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항상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여겨지는 질투에는 그것에 사로잡힌 이를 일시적이나마 유토피아로 이끄는 힘이 있다고, 이예지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다만, 이 유토피아는 누군가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타인의 소유를 빼앗아 가지려 하는 흔한 정념을 통해서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그런 정념은 끔찍하고 흔해 빠진 지옥을 열 뿐이다.
그리고 이예지는 질투할 줄 아는 존재만을 질투한다. 따라서, 반려견, 아기, 그리고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한 유토피아는 그가 질투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그의 유토피아는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이의 곁에서 오롯이 나의 꿈을 꾸는 이에게만 이따금 열리는 그런 것이다. 유토피아란 그처럼 드물고 일시적인 것이기에, 질투에 사로잡힌 이는 한 사람의 곁에서 다른 사람의 곁으로,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의 곁으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꿈꿀 수밖에 없다. 질투는 여행자의 힘이다. 이 책은 그 여행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