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요한 15,13). 1980년 3월 명동성당 사순절 특별강론의 주제 말씀으로 골라 김재규 장군을 기렸던 성경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은인을 기억하라!"는 신학교 시절 스승의 가르침을 저는 늘 가슴에 품고 살고 있습니다.
1979년 10월 27일, 영등포교도소에 갇혀 있던 저는 아침에 눈뜨자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날은 교도소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교도관들이 모두 군복을 입었고, 외부 작업이 중단된 채 재소자들은 일절 감방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답답해진 재소자들이 감방마다 큰소리를 치는 통에 난리가 났습니다.
“이상한데, 오늘은 왜 이렇지?” 하며 지내던 중 오전 11시쯤, 복도에서 봉사하던 재소자(당시 감옥에서는 일본말로 '소지'라고 불렀습니다)가 “저기 2번 방에서 물 뜨러 나오래요!” 하고 전했습니다. 교도관의 허락을 받아 물통을 들고 나가 그 방 앞에 섰습니다. 장윤환, 안성렬, 박종만 등 동아투위 기자 세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아세요?" 하시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어젯밤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총으로 쏴 박정희 대통령이 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눈을 감고 한참 기도했습니다. 눈물이 고였습니다.
“하느님 체험, 기적의 체험!”이었습니다. 그후 저는 김재규 장군과 그와 함께했던 박선호 의전과장, 박흥주 수행비서관(대령), 유성옥 운전기사, 이기주 경비원, 김태원 경비원, 이 여섯 분을 의인으로 모시고 날마다 미사 중에 기억합니다. 이분들의 은덕을 기리며 늘 빚 갚는 마음으로 공동체와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후 이분들의 구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뜻있는 많은 분들과 함께 ‘10·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자료집을 펴냈으며, 해마다 5월 24일에 여섯 분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김재규 장군의 생애를 오롯이 담아낸 김삼웅 선생님의 귀중한 작품으로, 김재규 장군의 조카 김성신 교수가 추가 자료를 더해 보완했습니다. 김재규 장군의 생애를 의기 어린 소년, 신의 있는 청년, 자애로운 교사, 강직한 군인, 책임을 다한 유능한 공직자로 그려내며, 무엇보다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는 진솔한 한 불자에 대한 증언록입니다.
1909년과 1979년, 두 의거를 이어 묵상하며
강신옥 변호사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기리며 김재규 장군을 ‘의사’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김재규 장군의 유언을 되새기며 묵상합니다. 이 책은 그 유언을 네 단락으로 나누어 전합니다.
1. 하늘의 재판, 곧 역사의 심판인 제4심에서 승리하리라 확신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종교적 신념의 가치도 덧붙였습니다.
2. 민주혁명을 지향한 의거였을 뿐 결코 집권욕 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1972년 10월 유신을 근원적으로 거부했던 지난날의 신념을 고백했습니다.
3. 미래를 향한 지향과 제안으로 민주 회복의 염원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네 차례에 걸쳐 혁명을 구상했고, 여러 방법으로 수백 번 정책 변화를 건의했습니다.
4.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유언의 핵심입니다. 또 그는 부하들을 ‘동지’라 부르며 그들의 구명을 호소했습니다. 특히 김태원 동지의 ‘와전옥쇄瓦全玉碎’, 곧 온전한 기왓장으로 남기보다 부서지더라도 옥이 되겠다는 숭고한 말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민주주의의 영원한 발전을, 그리고 10·26 민주회복혁명의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을 확신하며 염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 정치·경제·언론·학원·노동 등 모든 분야의 자유는 바로 김재규 장군 덕분입니다. 대통령도 비판하고 욕할 수 있는 자유, 이 자유를 찾아주고 보장해준 분이 과연 누구인지 우리 모두 진지하게 되묻고, 하늘과 역사 앞에 정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김재규 장군의 의거가 역사적으로 올바로 평가받는 그날이 오리라 확신하며, 그날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독자들의 영육 간 건강과 건승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