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주의 시에서 존재는 부재로 자신을 입증한다. 죽은 아버지와 오빠와 엄마가 그렇고, 책을 읽다가 사라진 어린 딸이 그렇다. 딸은 책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딸과 이별하기」), 언니의 화장대 유리 밑 사진 속에서 형부는 여전히 감나무 가지에 올라가 감을 딴다(「빈 자루」). 지하철 교량 구간에서는 읽고 있던 루신의 소설 주인공 아Q가 화자의 시선을 타고 한강 물로 뛰어내려 버린다(「한 페이지」). 류현주의 시집에서 생이란 이렇게 각각의 계기로 저마다의 시간을 향해 흘러가는 멀티버스의 중첩과 같다. 무관한 듯 존재하지만, 사실의 경계를 가뿐하게 넘나든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전화기 속 한번 다녀가겠다는 딸의 안부 문자가 그렇게 몸 없이 다녀가는가 하면(「문자의 얼굴들」) 눈밭에서 뒹굴다 젖은 털장화를 신고 실내에 들어온 화자를 남편과 딸아이는 알아보지 못한다(「털장화」). 없어도 있고, 있어도 없다. 실제로 없는 누군가를 밤새워 목 놓아 외치는 취객이 있는가 하면(「외치는 사람」) 외출 중에 화자의 머리가 사라지기도 한다(「얼굴 부처」). 이러한 결여와 어긋남은 화자와 세계의 비대칭을 보여 주지만, 또한 그 정념을 넘어 사물의 배후까지 투시하려는 아이러니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눈사람의 고달픈 전생을 읽는 화자의 시선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눈사람을 보라(「눈사람」). 얼마나 깊은가. 타자의 시선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