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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문 1
제2장 택견사 개론 17 제1절 수박手搏과 수박희手搏戱를 통해 본 택견의 관계 19 1. 들어가기 21 2. 수박, 수박희의 민중화 25 3. 수박과 수박희의 차이 38 1) 『고려사』 - 수박희手搏戱 38 2) 『고려사』 - 수박手搏 40 4. 수박, 수박희와 택견과의 관계 46 5. 맺음말 51 제2절 전통무예‘탁견’용어에 관한 연구 53 1. 들어가기 55 2. 문헌(1728~1964)에 나타난‘탁견 용어’의 담론 58 1) 탁견은 일반명사인가? 혹은 고유명사인가? 58 2) 탁견과 태껸 그리고 택견의 용어에 대한 소론 69 3) 탁견의 시대적 변천에 따른 해석의 의미에 대한 소론 75 4) 탁견의 한문표기와 의미에 대한 소론 80 5) 택견의 ‘이칭異稱’에 대한 소론 82 3. 맺음말 87 제3절 한국 전통무예의 다면성 91 1. 들어가기 93 2. 유희로서 무예와 아동대 97 1) 아이의 유희로서 무예와 국난國難시 군사 하위조직인 아동대 97 2) 수박과 택견 그리고 돈내기 108 3. 맺음말 112 제4절 택견의 수련 계층에 관한 연구 115 1. 들어가기 117 2. 택견 수련자에 관한 담론 123 1) 석전石戰과 택견 127 2) 몰락한 양반 131 3) 군인과 택견 133 4) 왈자와 택견 136 3. 맺음말 142 제5절 서울의 무형유산 결련結連태껸과 석전石戰의 상관성 연구 147 1. 들어가기 149 2. 서울의 무형유산 결련태껸과 석전石戰의 상관성 153 1) 서울 결련태껸과 석전의 공시성 153 2) 서울의 결련태껸과 석전石戰에 참가한 신분과 인물 156 3) 서울의 결련結連태껸과 석전石戰의 편싸움방식 165 3. 맺음말 176 제6절 조선 말기 외국인의 기록을 통해 본 택견 181 1. 들어가기 183 2. 택견과 관련된 기록 186 3. 격투기와 관련된 기록 196 4. 맺음말 209 제7절 국외 항일 독립운동과 택견과의 관계 213 1. 들어가기 215 2. 국외의 항일 독립운동과 택견 218 1) 하와이와 멕시코의 광무군과 택견의 관계 218 2) 신흥무관학교 교과목의 유술柔術과 택견과의 관계 227 3. 맺음말 234 제8절 택견의 일제강점기 전후의 변천과 독립유공자에 관한 연구 239 1. 들어가며 241 2. 항일 독립운동과 택견 245 1) 일제 강점기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한 택견의 변천과정 245 2) 독립 운동가와 택견과 관계있는 인물 257 3) 그 외 독립운동과 관련된 택견의 인물 265 3. 맺음말 268 제9절 북한의 조선사회과학학술집에 나타난 맨손무술에 관한 연구 271 1. 들어가기 273 2. 북한의 조선사회과학학술집에 나타난 무술련마와 체력 단련놀이 276 3. 북한의 조선사화과학학술집에 나타난 맨손무예 282 1) 북한의 수박과 수박희에 관한 인식 282 2) 북한의 날파람에 관한 인식 289 3) 북한의 태권도에 관한 인식 292 4) 북한의 택견에 관한 인식 295 3. 맺음말 297 제3장 택견 기술의 비교 연구 299 제1절 택견(태껸) 단체의 품밟기 동선과 용어에 관한 연구 301 1. 들어가기 303 2. 품밟기 동선의 원리 비교 308 1) 결련택견협회 311 2) 대한택견연맹(現, 대한택견회) 312 3) 한국택견협회 314 4) 현암위대태껸보존연구회(現, 세계태껸연맹) 318 3. 품밟기 용어의 비교 325 4. 맺음말 328 제2절 택견(태껸) 단체의 품밟기 원리에 관한 연구 331 1. 들어가기 333 2. 품밟기 원리의 비교 336 1) 결련택견협회 338 2) 대한택견연맹(現, 대한택견회) 341 3) 한국택견협회 342 4) 현암위대태껸보존연구회(現, 세계태껸연맹) 347 3. 맺음말 355 제3절 택견의 원형복원을 위한 자세의 원리 분석 357 1. 들어가기 359 2. 택견 자세姿勢의 분석 362 1) 택견 자세의 원리 비교 362 2) 택견의 원형복원을 위한 자세 분석 367 3. 맺음말 376 제4절 택견의 원형복원을 위한 손질 분석 377 1. 들어가기 379 2. 송덕기와 신한승의 손질 비교 분석 383 1) 송덕기 택견의 손질 분석 383 2) 신한승 택견의 손질 분석 392 3. 택견 단체의 기본 수련과정의 손질 비교분석 400 1) 택견 단체의 손질 분석 400 2) 택견 단체의 원형복원을 위한 손질 방안 403 4. 맺음말 404 제5절 택견의 원형복원을 위한 손질 원리 분석 407 1. 들어가기 409 2. 택견 손질의 원리 분석 412 1) 손질의 보폭步幅과 팔의 각도의 원리 분석 412 2) 손질의 효율성을 위한 짧고 바닥을 끄는 보법 413 3. 손의 모양에 따른 손질의 용도와 원리분석 420 1) 손의 모양과 손질 420 2) 송덕기 손질의 손 모양 423 3) 신한승 손질의 손 모양 431 4. 맺음말 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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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정리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길이며,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이다. 즉 나무도 근본뿌리가 깊어야 잎이 무성해지는 것처럼 ‘품밟기가 택견의 전부이다’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으로 품밟기는 나무의 뿌리이다. 택견은 근본뿌리가 바르게 서고, 사람은 근본을 바르게 세우면 언젠가는 반드시 길이 열린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는 표현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하나의 길이다.
