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천 시인은 1960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광주대학교를 졸업하였고,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1991년 『실천문학』 여름호에 신인 작품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생각만 들어도 따숩던 마을의 이름』, 『흰 길이 떠올랐다』, 『탱자꽃에 비기어 대답하리』 등이 있다. 계간 『시와사람』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현재 제주도의 ‘제주유람선’에서 홍보이사로 일하고 있다.
“꽃들의 작명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너였다/ 이 꽃은 관종이다/ 누구에게나 눈에 띈다/ (중략)/ 달바라기 아래 몰려드는 관음의 시간.” 시집 속의 그 시간들은 대부분 “꽃”과 “봄”의 소환이자 귀환의 여정들이 이어져 있다. 시인은 심지어 “벌교의 꼬막도 꽃으로” 본다. 살아서 움직이는 생령의 자세들은 모두 다 꽃이면서 봄이었던 것이다. 시인은 왜 꽃들의 이름을 추수하는 “작명소”를 자처하는가. -생명과, 생명의, 생명을 노래하는 목소리로 보인다. 그의 꽃을 여는 열쇠 하나가 여기에 있다. “자, 봄에는 꽃들에게 발기력을 배우세요” 부단히 꽃을 넘어가는 시인의 뒤태가 아름답기를 바란다.
누구나 시 쓰는 마음이 꼭 이만했으면 좋겠다. “쓰고 떫고/짭짤한 생의 오지랖/보풀 다 걷어내고/경전처럼 삭여낸/끈끈한 속살들만/파리한 떨림으로 부둥켜안아/서로의 시간들을 다둑여 주고 있다.” 「묵」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차행득 시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면 그가 꿈꾸는 화해와도 상통하는 점액질과 탄성의 열망들을 마주치게 해준다.
한편, 득세한 까치 무리와 직박구리들 사이에서 눈치껏 살아내는 딱새들의 시 「이것도 질문이 되나요」에선 시류의 폭력과 허구를 관통하고 나온 자의 ‘연민’을 읽어내게 하고있다. 시 속에의 연민은 일차적으로 시인의 세계관이다. “성”도 “이름”도 버리고 왔던 “괄호 속 삶” 속에서도 부단히 건져 올린 자아와 가계의 시편들 역시 시인이 건설한 “말의 벌판”을 거느리며 무수한 애환들을 삼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