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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상상력은 또한 고통을 없앤다. 한 편의 아름다운 시는 의학적 치료를 넘어서는 카타르시스를 우리에게 준다. 그래서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이나 수필에 짓는다는 표현을 붙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는다. 의. 식. 주. 인간은 살리는 기본 요소들만 짓는다는 표현을 할 수 있다. 여러 번의 수고가 들어가야 짓는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시를 짓는 것은 곧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이것은 나태주 선생의 시 철학이기도 하다.정신분석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얼어붙은 땅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심정처럼 고통을 함께 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할 때 자비가 생긴다. 공감의 싹이 트는 것이다. 시인의 마음과 정신치료자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치료라는 의학적 장르와 치유라는 시의 영토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시를 짓고, 시는 사람을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