우리는 『논어論語』위정爲政의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는 마음으로, 우리는 옛 사람의 지식을 터득한 후 자신의 지혜를 덧붙여 새로운 지식을 쌓아왔다. 현대화된 새로운 택견에만 치우치면 지식의 폭이 좁아질 수 있으니 폭넓은 지도자가 되려면 택견의 원류를 토대로 재창조가 필요하다. 이 저서의 출판을 위해 필자가 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을 수정·보완하였고, 본문에서 인용문의 출처를 생략하여 독자들의 가독성을 높이고자 하였으니 원출처原出處는 학회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여러 해 택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수련을 하다 보니 점점 더 많은 호기심에 작은 단서만 있으면 집중하고 파고드는 게 습관이 되었다. 기존의 택견이 잘 알려진 듯하지만, 오직 조선의 마지막 택견명인 송덕기 선생의 단편적인 구술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가 그나마도 그 자료조차 단순하면서도 극히 사용이 제한되어 이미 보편화한 자료들이었다. 그래서 택견에 관한 새로운 실마리를 얻을 기회가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아무리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송덕기 선생으로부터 택견을 배운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인터뷰를 하는 가운데 같은 시기에 배운 이들조차 받아들이는 입장에 다소 차이가 있음도 알게 되었다. 반면에 배운 기술 하나하나를 꼼꼼히 정리해서 여러 권의 노트를 지닌 분도 있어서 참으로 귀한 자료가 명맥으로 이어짐을 알게 되었다. 나름 노력 가운데 작은 실마리도 기존의 단편적인 퍼즐과 조각을 맞추게 되면 융합된 결과가 다른 실마리를 제공하는 기회가 되었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논문들이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모아 놓고 보니 하나의 볼거리를 형성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때로 새로운 이론은 아니지만 막연했던 과거 이론에서 나아가 구체적인 이론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다른 한편 송덕기 선생에게서 가장 오랜 기간 택견을 전수한 고용우 선생이 미국에서 택견 보급(現, 세계태껸연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마침 연락할 기회를 얻어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연구원으로 재직하는 기간 동안 현장조사와 구술채록 그리고 직접 기술을 전수받는 귀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특히 흥미를 끈 것은 기존에 알고 있던 택견에 관한 지식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수련체계였으며 기존에 알려진 유희성이 짙은 수련체계와는 또 다른 형태로 그야말로 무예적인 택견으로서 송덕기 선생에게서 전수받은 신한승 체계와는 분명히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어서 많은 호기심을 유발했다. 단적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권투와 택견이 흥행을 목적으로 맞붙은 일종의 이종격투기 경기가 있었다. 권투는 지금도 격렬한 경기인데, 택견과 맞붙었으니 현재 알려지고 있는 신한승 택견 체계와는 전혀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도 북한 씨름경기도 그러하지만, 더더구나 당시에는 체급별 경기 개념조차 없던 시기였다. 흥미를 지니고 조금씩 접근하면서 이들 차이를 정리하면서 연구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다 보니 그간 쌓여 제법 여러 편이 되었다. 이들이 택견의 완전한 진수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택견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소개를 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같이 엮어서 하나의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원형에 가까운 택견이 있다는데 관심을 가져 주시고 더 많은 연구가나 학자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의 박사 후 국내연구 지도교수로 아낌없는 지도편달을 해주신 나영일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저서에 수록된 학회지의 연구를 함께 해주신 숭실대학교 심성섭 교수, 경희대학교 전정우 교수, 용인대학교 김창우 교수, 선문대학교 최종균 교수, 정명섭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학문적 토대마련을 위한 구술채록을 허락해주신, 이보형 前 문화재위원, 故 박철희 대사범, 김수(김병수) 총재, 양창곡 회장, 김성복 관장, 이병한 선생님 그리고 택견의 이론과 실기를 아낌없이 새로운 지식을 사사해주신 고용우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더불어 이 저서에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송덕기 선생과 신한승 선생 및 택견에 관한 구술채록을 허락하신 최희석(당수도 무덕관 총재), 김명곤(前,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진영(웃대태껸전수관 관장), 허광철(송덕기 선생의 외손자), 박승동(제천시 태권도 용두체육관 관장) 등께 감사드리며, 그 외분들의 구술채록을 추가로 인터뷰하여, 추후 ‘택견史’에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그리고 현암 송덕기 선생님의 위대태견 원전原典 『한국의 옛무예 태견 〈위대편〉, 〈아래편〉』과 『태견〈원전 제작 비화〉』에 태견춤 등을 세상에 빛을 보게 해주신 김정윤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저서가 출간되기까지 병고에도 함께 고민과 방향을 제시해주신 권찬기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출판을 허락해주신 도서출판(주) 글샘 이기철 대표님께도 감사드립니다. 