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1970년 대전 출생. 1999년 [작가마당], 2007년 [현대시]로 등단.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저서로는 『근대의 두 얼굴, 김수영과 신동엽』, 『강원영동지역문학의 정체와 전망』, 『경계와 소통, 한국 현대문학의 다층성』, 『지역, 문학, 로컬리티』 등이 있다.
정전正典을 사서 읽는 청소년이 있을까. 대표적 작가와 작품을 가리키는 정전은 ‘문학’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현실과 감각을 담아내는 ‘문학’이기 어렵다. 이 시대착오적 거리감은 문학의 가치를 상쇄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전은 우리 근대 문학의 본령이요 웅숭깊은 언어의 정수이다. 그런데 그런 의미는 시대를 거슬러 현전하지 못한다. 수능이라는 입시 시스템이 견고히 작동하는 한, 공무원 시험 같은 제도에서 시와 소설이 지문으로조차 사용되지 않는 실정 아래, 문학이 지닌 의미는 아득하기만 하다. 어쩌면 ??시인에게서 배워라??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설이다. 이 책은 신성한 언어의 대리자로서 ‘시’라는 존재를 믿는다. 스스로 시인인 이민호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아래 무릎을 꿇고 미래 주역들에게 눈을 맞춘다. 뜨거운 자기 목소리를 지닌 세계 시민이 되어, 보이지 않지만 저마다의 별인 또 다른 나를 발견하자고. 시인이 전하는 영혼의 육성이 곧 내 것인 상상이자 사랑이라고.
자연은 궁극적 질서요 가치일 것이지만 이성은 이를 규정할 수 없다. 나무 한 그루조차도 스스로를 구성하는 무수한 분자들이 항상적인 운동 과정 속에 개방되어 있다. 언어라는 기호가 어찌 그 미증유의 생성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권정수의 『한 잎』은 존재에 가닿지 못하는 언어의 선험적 운명을 적시하는 듯하다. 나무 역시, “우리의 나무”는 ‘부재’(「나무는 우리의 부재다」)를 환기할 뿐이다. 그런 시편들은 기호 대신 한 조각 물성으로 현전코자 한다. 감각의 선은 종유석 위에 붙은 은행잎을 “노란 부리를 내밀며 애걸하는/어린 병아리”(「한 잎」) 로 전이시키고, “귀 모양으로 생긴 본질 하나”(「맛보는 아이」)가 태동하는 순간을 연출한다. 시 자체가 “나를 염려하고/나를 돌보던 것들”(「사물들」)로서의 사물이 되는 형국이다. 권정수 시는 때로 파격적 거리, 긴 호흡, 생경한 추상 등이 서정적 긴장을 비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시론의 공준보다 시적 사건의 체현을 위해 선택된 외장에 가깝다. “속이 텅 비어서/허공에/꽉 찬 말”(「말」) 일 뿐인 언어의 운명을 재구하려는 절박한 흔적일 것이다. 강원 영동권 천혜의 자연을 전유하는 또 하나의 시적 전위가 이렇게 우리 곁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