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의 나무 한 그루쯤은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을까. 플라스틱으로 찍어 낸 것들에 나뭇결을 더해 둔 것만으로도 괜스레 너그러워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를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곤 한다. 지구의 시간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무의식 한편을 나무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녹음이 짙어진 가로수 밑을 걸으면 빨랐던 발걸음이 문득 늦추어지거나, 작은 나뭇조각에서도 피부와 맞닿은 듯한 온기를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도시에 뿌리내렸지만, 각자의 마음속 나무와 공명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평범한 글자에 생기를 불어넣으면 한 편의 시가 된다. 배교윤 시인은 이제 신화와 역사, 그리고 내밀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나무에 불어넣는 중이다. 회화나무, 후박나무, 붉나무, 모감주나무……. 그가 들려주는 ‘나무’를 읽다 보면 신화에서부터 시작된 인류 역사의 보편적 시간과 그 속을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시간이 압축되어 만들어진 이야기의 나이테가 점차 선명해진다.
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무의 후예이구나. 에덴동산의 나무 그늘에서 쫓겨나 신단수神壇樹 그늘 아래로 자리를 옮겼을 뿐. 배교윤 시인의 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내 마음속 나무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 문득 올려다본 머리 위엔 나무 한 그루 한결같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