2020. 07. 김 영 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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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를 천시하는 나라가 제대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안녕을 보장한 경우는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가 무예를 천시하다가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맞았고, 일제식민지의 질곡을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이 한민족을 불쌍히 여겼던지 천행으로 광복을 이루고 오늘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국가엘리트들은 무예의 호국정신과 상무정신을 하찮게 여기고 당쟁을 거듭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은‘당수도唐手道’ 시범을 관람한 후 ‘태껸’으로 오해하는 바람에 태권도의 원류무예가 되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택견의 운명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우리나라 무예의 운명을 말해주는 것과 함께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 유일의 무경武經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함께 택견의 무예를 복원할 수 있는 자료가 해마다 확충되는 것은 참으로 택견인의 노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키나와의 맨손무술로 알려진 당수도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택견의 동작들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요즈음, 『무예도보통지』의 여러 무예와 함께 택견이 동아시아 삼국무예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어서 무예인의 자부심을 한껏 북돋우고 있습니다. 결국 『무예도보통지』의 무예, 택견, 수박 등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무예는 하나의 원류를 가졌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 세계 최대의 몽골제국을 맞아서 마지막까지 항전을 서슴지 않았던 삼별초의 무인들이 제주도에서 오키나와로 이주하여 당수도가 되었고, 이것이 일제 때에 역으로 우리나라에 상륙하였음은 옛 고조선과 삼국의 무예가 일본으로 전해지고 일본무예의 원류가 되었던 역사를 새삼 떠오르게 합니다. 택견에 관한 기존의 자료들이 부족하고, 단편적인 편린들을 재구성하는 수고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는 무예현실을 극복하고 수십 년 동안 성실한 자세로 수많은 자료를 섭렵한 끝에 김영만 박사는 이번에 『택견 근현대사』를 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김 박사는 이 책의 발간을 위해 미국 LA까지 몇 번이나 방문하고 자료를 찾는 수고와 열정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무예연구가의 한 사람으로서 축하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한 우물을 판다는 속담을 넘어 ‘처마의 낙수가 떨어져 댓돌에 구멍을 뚫는다.’는 낙수천석落水穿石의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택견에 관한 연구서는 대개 자료의 한계로 인해 단체별 동작체계나 비교분석에 머물렀던 수준에 그쳐왔고, 그 이상의 연구 자료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자료의 섭렵과 더불어 다양한 시각과 부단한 노력은 자료가 거의 고갈되었다고 생각되는 현실에서도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택견을 했던 계층들은 대부분 중인이거나 서리계층이어서 기록문화에서 소외되어 있는데 더구나 조선은 상문경무尙文?武의 풍조가 극에 다다라 거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한제국에 이은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민족문화의 말살정책으로 인해 실제 택견은 큰 고비를 맞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가운데서도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외국인들의 기록 중 어느 누구도 택견이라고 알아볼 수 없었던 자료와 그림을 통해서 택견의 모습을 찾아내었고 신문기사에서 ‘유술’로 불리었던 기록 중에서도 택견을 발견하는 날카로운 안목을 발휘하였습니다. 