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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9
서문 19 1부. 광기 1장 정신장애운동과 인정에 대한 요구 37 1. 들어가며 37 | 2. 정신장애운동의 간략한 역사 42 | 3. 광기의 의미 61 | 4. 매드 프라이드 69 | 5. 매드 프라이드 담론에 대한 철학적 관여 88 | 6. 나가며: 다음으로 다룰 문제들 91 2장 정신적 고난과 장애의 문제 93 1. 들어가며 93 | 2. 장애 97 | 3. 정신적 고난 128 | 4. 나가며 132 2부. 인정 3장 인정의 개념과 자유의 문제 137 1. 들어가며 137 | 2. 자유로운 행위주체란 무엇인가?: 도덕적 의무 vs 인륜성 142 | 3. 《정신현상학》에서 나타나는 인정의 개념적 구조 148 | 4. 인정은 어떤 종류의 개념인가? 166 | 5. 인정 개념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76 | 6. 나가며 187 4장 정체성, 그리고 인정의 심리적 결과 190 1. 들어가며 190 | 2. 정체성 193 | 3. 인정투쟁 217 | 4. 인정의 심리적 영향 227 | 5. 나가며 241 5장 무시: 정치적 개혁 혹은 화해? 243 1. 들어가며 243 | 2. 사회적 해악으로서의 무시 245 | 3. 무시와 정치적 개혁 249 | 4. 무시와 화해 264 | 5. 무시에 대한 대응: 정치적 개혁과 화해의 역할 274 | 6. 나가며 278 3부. 인정으로 가는 경로 6장 매드문화 283 1. 들어가며 283 | 2. 문화란 무엇인가? 285 | 3. 광기가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까? 288 | 4. 문화적 권리로 가는 경로 295 | 5. 나가며 307 7장 매드 정체성 Ⅰ: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체성과 실패한 정체성 308 1. 들어가며 308 | 2.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체성과 실패한 정체성의 구별 314 | 3. 망상적 정체성 323 | 4.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체성과 실패한 정체성을 구분하는 방법론 357 | 5. 나가며 363 8장 매드 정체성 Ⅱ: 자아의 통합성과 연속성 365 1. 들어가며 365 | 2. 자아의 통합성과 분열 367 | 3. 자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387 | 4. 나가며 405 9장 광기와 인정 범위의 경계 407 1. 들어가며 407 | 2. 인정의 경계 408 | 3. 광기에 대한 서사들 417 | 4.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의 손상을 극복하기 429 | 5. 주관적 서사와 매드 서사의 차이 436 | 6. 나가며 440 4부. 매드운동에 접근하는 방식 10장 매드 정체성과 인정에 대한 요구 445 1. 들어가며 445 | 2. 인정에 대한 요구의 규범적 정당성 448 | 3. 매드 정체성 인정에 대한 요구는 규범적 효력을 갖는가? 451 | 4. 무시에 대응하기 471 | 5. 매드 서사와 문화적 레퍼토리 477 | 6. 나가며 483 11장 결론: 화해로 나아가는 길 485 1. 회의론자와 지지론자의 화해 485 | 2. 광기와 사회를 화해시키기 490 감사의 말 495 자료 출처에 대한 안내 499 주 500 참고문헌 538 옮긴이의 말 554 찾아보기 565 |
Mohammed Abouelleil Ra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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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술지 연구를 통해 얻은 경험은 내가 매드운동을 바라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매드운동이 추구하는 노력을 질환과 관련된 의학적·심리학적 모델을 넘어 광기와 관련된 문화적 레퍼토리를 확장하려는 시도로 간주하고자 한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내가 의도한 것은 매드운동의 주장과 요구를 존중하며 진지하게 마주하는 것이다.
