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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간단한 가족 소개 성급한 에필로그 불가능한 희생 서로의 말을 배울 수 있다면 고양이는 떠나지 않아 좋은 수의사를 만나는 법 고양이는 쓸모가 없다 수의사가 되고 싶어 루이에게 내가 너의 엄마가 되어도 괜찮을까 산소방을 대여하지 마 가장 보편의 고양이 고양이는 내 정신상태에 관심이 없다 다시 사랑하기의 윤리 자랑하고 싶어서 쓰는 우리의 하루 아직 오지 않은 고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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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우리의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아니, 내가 초대된 용감하고 멋진 고양이들의 모험에 다른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다. 아니다. 지금 고양이와 함께 혹은 따로 삶을 여행하고 있는 누군가의 모험에 우연히 초대되고 싶다. 모험은 그렇게 연결되는 것이니까. 서로 다른 모험의 교차로에서 ‘우리’라는 단어의 의미도 다시 정의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비로소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그 역시 부족하지 않은 사랑이라고 서로를 다독일 수 있을 테니까.
---pp.35~36 한없이 부족한 내 사랑도 이토록 깊고 거대해서 누구도 우리가 나눈 사랑과 우정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듯, 나 역시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내 유일한 사랑을 통해 또 다른 유일한 사랑의 장면들을 본다. 그리고 고양이와의 삶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 어떻게 사랑을 재정의하고 인간을 구원하는지 알게 된 지금, 이 벅찬 축복이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야 만다. ---pp.55~56 인간과 고양이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도 고양이의 습성이나 행동 패턴 같은 비언어적 소통 방식을 학습해야 한다. 인간과 고양이가 서로의 언어를 끝내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극복할 수 없는 비극이지만, 동시에 이 불가능의 숙명은 사랑과 연대의 새로운 정의를 배울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전혀 다른 언어와 삶의 양식을 가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온 힘을 쏟을 수 있는 사랑이 있고, 또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용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p.68 고양이들의 육체가 사라진 세계에서는 우리가 나눈 모든 추억이 꿈으로 변한다. 그때는 인생에 다시 없을 강렬한 추억도 눈물과 고통만큼 생생할 수 없다. 장례를 치른 다음 날 아침이면 지나치게 긴 꿈을 꾸고 일어난 것만 같았다. 뼛가루로 만든 작은 조약돌은 조금도 나를 위로할 수 없었다. 꿈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다. 너무 근사한 꿈이어서, 다시 잠들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다. ---p.78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실은 고양이가 우리에게 와 함께 살다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꿈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고양이의 세계에 잠시 초대받았던 것이 아닐까. 고양이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폭이 좁은 담장 위를 걷듯 사뿐히 걸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은 담장 위 고양이에게 홀려 고양이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고양이가 이리로 왔다 착각하는 것뿐인 게 아닐까. 고양이가 내게 온 것이 아니라 내가 고양이에게 간 것이었으므로, 고양이는 애당초 떠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 않을까. ---p.85 우리는 쓸모없는 서로에게 기대 온기를 나누며 잠들고, 서로의 말을 흉내 내려 애를 쓴다. 과연 그 어떤 인간이 서로에게 이토록 쓸모없는 존재와의 동행을 기꺼이 허락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삶에서는 오직 고양이만이 그런 기회를 주었다. ---p.116 고양이에게 사료 대신 사람이 먹으려고 구운 생선을 나누어주는 골목에서 태어난 루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걷어차는 골목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루이야. 그래서였을까. 너와 함께 살게 된 후로 꼬질꼬질하고 비쩍 마른 몸으로 엄마와 함께 드나들던 집을 찾아왔던 오래전 네 사진을 보면, 때로 네가 나 자신처럼 느껴졌어. 내가 살아남아 너에게 종이 다른 엄마가 되기까지 나 역시 친절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골목을 오래 헤매야 했거든. 