아울러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 택견」 기능보유자로 송덕기(우대)와 신한승(아래대)이 지정되었지만, 문화재 지정과정에서 송덕기 선생 택견의 기술이 배제되고, 신한승의 현대화된 택견이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현재에도 끊임없는 원형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행히 필자는 이 책에서 송덕기 택견의 원형과 택견史의 복원을 하고자, 송덕기에게 택견을 사사받은 제자들과 관련된 분들의 구술채록과 현장조사 그리고 새로운 택견의 기록을 찾고자 노력한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과 현대를 잇는 유일한 택견인 송덕기의 원형 중 편린이나마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으니 문화유산의 복원이라는 입장에서 쾌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현대화되고 경기화된 택견의 모습만이 아닌, 택견의 원형탐구는 택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만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택견과 고려의 수박이 상관성이 분명 있다는 생각을 한두 번쯤 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료의 한계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의 다양한 기록에서 택견이 종합격투기의 기록을 찾아 볼 수 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발기술로 퇴보되는 침체기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까지 수박은 손기술, 택견은 발기술로 서로 알려져 있으나 수박이 곧 택견인 것입니다. 김영만 박사가 이번에 출간한 이전의 자료를 뛰어 넘는 민족전통무예 택견의 총체적인 연구서인 『택견 근현대사』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전통무예를 사랑하는 마음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 추천사를 쓰게 된 것도 예삿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예인의 혼이 하나가 되어 옛 고조선의 영화를 되찾는 역사회복의 길에 동지가 될 것은 기원해봅니다. 2020년 7월 3일 - 心中 박 정진 (무예인류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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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근현대사" 출판을 축하합니다!
나는 1958년 송덕기 선생과 경무대에서 인연을 맺고, 1959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택견권법부 창설, 1963년 미국 블랙벨트지에 송덕기 선생을 소개하는 기사를 게재하고, 1971년, 1973년, 1975년, 1979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3년 등 한국 방문 시에는 송덕기 선생을 찾아뵈었습니다. 그 후 송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고국을 방문하면 언제나 외국인 제자들을 동행하여 인왕산 황학적 활터를 찾아 가는 것을 방문 코스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나는 남다른 택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송덕기 선생의 택견 원형이 온전히 복원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 역사에서 희미한 촛불처럼 사라져가는 우리조상의 얼이 담긴 민속 문화이자 무예인 택견이 송덕기 선생을 마지막으로 사라질 위기에서 천만다행으로 젊은 세대에서 끈을 놓지 않고 이어준데 대하여 김영만 택견연구가를 비롯하여 여러 연구가들의 피나는 연구노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특히 택견은 기록이 극히 미흡한데도 불구하고, 집필자가 불타는 학구열과 집념으로 마치 한자 한자를 끌로 파내는 듯 단편의 조각들을 끌어 모아 논문을 내고 다시 취합하여 하나의 책을 만들었으니 그 노력이 가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실제 이전의 수많은 관련 학자들이나 연구가들이 소홀히 하여 방기했던 부분에서 택견과 연관을 짓고 이를 다시 유추해서 하나의 볼거리로 연결시키는 과정은 놀랍기까지 합니다. 특히 이전에 택견이나 탁견 등 대부분의 학자들이나 연구가들이 알만한 낱말을 중심으로 검색하여 답을 찾아냈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과 수많은 자료 섭렵을 통해 택견의 근현대사로의 접근은 택견에 대한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후학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현재 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인 택견은 여러 사람들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전수과정과 문화재 등록과정에 택견 기술이 상당부분 제거되어 정립됨으로써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후학들에 의해 이러한 점이 보완, 개선되어가고 있음에 한층 원형에 가까운 택견이 선보여질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이 책은 택견사의 새로운 지평을 알리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택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발전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책을 통해 송덕기 선생이 저세상에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가히 상상해 봅니다. - 김수 (자연류 무술 창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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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출발점은 정체성을 찾아가는 긴 여정과 같습니다.