--- p.15 매드 프라이드는 자신들의 경험이 정신의학의 영향 아래 의료화되는 것을 거부하며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관점을 정립한다. 이와 같은 매드 포지티브 접근법은 나를 병리화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아픈’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 p.75 정한 개인이 자유로운 행위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자기개념, 믿음, 행위의 이유 등이 사회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하며, 그러려면 그 인정이 해당 개인이 자유로운 행위주체로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 즉 주체는 홀로 자유로울 수 없다. --- p.187 나는 이 책을 통해 광기가 정체성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 매드운동이 활동가 집단을 넘어 더 많은 이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매드 서사가 즉각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 없다는 것을 보였다. 매드 정체성에 대한 인정 요구에는 규범적인 힘이 있으며, 사회는 반드시 광기와의 대화를 시작해야만 한다. --- pp.265~266 인정 요구에 대한 승인이 무조건적으로 이뤄질 수는 없으며, 승인이 실현되려면 해당 (매드) 서사를 실제적으로 마주하고 이해하며,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가능케 하는 주요한 수단이 바로 (넓은 의미의) 대화다. --- p.472 한국사회는 광기를 경험하는 당사자의 서사를 어떻게 써내려갈 것인지, 이를 위해 사회와 문화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그런 문화적 변환이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숙고하고 함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크나큰 과제를 앞두고 있다. 병리화된 언어 속에서 무시받아온 당사자들의 새로운 정체성의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이 책이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이다. --- p.561 |
정신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초기 당사자운동의 흐름
미쳤다는 것을 어떤 집단 혹은 공동체의 문화 및 정체성의 근거로 제시하는 흐름에 대해, 즉 매드 프라이드 운동과 매드 포지티브 운동의 인정 요구에 대해 사회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역사부터 짚어야 한다. 저자 라셰드는 1970년대의 민권운동, 소비자/(서비스)이용자/생존자c/s/x 운동 등 19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전개된 당사자운동의 흐름을 개괄하며 여타의 사회운동과 차별화되는 매드운동만의 급진성과 독창성을 발굴해낸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은 여성, 흑인, 성소수자들의 민권 투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정신장애인 민권운동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영국의 경우 정신과환자연합이, 미국의 경우 정신이상자해방정선, 정신과환자해방전선, 그리고 정신과적 폭력에 대항하는 네크워크 등의 단체가 그 흐름을 주도했다. 물론 이전에도 민권 의제를 외친 단체들은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 출현한 이 당사자단체들은 자신들을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을 배제하고 당사자들로만 조직을 꾸렸다는 점에서 노선을 뚜렷하게 달리했다. 정신의학 자체를 ‘종식’시키면서 강제입원 및 강제치료를 폐지하고 정신과 환자가 정신의료기관 밖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활동 목적이었다. 즉 이들은 정신질환을 가진 누군가가 있고, 그들에게 치료를 제공하는 의료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기존 ‘정신의료 시스템’의 핵심 가설 자체를 해체했다. 이른바 ‘의식화consciousness-rasing’라고 불리는 급진적 전환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당사자 정체성은 여러 갈래로 분화하기 시작한다. 라셰드는 이를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 살펴본다. 그 한편에는 의료 서비스가 시장 기반의 방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환자 및 환자경험자ex-patient를 일컫는 명칭으로 등장한 ‘소비자’ 혹은 ‘서비스 이용자’가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이런 식의 소비자 정체성을 비판하며 등장한 ‘생존자’ 정체성이 있다. 생존자 담론은 ‘환자’라는 용어에 담긴 의존성과 취약성을 폐지하고자 하며,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매우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한다. 이를테면, 살아남았다는 것은 “정신의료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는 강제구금” “파괴적이고 무용한 치료” “정신적 고난과 괴로움” “사회 안에 존재하는 차별과 낙인” 등 여러 층위의 고통과 폭력에서 살아남았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강제적으로 부여받았던 ‘환자’ 정체성 대신 ‘생존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택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는 자신의 경험에 관한 ‘전문가’로 부상한다. 