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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묵
국내작가 인문/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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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묵
국내작가 인문/사회 저자
충남 공주 출생(1961)
공주고등학교(53회)
단국대학교
해병대 1사단
현) 대한본국무예협회 총재
1 본국검예 <조선세법>
2 본국검예 <본국검법>
3 본국검예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
4 본국무예

전수제자 김광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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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추천

  • 역사의 출발점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긴 여정과 같습니다. 택견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역사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과 같습니다. 『택견 근현대사』의 원고를 보내주면서 추천의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택견과 무관한 사람이 택견과 관련된 추천사를 쓰다는 것에 많은 심적 부담이 있었지만, 아마도 김영만 박사께선 내가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복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을 아시기에 같은 지향선상에서 추천사를 부탁한 것으로 이해하고 염치불구하고 추천사를 쓰기로 했습니다. 택견은 국가무형문화재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택견의 역사를 바르게 찾아 정체성을 세우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합니다. 『택견 근현대사』를 읽으면서 武(무)를 천시한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많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와 더불어 택견이 앞으로 가야할 지향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의 해산으로 하와이로 이주할 당시 왕비호위 장교를 맡았던 구한말 군인 광무군들은 과연 무슨 무술을 배웠겠는가? 조선군영에 있었던 18기속에는 권법이 있었습니다. 또한 항일독립 운동가들이 택견을 수련했던 흔적들이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거지가 된다는 말처럼 해방 후, 택견은 말 그대로 초라한 흔적만 남겼습니다. 예용해 문화재위원은 문화재 조사보고서에 『송덕기씨와 몇몇 택견인들에 의해서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여 오던 것』이라 기록했듯이 숨만 간신히 붙어있었습니다. 어디 택견뿐 이겠습니까? 전통무예는 사라지고 여전히 일본무도가 한국무예를 좌우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행히 택견이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무예문화의 맥을 잇는 중요한 토대가 마련되어 단절된 무맥을 잇는 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택견의 역사 정립을 위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학계는 택견의 역사를 문헌을 들어 삼국시대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고, 고구려 무용총의 그림과 고려의 手搏(수박)에 대한 기록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택견은 조선 후기까지 백성들의 삶속에 활발하게 살아 있었음에도 변변한 기록 하나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조사 당시 무명이 ‘택견’인지 ‘태껸’인지 정하지 못하자, 송덕기 옹은 “택견도 아니고 태껸도 아니며 ‘탁견’이요, 한자로는 ‘卓見(탁견)’이로고 쓴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사관이 해동죽지에서 ‘托肩戱(탁견희)’라는 詩(시)를 찾게 되면서 ‘탁견’의 역사적 실체를 확신하게 됩니다. 무명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手搏(수박)’이 한글 창제와 더불어 언문인 탁견, 덕견, 택견, 태껸 등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명과 술기에 사용한 용어는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입니다. 송덕기 옹의 체계는 신한승에 의해 재체계화되어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지만, 용어와 술기 체계의 괴리로 인해 택견의 원형복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송덕기 옹은 “별기군과 별순검이 택견을 했다”라고 진술하고, 실제 1861년 별기군 가운데 무예별감이 존재했습니다. 송덕기 옹의 스승이었던 임호는 어전시위인 이수영과 함께 팔장사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대는 이서가, 아래대는 하급장교 이하 군인들로, 대개 중인이나 군영 소속의 직업 군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권법을 익혔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당연히 택견은 종합무예 일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手搏(수박)’을 백성들은 ‘택견’이라 불렀고, 조선의 군영무예인 ‘拳法(권법)’도 ‘택견’이라 불렀을 뿐입니다. 택견의 원형을 찾아가다 보면, 택견과 함께 살아온 선조들의 삶과 마주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택견은 일개인이 점유하거나 독점할 문화가 아닙니다. 택견은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로써 한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한민족 모두의 무예이고 더 나아가 세계인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택견 근현대사』를 읽으면서 아픈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김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송덕기 옹이 살아생전 기록으로 남겨놓은 택견 술기의 원형을 복원하고 계승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은 택견인들에게 있지만, 송덕기 옹에게 택견을 가르쳤던 스승 임호와 함께 고군분투했던 무인의 역사를 찾는 것은 전통무예를 지키는 모든 무인들에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잃어버린 택견의 역사를 바로 찾을 수 있고, 대한민국 국민들과 세계인들에게 택견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게 되는 것입니다. 『택견 근현대사』를 읽으면서 우리가 택견을 왜 지켜야 하는지, 택견 속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무예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무예 문화를 잃으면 되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오랜 시간 택견의 역사와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생하신 김영만 박사님께 추천사를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게 돼서 다행입니다. 택견은 민족의 얼이요 혼입니다. 20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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