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여러 권의 소설책을 출간했다. 순수한 것보다 오염된 것, 강한 것보다 연약한 것, 안정보다 불안, 확신보다 망설임에서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있다. 겁이 많아 지나치게 신중할 때도 있지만, 마음을 먹으면 용감한 고양이처럼 전력을 다한다. 장래 희망은 괴팍해 보이지만 의외로 상냥한 할머니 되기, 오래오래 정직한 태도를 잃지 않는 작가로 살기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멸칭을 여성의 시선에서 입체적으로 전유하는 이야기들이라면 더는 수치나 두려움, 분노를 느낄 필요가 없다고 설득할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오히려 모욕을 함께 감수하며 ‘그러한 여자’가 바로 ‘나’라고 외치는 다른 여자들의 선언이다. 주어진 언어를 전복하는 일이 언어를 둘러싼 세계를 전복하는 일임을 깨달은 자매들의 속삭임이다. 열다섯 여성 작가의 릴레이 속에서 여성의 언어는 세계의 절반이 아닌 세계 그 자체가 되고, 때로는 세계의 전부를 넘어서는 세계가 된다. 이제 멸시와 편견의 언어는 우리를 더 취약하거나 강하게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세계로서 존재해왔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마저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리하여 빠짐없이 용감하고 아름답다.
‘소셜(social)’의 라틴어 어원들은 집합이라는 의미 외에도 연합, 동맹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란 특정한 집단이나 영역이기 이전에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는 관계라는 뜻이다. 이지은은 분명하지만 쉽게 망각되는 관계로서의 사회에 집중하며, 어느 때보다 정의와 공정, 연대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 맞닥뜨린 정치적 딜레마와 좌절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복합적이며 입체적인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보편의 정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은 역설적으로 수많은 관계에 의해 역동하는 새로운 보편을 가늠케 한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이다. 기실 그러한 태도는 창작자의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지은이 드물게 창작자들이 가진 미학적 윤리와 정치적 올바름 사이의 긴장을 이해하는 비평가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녀의 비평에서 강렬한 의미의 광휘를 부여하는 수사적 장식을 발명하기보다 작품이 지금-여기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하는 순간들을 만난다. 갈수록 비평적 언어의 위계에 저항해야 한다고 느끼는 작가이자 여전히 비평의 통찰에 매혹될 준비가 된 독자로서 『소셜 클럽』의 초대는 한없이 기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