그러나 생존자 담론에는 분명 광기라는 현상에 부착되어 있는 부정적인 가치(정신질환 및 병리학의 언어에서 영향을 받은 가치들)을 완전히 전복시키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다. ‘생존’의 개념에서 드러나듯, 이 담론은 광기의 경험을 여전히 부정적인 무엇으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광기’의 언어를 되찾아: ‘매드 프라이드’ 담론 라셰드에 따르면, 정신질환의 언어와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규범, 가치관에 확실하게 도전하는 담론은 매드 프라이드가 유일하다. 매드 프라이드 운동은 기존 당사자운동과 유사하게 정신장애 당사자가 겪는 부당한 억압 및 낙인의 경험에서 출발하면서도, ‘매드mad’라는 언어를 보존함으로써 광기를 긍정적인 무엇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즉 이 담론은 광기를 둘러싼 인식의 체계 전체를 전복시킴으로써 하나의 정체성으로서 광기를 적극적으로 주장한다(‘매드 정체성’). “광기의 언어와 텍스트는 억압의 언어를 전복시키고 폄하된 정체성을 되찾으며, 차이에 대한 존엄과 프라이드를 복원한다.” 1997년 최초로 결성된 매드 프라이드는 새로운 당사자운동의 시대를 열었다. 1993년 토론토에서 개최된 정신과 생존자 프라이드 데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프라이드pride’라는 용어를 끌어와, (서비스)이용자/생존자의 관점의 무력함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적지 않은 활동가들은 해당 관점이 관료적 시스템에 흡수되어 무기력해지는 현상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매드 프라이드 운동에 뛰어든 활동가들은 이 새로운 운동이 약물거부운동을 지속하면서도 “광기의 경험과 그것을 둘러싼 언어들”을 되찾을 것을 선언했다. 현재까지 매드 프라이드는 한국을 비롯해 캐나다, 영국, 미국, 프랑스, 호주 등 다양한 국가에서 개최되었으며, 특히 7/14로 지정된 국제 매드 프라이드 데이는 하루에서 일주일가량 지속되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 행사에서 당사자들은 다양한 예술 전시, 공연, 야유회, 시위, 음악 등의 다양한 활동과 정신의료 시스템과 관련된 패널 토론 등을 기획하며 매드 정체성과 매드문화를 기념한다. 매드 프라이드 운동의 핵심은 광기에 대한 관점의 변화에 있다. 광기를 질환으로 바라보는 관습적인 이해에서 그것을 정체성과 문화의 근거로 재발견하는 관점의 전환이야말로 매드 프라이드의 핵심이다. 따라서 광기의 경험은 더 이상 ‘정신질환’과 ‘정신병’이라는 언어의 틀에 갇히지 않으며, 광인 역시 환자나 희생자가 아닌 자신의 독특한 경험과 현상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주체가 된다. 이 운동에 관여하는 당사자들의 언어는 매드 프라이드의 급진성과 전복성을 생생히 드러낸다. “광기는 나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질환’도, 내가 치료하길 원하는 ‘증상’의 집합체도 아닌, 내 정체성의 한 측면이다.” “매드 포지티브 접근법은 나를 병리화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아픈’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정상’이라는 기존의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차별적이었던 개념에서 벗어나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모두가 미친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매드 포지티브’ 전략 그렇다면 매드 프라이드 운동은 정신적 고난 및 장애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까? 무엇보다 우리는 당사자 활동가들의 글에서 자주 언급되는 매드 포지티브Mad positive라는 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드 포지티브란 흔히 정신병리학에서 비정상적인 이상 징후로 간주하곤 하는 감각적 왜곡, 환각, 환청, 망상적 지각 등을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접근법을 말한다(매드 포지티브의 관점에서 그런 증상들은 ‘감각 인식이 고조되는 상태’ ‘강렬한 음성 감각과 시각적 자극’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에서 복잡성과 중요성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등으로 새롭게 언어화될 수 있다). 이런 시각에 따라 광기라는 현상은 독특하고 창조적인 산물들의 잠재적 원천이 된다. 매드 프라이드 관련 글과 당사자 활동가들의 발언에서 광기와 창조성 사이의 연결고리는 자주 언급되며, 그 글들은 ‘정신적으로 아프다’고 간주되는 이들이 이룩한 문화적, 예술적 공헌을 강조한다. “매드 프라이드는 ‘미쳤다’고 간주되었던 사람들이 우리 세계에 기여한 위대한 문화적 공헌을 상기시킨다.” “매드 프라이드는 광인들의 강점에 초점을 맞추고, 우리의 존재를 기념하는 행사다. 이것은 우리 삶을 비극적이고 살 가치가 없는 것, 혹은 광인들을 폭력적으로 묘사하는 경향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 그것은 우리의 기술, 공헌, 창조성, 시, 작문, 음악, 예술, 연극, 유머, 아이디어, 지식, 우정, 공동체를 기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매드 포지티브 접근법에 기반한 창조적 실천들은 명백히 부정적으로 보이는 광기의 측면을 새롭게 구상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매드 프라이드 운동은 매드 포지티브의 사유를 바탕으로 정신적 고난과 장애를 다루는 전략을 구축한다. 