좁고 미로 같은 골목을 배회하며 자꾸 넘어지고 다치는 게 나의 삶이었어. ---p.141 우리는 흔히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 또한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얼마간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는 인간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고 있지만, 두 마리의 고양이 곁에서 적당히 잘 살아가는 법을 느리게 익혀나가고 있다. 고양이들은 내 일상을 이 세상 누구보다 섬세하게 이해하지만, 내 정신상태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 무관심이 때때로 나를 자유롭게 한다. ---pp.214~215 너무 강렬한 사랑은 우리 눈을 멀게 한다고 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퍽 그럴싸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양이의 세계가 정의하는 사랑은 다르다. 고양이가 주는 사랑은 다르다. 고양이의 세계에서, 강렬한 사랑은 우리에게 새로운 눈을 준다. 새로운 입양은 새로운 사랑이 아니다. 우리가 새롭게 배운 사랑의 실천이다. 그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당신과 당신의 고양이가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도 숨겨져 있던 공간으로 이동하는 작은 문이 열린다. 그 문 뒤편에는 분명 지금껏 너무 크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드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하나의 세계 안에 그보다 커다란 세계가 존재하는 사랑의 물리가 거기에 있다. ---pp.224~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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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나이로 팔십,
세 고양이의 가족이 되기로 했다 “아직 경험한 적 없는 세계를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을까. 고양이가 존재하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5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다수의 소설을 발표하며 단단한 입지를 다져온 소설가 천희란의 첫 번째 에세이. 한 번도 반려동물과 살아본 적 없는 초보 보호자가 첫 반려묘로 열다섯 살의 노령묘 세 마리를 맞이하며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2024년 겨울부터 두 달간 발행한 메일링 서비스 ‘고양이는 떠나지 않아’의 연재 원고를 다듬고, 새로운 장을 덧붙여 한 권의 책으로 완성했다. 아픈 고양이를 돌보며 마주한 현실적인 어려움, 이별 뒤에 남은 후회와 상처를 받아들이는 과정, 그리고 텅 빈 마음의 자리를 또 다른 고양이들에게 내어주기까지의 궤적을 담담하고도 진솔하게 써 내려갔다. 상실 이후 다시 시작된 사랑의 모험 유일한 사랑을 통해 본 유일한 사랑의 장면들 천희란 작가가 세 고양이 ‘루아꼼(루이, 아라, 꼼)’의 가족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아이들의 나이는 이미 열다섯이었다. 집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15년 안팎임을 감안하면 초고령묘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적도 없었다. 루아꼼을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와 강아지를 무서워했고, 오랜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스스로를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에 감히 누군가를 책임지는 삶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끝내 고양이들을 향해 손 내밀기를 결심한 것은 다름 아닌 삶의 통제 불가능성에 저항할 수 없다는 진실 앞에서였다. 그건 그 순간 벌어진 선택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미 오래전 내린 결정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까웠다. 그 끝이 소멸임을 알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용기, 비로소 다섯 고양이와 함께하는 모험의 시작이었다. 고양이 나이 열다섯은 사람 나이로 팔십대에 해당한다. 노령의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은 삶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뒤바꾸는 일이었다. 온 집 안에 모래가 굴러다니고, 방광 근육이 약해진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소변 실수를 하기도 했다. 기력이 급격히 쇠해진 아이들을 위해 환묘 커뮤니티를 뒤져가며 대체식을 찾고, 피하 수액을 맞추고, 직접 캡슐링한 약을 먹이고,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했다. 달에 구매하는 보조제값만 수십만 원이었다. 침대 프레임의 다리를 톱으로 썰어버리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고양이의 젊음과 활기보다 노화와 질병, 그리고 죽음을 먼저 추억으로 갖게 된 보호자”라 부를 만큼 치열한 시간이었다. 예상하고 각오했던 일이었음에도 이별은 너무나 이르게 찾아왔다. 