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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본명 김창수, 金九
국내작가 인문/사회 저자
출생
1876년 07월 11일
사망
1949년 06월 26일
출생지
황해도 해주
직업
독립운동가
데뷔작
백범일지
작가이미지
김구
국내작가 인문/사회 저자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가난과 양반들의 횡포를 경험했기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동학에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무지에서 깨어나야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근대적 교육사업과 항일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나 1911년 일제에 체포되어 15년형을 받고 온갖 고문을 당했다. 이때 백정, 범부들(평범한 사람들)의 애국심이 역사를 바꾼다는 의미에서 백범(白凡)이라는 호를 썼다. 3.1운동 후에는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원하였고, 광복군 창설 등 항일투쟁에 박차를 가했다.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조국에 돌아온 그는 남북분단을 우려해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통일정부 수립에 힘쓰다가 1949년 6월 26일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경교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는 두 아들에게 자신의 지난날을 알리려 쓴 것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있다.
1894 해주에서 동학혁명 지휘
1895 명성왕후 시해한 일본군 살해후 사형 선고
1910 신민회 참가
1911 105인 사건으로 체포 17년 형 선고
1919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
1926 결사단체인 한인애국단 조직
1932 이봉창, 윤봉길등의 의거를 지휘
1940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설치
1944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1948 유엔한국위원단 면담에서 단독선거 반대
1948 신탁통치 반대운동
1949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

수상경력

1962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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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 2026.04.25.
까?" 대답하니, 이씨는 손을 저으면서 답변하였다! "그런 것이 아니오. 대저 혁명이란 유혈사업으로 어느 민족에게나 대사인 데, 현재 우리의 독립운동은 민주주의혁명에 불과하오. 따라서 이대로 독립을 한 후 또다시 공산혁명을 하게 되니, 두 번 유혈은 우리 민족에게도 큰 불행 이오. 그러니 적은이 14)도 나와 같이 공산혁명을 하는 것이 어떠하오?"15) 나는 반문하였다. "우리가 공산혁명을 하는데 제3국제당16)의 지휘·명령을 받지 않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공산혁명을 할 수 있습니까?" 이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불가능하오." 나는 강경한 어조로 다시 말하였다. "우리 독립운동이 우리 한민족의 독자성을 떠나서 어느 제3자의 지도·명령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자존성을 상실한 의존성 운동입니다. 선생은 우리 시정부 헌장에 위배되는 말을 하심이 크게 옳지 못하니, 제(로)는 선생의 도를 따를 수 없으며 선생의 자중을 권고합니다." 그러자, 이씨는 불만스러운 낯빛으로 나와 헤어졌다. 이씨가 밀파한 한형권은 단신으로 시베리아에 도착하여 러시아 관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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