첫 번째 전략으로는, 광기가 정신적 고난과 연관되어 있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한 개인의 실패나 병리학적 요인에 따른 결과가 아닌 사회적 관계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문제로 여기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전략을 통해 매드 프라이드 운동은 학대, 차별, 억압, 낙인, 빈곤,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거론한다. ‘정신질환’이라고 불리는 증상들은 사회의 주요 영역 및 시스템에 존재하는 잔혹한 문제들과 결코 무관치 않은데, 이 지점을 누락한 채 그 책임의 화살을 개인의 생물학적 요인에 겨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략으로는 정신적 고난과 장애가 ‘질환’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기능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즉 그런 현상을 ‘질환’으로 만드는 것은 그와 같은 차이를 수용하지 않는 바로 그 세계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이 될 권리’가 있다: ‘광기’라는 정체성의 인정을 향해 양면성을 지닌 광기의 특성은 한 개인이 지닌 특질과 민감성이 ‘위험한 선물’일 수 있다는 매드 프라이드 담론의 핵심적인 주장으로 이어진다.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목소리를 거듭해서 듣는 등 광기의 고통스러운 측면은 광기라는 특별한 선물에 지불해야 할 수도 있는 대가와도 같다. 이처럼 당사자들은 광기 및 그와 결부된 다양한 현상들을 자신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질환’이 아닌 자기 정체성의 한 측면(내가 누구인지, 내가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인식하며 ‘자기 자신’, 즉 ‘광인’으로서 살아갈 권리를 주창한다. ‘광인으로서 살아갈 권리’에는 광기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공동체를 꾸릴 권리 역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권리들을 쟁취하기 위해 매드 프라이드 담론은 “광기 및 정신병을 정의하는 사회적 신념, 규범, 가치관, 전반적인 관행”에 변화를 요구한다. 사회가 광기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수용하고, 광기의 창조적이고 영적 잠재력을 인정하며 당사자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광인들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매드 프라이드의 전망이다. 그러나 매드 프라이드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든 관계없이 평등하게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평등의 정치’ 그 이상을 표명한다. 프라이드 운동이 요구하는 것은 그 다름에 대한 ‘인정’으로,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존중을 획득하고자 한다. 라셰드는 그렇다고 해서 그 담론을 의심의 여지없이 타당한 것이나 자명한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어떤 담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를 진정으로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의 운동을 더욱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서 그 운동의 파급력과 가능성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라도 확언보다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라셰드는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증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미쳤다는 것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을 세밀히 견주어나간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정체성’에 대한 사유와 인정의 범위 라셰드는 광기, 즉 미쳤다는 것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기 전에 광기가 문화를 구성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물론 당사자 활동가들의 문헌은 광기의 독특한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매드문화의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사실상 매드문화라는 발상은 문화공동체의 범주에 깔끔하게 들어맞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매드문화에는 체계적인 의사소통 매체로서의 공유된 언어shared language가 존재하지 않는다.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은 사람들은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기 때문에 각자의 지리적 위치가 다르며, 단일한 언어나 공유된 역사 같은 것이 존재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런 특성은 광기가 하나의 문화를 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의 설득력을 약화한다. 그러나 라셰드에 따르면, 문화적 권리에 앞서 우리가 검토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 정체성’의 문제이다. 