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와 말, 정보와 사건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타인의 비극은 화면을 통해 빠르게 소비되고 알고리즘은 다음 장면을 쉬지 않고 제시한다. 이런 환경에서 한 존재의 낮은 울음을 오래 듣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앵그르의 바이올린』은 속도를 늦추고 무릎을 굽혀 나무의 그늘과 몸의 상처, 사라진 사람의 빈자리를 읽도록 이끈다. 그것은 시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시는 세상이 누락한 페이지를 찾아내고, 말할 수 없는 존재의 침묵을 우리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박선우 시인의 바이올린은 크고 화려한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무의 옹이에 감춰진 바람, 젖은 꽃이 땅에 닿는 소리, 할머니의 마른기침과 폐가의 툇마루에서 흐느끼는 바람을 연주한다. 쉽게 들리지 않는 가장 낮은 음을 끝까지 붙잡고, 그 떨림이 독자의 마음에 닿을 때까지 언어의 줄 위에 선다. 그 낮은 현에서 울려 나오는 음악은 슬픔을 발견하는 시선이며, 지워진 생명을 기억하는 애도이고, 모든 존재가 자기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