급성 폐수종으로 꼼이 떠나고, 기나긴 투병을 버텨준 아라에 이어, 끝까지 곁을 지키던 루이마저 떠났을 때 세계가 붕괴하는 듯한 고통과 마주해야 했다. “만약 아이들을 조금 더 일찍 집으로 데려왔다면” 하는 짙은 후회가 짓눌렀다. 그러나 “고양이들과 함께 건설한 세계를 살아”온 시간은 작가를 과거 속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상실에 압도당해 미래를 잃어버리는 사랑이 아닌, 사랑을 다시 창조할 힘을 주는 사랑”, 세 고양이가 가르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그 세계를 지속시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닿았다. 그 마음이 작가를 일으켜 세웠다. 고양이가 떠난 자리, 다시 안녕을 말할 용기 나와 다른 종을 사랑하는 경험은, 내가 안다고 믿었던 존재들에 대한 몰이해를 깨닫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랑스러운 세 고양이 루아꼼은 작가에게 “누군가를 온전히 믿을 용기”를 가르쳐주었고, 매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상실의 상처를 온전히 극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떠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하지만 작가는 주저앉아 슬퍼하기보다 다시 일어서는 쪽을 택했다. “이미 지나온 길에 사로잡히지 않고 아직 경험한 적 없는 세계를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기”로, 루아꼼이 넓혀놓고 간 마음의 커다란 공동을 가족이 필요한 어린 두 고양이 ‘테오’와 ‘디오’에게 기꺼이 내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자 눈앞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하나의 세계 안에 그보다 커다란 세계가 존재하는 사랑의 물리”가 그곳에 있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는 고양이와의 삶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이 어떻게 사랑을 재정의하고 삶을 구원하는지, 그 벅찬 축복을 나누고자 하는 기록이다. 이 책이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이들에게 다정한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그 위로가 또 다른 ‘아직 오지 않은 고양이’를 기다릴 단단한 용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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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사랑할 수 있을까? 단 한 번의 사랑을 소진하고 난 뒤에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랑이 없는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할까? 나의 사랑은 몇 번이나 다시 생겨날까? 나를 사랑하는 것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랑이 있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천희란은 이 모든 질문에 사랑으로 대답한다. 처음과 끝이 사랑으로 충만한 책. - 유진목 (시인, 코나와 나무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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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희란과 나는 오래된 친구이지만, 우리가 각자의 고양이와 함께한 역사는 더 오래됐다. 고양이와 더 오래 함께 산 사람은 나였지만, 먼저 떠나보낸 것은 희란이었다. 작고 뜨거운 동물 한 마리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뜻밖의 가능성으로 채우는지,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낯설고 또 새로운 사랑을 연습하는 과정인지를 내가 먼저 알았다면, 작은 고양이가 우리 삶에서 걸어 나간 뒤에 남는 고양이 모양의 구멍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를 먼저 알게 된 건 희란이었다.
루이가 떠난 뒤 오래지 않아, 내 고양이 올리버도 고양이 별로 따라갔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는 굉장히 추웠다. 희란은 내가 그 세계에 적응할 때까지 자신이 먼저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나누어주었다.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양이는 그저 다른 방식으로 계속 존재하며 집 안을 조용히 가로지른다. 그들은 살아 있었을 때 가구들 틈을 유연하게 수직으로 이동하며 우리가 삶과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었고, 떠나는 길에는 간병과 돌봄, 의존과 이별을 실천하게 했다. 한 고양이를 사랑하는 일은 다른 속도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와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계속해서 곱씹게 한다. 우리는 떠난 고양이에게서 그런 것을 배웠다. 그리고 천희란은 어린 고양이들을 향해 다시 한번 자기 삶을 열어 보였다. 이 책이 그 지속되는 사랑과 취약해질 용기를 우리 곁에 남겨두면 좋겠다. - 송섬별 (번역가, 물루와 올리버의 가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