만일 광기가 문화(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문화적 권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결국 정체성의 문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이렇듯 라셰드는 문화가 정체성에 결정적으로 의존하며, 문화적 권리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정체성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또한 정체성은 문화적 소속 이외에도 직업, 인종, 종교, 성별, 성 정체성 등 다양한 집단 범주의 영향을 받으며, 문화적 권리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의 핵심 쟁점은 ‘정체성’에 있다. ‘각자의 정체성의 타당성과 가치에 대한 상호인정,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화해적 태도로 서로를 마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망상, 극단적인 기분, 수동성 현상 등으로 발현되는 광기는 정체성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정체성 형성의 기반을 약화하는 ‘정신병’에 지나지 않는가? 이와 같은 광기의 현상들은 흔히 중대한 인식적 결함을 나타낸다고 여겨지며, 따라서 실패한 정체성으로 섣불리 단정되곤 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라셰드는 어떤 정체성 주장이 사회적 인정의 범위에 들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세 가지 요건을 제시한다. (1) 해당 주장은 실패한 정체성이 아닌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체성이어야 하며, (2) 통합된 정신의 표현이어야 하며, (3) 충분한 기간에 걸쳐 지속되어야 한다는 요건이 바로 그것이다. (1)과 관련해 라셰드는 해당 주장이 진릿값을 가질 수 있는지, 즉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한 뒤, 진릿값을 가질 수 있다고 간주되는 경우에 대해 착오의 본질을 살피며 판단을 이어간다(애초 진릿값을 가질 수 없는 주장들은 대등한 지위를 갖는 하나의 관점에 해당하므로). 다시 말해, 당사자의 관점에서도 해당 주장이 틀린 경우 그것은 실패한 정체성에 해당하며, 해당 정체성 범주에 대한 급진적인 개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당사자가 틀렸다고 여겨지는 경우 그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체성이 된다. ‘유럽계 백인 여성’으로서 자신을 ‘흑인’으로 정체화한 레이철 돌레잘의 사례는 특정 정체성 범주(흑인)의 의미 자체를 의문에 부친다는 점에서 매우 논쟁적인 개념을 제시한다. 그녀는 흑인이라는 사회적 범주를 급진적으로 해체함으로써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주장했으며, 바로 그 점에서 (자신이 흑인이며 흑인 정체성을 가졌다고 믿는) 돌레잘이 단지 착오나 망상에 빠져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즉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체성의 함의를 파악할 수 있다. 어떤 정체성이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경청하고 토론을 진행해야 할” 가치가 있으며, 모종의 사회적·정치적 행동을 통해 그 정체성 범주에 문제를 제기하고 수정을 요청할 수 있음을 뜻한다. 결국 모든 망상적 정체성이 반드시 실패한 정체성인 것은 아니며, 각각의 정체성 주장은 각각의 방식과 맥락에 따라 세밀히 분석될 필요가 있다. ‘광기’를 새로 쓰기: 다양한 ‘매드 서사’의 가능성 광기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매드 서사Mad narrative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광기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하라는 요구는 곧 본질적으로 광기를 탈의료화하고, 지배적이고 억압적인 의료 서사를 정서적, 경험적, 심리적 다양성이 포함되는 대항서사인 매드 서사로 새로 써야 한다는 요구와도 같다. 이때 매드 서사는 자아의 분열 및 불연속성과 같은 특정 정신적 현상이 정체성 형성을 방해하는 손상으로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는 역할을 수행하며, 나아가 당사자에게도 자신의 체험을 통합된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청사진을 제공한다. 라셰드는 매드 서사의 이런 기능을 ‘광기를 정돈하는 것’으로 명명한다. 즉 광기를 정돈한다는 것은 광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인정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를 말한다. 매드 서사가 행하는 ‘정돈’은 다채로운 인정의 시나리오를 가늠하고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 책에서는 ‘영적 변화’의 서사, ‘위험한 선물’ 서사, ‘치유의 목소리’ 서사로 대표되는 세 부류의 대항적 매드 서사를 소개하고 있다. 영적 변화의 서사에서는 광기의 영적 측면을 부정하는 정신의학적 접근법을 비판하며 영적 화두를 되살리고자 한다. 여기에는 영적 접근을 위한 사회적 공간과 광기의 잠재력에 대한 깊은 이해가 존재했던 다른 공동체 및 역사적 시대와 대조되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런 관점을 토대로 몸-자아-세계로 분절되는 관습적 구분을 무너뜨리며 광기의 경험을 재구성한다. 위험한 선물 서사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광기만의 독특한 사고 과정에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서사는 당사자들이 직면할 수 있는 고난과 어려움을 인정하는 동시에 광기가 지닌 창조성과 독특한 관점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그 체험을 새로운 해석적 맥락에 위치시킨다. 