 주는 문학으로서의 시. 그 ‘문’을 통해 아니와 프리지는 서로와, 그리고 바깥세상의 사람들과 이어지게 된다. 눈부시도다 날갯짓! 아니와 프리지 가슴속에서 날개가 퍼덕퍼덕 심장을 쳤다. 심장이 요동쳤다. (…) “그 시가 너희들에게 그 결정을 따르게 만든 건 아닌가 해서.” 그랬나? ‘날갯짓’을 따라 퍼덕대던 자기의 심장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아요.” 본문 148-158쪽 아니와 프리지는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통해 현재를 보았고, 시인들의 시로 그들의 과거를 보고 듣게 되었다. 시로써 그들과 연결되었기에,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기존의 세계로 돌아가 진실을 폭로하기를 택한다.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맞서 싸우기를 택해 닫힌 세계에 침투했을 때도, 그들은 회복된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의 마음을 울리는 시의 아름다움 역시 무기로 사용한다. 문학평론가 오세란의 추천사처럼 〈아니와 프리지〉는 ‘시로 노래하는 혁명의 스토리’인 셈이다. AI를 비롯한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며 인문학에 대한 효용론적인 회의,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는 세상이기에 더더욱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시선이 함께 떠오르고 있다. 그런 지금, 시와 문학, 예술의 부드러운 힘을 믿는 〈아니와 프리지〉를 통해 우리 마음속의 시와 문학은 어떤 위치에 존재하며, 어떤 힘을 가졌는지 돌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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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 곳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울타리 너머로 시선을 옮길 때 어린이는 청소년이 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아니에게 이 의심은 바람 소리에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벽 너머로, 배관을 타고 흐르던 바람 소리가 의미 있는 단어로 들리는 순간 드디어 모험이 시작된다.
프리지는 울타리 안의 세계에서 최상류층에 속하는 아이다. 자신들이 누리는 부과 권력을 아무런 부채감 없이 받아들이는 부모나 조부와 달리 주위를 돌아볼 줄 알던 프리지 역시, 책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 순간 비로소 낯선 세계로 걸음을 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영어덜트에 등장하는 갇힌 세계와 그 세계를 굳건히 유지하고자 애쓰는 내부자들은 견고한 성을 쌓아 사람들을 가두고, 사람들이 바깥을 꿈꾸지 못하도록 각종 음모를 꾸민다. 자신들의 헛된 믿음과 끝없는 탐욕을 벽돌 삼아 정교한 건축물을 구축한다. 통제 사회에 관한 색다른 상상력과 그릇된 욕망의 뿌리에 질문을 던지는 청소년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정통 영어덜트의 플롯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 우리가 읽던 영어덜트와 차별되는 지점이 있다. 웅성거리는 바람 소리에서 시작된 아니와 프리지의 여정이 무너진 땅길을 통과해 바깥세상에 당도했을 때, 분명한 의미를 가진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만난다는 점이다.
이들이 도착한 바깥 세계는 시와 노래를 소중히 품고 살아 온 존재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향기로운 시공간이다. 숲을 보금자리 삼아 오래된 미래를 실천하는 ‘바깥 사람들’을 만난 순간 두 청소년은 지금까지 살아 온 세계가 거짓된 이야기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거짓의 공간에서 아니의 할머니, 야기와 같은 민중이 새로운 생명을 키워 내고 선동의 언어에 속지 않으며,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소리를 경청하여 진실된 이야기를 간직했음도 알게 된다.
통제 사회와의 싸움에서 이들, 바깥 사람들의 무기는 시와 노래다. 거짓된 세계에서는 선전용으로만 쓰이던 시의 언어를 살려 내어 인간의 내면에 남아 있는 따뜻한 연대의 불씨를 피워 올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 준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작가가 시에 게 보내는 한 권 분량의 헌사일 수도 있다.
시와 소설을 흔히 주관과 객관의 언어로 구분한다. 시가 인간의 정서를 드러내다면 소설은 사건을 지켜보며 거리를 두고 성찰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모든 서사가 운문으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운문 서사(Novels in Verse)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시의 힘으로 내면의 불화살을 당겨 견고한 세계를 무너뜨리고, 평화를 노래하는 서사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시로 노래하는 혁명의 스토리다.
이야기가 끝날 때쯤 새로운 이야기가 내 안에서 들려온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의심하며, 우리 내면에 흐르는 바람 소리는 어떤 단어를 싣고 있는가? 그 속삭이는 시와 노래는 우리의 무엇을 건드려 마침내 무너지게 할 것인가? - 오세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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