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다’라는 전제로 작동하는 체제이다. 우리 모두가 어리석은 편견과 욕망, 이기심 따위에 언제든 흔들리고 비합리적으로 격분하며 때로는 위선자가 될 수 있다는 전제는 필연적으로 시민집단의 의지를 대변하면서도 공동체에 더 나은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대표’의 개념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민들은 늘 대표가 나를 온전히 대표해주지 못한다는 불만에 차 있다. 이러한 풍조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혹자는 민주주의의 위기라고까지 말한다.
이 책은 일본 정치에 대한 시민의 불만 속에서 대안으로 등장한 ‘직접민주주의’ 개념을 차분하게 논박해가며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본질을 ‘대표제’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작금의 한국정치에 더 큰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시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겠다는 ‘직선제 쟁취’라는 구호로 시작되었고 최근에는 기술발전과 더불어 촛불집회와 같이 광장에서의 시민참여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갈구가 더 커지고 있다. 소위 ‘집단지성’ ‘SNS 정치’와 같은 단어들이 그런 경향성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공론장의 황폐화’, ‘사이버 불링’에 가까운 다른 의견에 대한 조롱이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무엇이 ‘직접’이고 무엇이 ‘책임’있게 ‘대표’된다는 것의 본질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없이는 그 모든 낙천적 논의들이 민주주의를 또 다른 ‘테크노크라시’나 ‘유한계층’의 놀이터로 전락시킬 위험성마저 있다.
이 책 속에서 민주주의를 둘러싼 매력적인 단어들의 상찬속에 숨겨진 디테일을 저자와 함께 꼼꼼히 탐구해보자. 그렇게 신화가 주는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오히려 차분한 현실의 모습이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변화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