마지막으로, 목소리 듣기 운동Hearing Voices Movement, HVM에서 비롯된 치유의 목소리 서사는 정신의학이 ‘환청’으로 간주하는 목소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다. ‘목소리 들림’ 현상을 정신병리적 현상으로 간주하는 대신,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와 의미 있는 인간적 경험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목소리는 “삶의 문제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나타내는 ‘메신저’”이기에, 당사자(목소리 청자)가 해당 목소리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이 서사의 핵심은 목소리에 대한 당사자 자신만의 독특한 이해에 있다. 목소리와의 특별한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당사자는 목소리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화해’로 나아가는 길: ‘광기’가 문화적 자원이 되는 사회를 꿈꾸며 라셰드가 제기한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우리를 ‘사회적 대화’라는 최종 종착지로 이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다시 쓰일 수 있다. 정신장애 당사자들 그리고 매드운동이 제기하는 인정 요구에 이 사회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사회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광기를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바라보는 정신의학과 그 틀을 깨고 광기의 창조성과 타당성을 제시해 보이는 당사자운동 사이의 극심한 대립은 쉬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 대립 구도는 사회적 대화에 존재하는 깊은 간극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여기서 라셰드는 달성된 결과로서의 화해가 아닌 태도로서의 화해를 논하며 대화에 필요한 태도와 기술을 섬세히 벼려나간다. 대화에 앞서 우리(모든 사회구성원)는 “다른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스스로의 타당성을 검증받고 자리 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그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즉 나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기획이 중요하고, 또 그 타당성을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일이 상대방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방의 말/주장을 경청할 수 있다. 이 경청 속에서 화해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매드 서사에 다가갈 때 필요한 태도는 바로 이것이다.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정신의학의 관점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무시와 오인을 초래하므로, 매드 서사를 이해하려는 (사회구성원들의) 진지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 물론 이해와 화해의 태도를 확장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방해물은 수없이 많다. 무관심, 부정, 방관자 효과부터 (타인과의) 정서적 연결의 부재,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까지, 우리의 관심을 가까운 지신을 넘어 더 많은 타인들에게까지 확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라셰드가 보기에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타인을 자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여기는 우리의 편협한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떤 타인을 우리와 같이 고통받을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인간의 핵심적 가치와 역량을 결여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화해를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일 수 있다. 이런 편견들을 뒤집고 타자를 자신과 같은 능력/역량을 지닌 존재로 바라볼 때 화해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라셰드는 광기와 관련한 작업의 중요한 향후 과제가 “우리를 성공적인 화해로 이끄는 대화”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개념과 방법을 찾는 데 있다고 지적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작은 단초를 앤 스위들러가 제시한 ‘문화적 레퍼토리cultural repertoire’ 개념(“문화란 상징, 이야기, 의례 그리고 세계관의 ‘공구 키트tool kit’이며, 사람들은 이 키트를 자신이 가진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다양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에서 발견한다. 매드 서사와 성공적 화해를 이룬다면, 우리는 의학적, 심리학적 관점을 넘어 광기와 관련된 문화적 레퍼토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광기가 문화적 자원이 된다면, 어떤 이들이 그 자원을 활용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매드 서사가 단지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의 더 많은 이들에게 수혜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당장 광기의 현상을 경험하는 이들, 심각한 사고장애나 인지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에 그런 현상을 경험할 수 있는 이들까지. 우리는 언제든 그와 같은 정신적 어려움,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존재다 결국, 사회는 반드시 광기와의 대화를 시작해야만 한다. |
라셰드의 작업은 야심 차고 놀라우며 또 소중하다. 인정이론의 틀에서 매드 정체성을 다룬 기존의 논의는 사실상 전무하다. 이런 조건 속에서 그는 광기가 한 인간의 ‘정체성’으로 존중되고 사회문화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논리와 경로를 섬세하게 구성해낸다. 이 책은 그 같은 변화를 현실에서 일구어내려는 이들의 분투에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다. -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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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기쁨이 떠오른다. 이 책과 이 책을 함께 읽어준 광인들 덕분에 나는 광기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쁘게 깨달았다. 광기 앞에서의 모든 포기와 도망의 기억들이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광기를 질환으로 간주한 의료적 모델에서 벗어난 연구자, 매드운동의 중요성을 포착하고 광인의 목소리를 경청한 연구자, 광기를 연구의 폐쇄병동에 방치해온 우리 사회 인문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연구자를 만나서 기뻤다. 아마도 이 책이 의지하는 인정이론이 매드운동에 대한 유일한 접근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접근법을 쓰든 우리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사회는 반드시 광기와의 대화를 시작해야만 한다.” - 고병권 (북클럽 『자본』시리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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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적 모델은 광기를 경험하는 당사자들을 은폐된 곳으로 유배시키고, 당사자들을 무가치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뒤 목소리를 거세했다. 이런 폭력은 때로 당사자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사라져간 당사자들에게 손짓하고 싶었다. 매드운동에 대해 토론하고, 우리가 겪어온 영적인 경험과 독창성으로 대서사시를 쓸 수 있다는 설레임을 나누고 싶었다. 저자는 광기를 소환하면서 당사자들을 이 세계로 호출한다. 집요하도록 철학적이며 사회적인 질문들을 던지면서 말이다. 매드운동의 대항서사는 광기를 체계화하고 정돈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당사자의 광기의 경험이 정체성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어야 할 것이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해방’이라는 오래된 본향本鄕을 일깨워준다. - 이정하 ((사)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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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는 것은 나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러하다. 광기와 무관한 인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의학의 언어를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으로 본 푸코는 광기와 이성이 서로 단절될 수 없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매드 정체성에 대한 거대한 지평을 열어준 이 책의 열정에 감사드린다. 두 번역자의 깊은 고뇌와 노고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데카르트는 400년 전에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 나는 당연히 나다. 데카르트의 명제를 비틀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광기와 이성의 구분이 없는 나를 생각한다. 그렇게 매일 나는 실존하며 살아간다.’ - 이영문 (전 국립정신건강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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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신질환은 생물학적 실체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인가?’라는 진보적이면서도 진부한 질문에 창조적이고 실천적인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다. 생물학적 담론이 독백을 멈추고 당사자들과의 대화의 장으로 나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교류해야 하는 이유를 선물처럼 알려주는 책이다. - 이용표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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