택견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역사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과 같습니다. 『택견 근현대사』의 원고를 보내주면서 추천의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택견과 무관한 사람이 택견과 관련된 추천사를 쓰다는 것에 많은 심적 부담이 있었지만, 아마도 김영만 박사께선 내가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복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있는 것을 아시기에 같은 지향선상에서 추천사를 부탁한 것으로 이해하고 염치불구하고 추천사를 쓰기로 했습니다. 택견은 국가무형문화재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택견의 역사를 바르게 찾아 정체성을 세우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합니다. 『택견 근현대사』를 읽으면서 武(무)를 천시한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많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와 더불어 택견이 앞으로 가야할 지향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의 해산으로 하와이로 이주할 당시 왕비호위 장교를 맡았던 구한말 군인 광무군들은 과연 무슨 무술을 배웠겠는가? 조선군영에 있었던 18기속에는 권법이 있었습니다. 또한 항일독립 운동가들이 택견을 수련했던 흔적들이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거지가 된다는 말처럼 해방 후, 택견은 말 그대로 초라한 흔적만 남겼습니다. 예용해 문화재위원은 문화재 조사보고서에 『송덕기씨와 몇몇 택견인들에 의해서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여 오던 것』이라 기록했듯이 숨만 간신히 붙어있었습니다. 어디 택견뿐 이겠습니까? 전통무예는 사라지고 여전히 일본무도가 한국무예를 좌우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행히 택견이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무예문화의 맥을 잇는 중요한 토대가 마련되어 단절된 무맥을 잇는 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택견의 역사 정립을 위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학계는 택견의 역사를 문헌을 들어 삼국시대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고, 고구려 무용총의 그림과 고려의 手搏(수박)에 대한 기록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택견은 조선 후기까지 백성들의 삶속에 활발하게 살아 있었음에도 변변한 기록 하나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조사 당시 무명이 ‘택견’인지 ‘태껸’인지 정하지 못하자, 송덕기 옹은 “택견도 아니고 태껸도 아니며 ‘탁견’이요, 한자로는 ‘卓見(탁견)’이로고 쓴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사관이 해동죽지에서 ‘托肩戱(탁견희)’라는 詩(시)를 찾게 되면서 ‘탁견’의 역사적 실체를 확신하게 됩니다. 무명에 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手搏(수박)’이 한글 창제와 더불어 언문인 탁견, 덕견, 택견, 태껸 등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명과 술기에 사용한 용어는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입니다. 송덕기 옹의 체계는 신한승에 의해 재체계화되어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지만, 용어와 술기 체계의 괴리로 인해 택견의 원형복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송덕기 옹은 “별기군과 별순검이 택견을 했다”라고 진술하고, 실제 1861년 별기군 가운데 무예별감이 존재했습니다. 송덕기 옹의 스승이었던 임호는 어전시위인 이수영과 함께 팔장사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대는 이서가, 아래대는 하급장교 이하 군인들로, 대개 중인이나 군영 소속의 직업 군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된 권법을 익혔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당연히 택견은 종합무예 일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手搏(수박)’을 백성들은 ‘택견’이라 불렀고, 조선의 군영무예인 ‘拳法(권법)’도 ‘택견’이라 불렀을 뿐입니다. 택견의 원형을 찾아가다 보면, 택견과 함께 살아온 선조들의 삶과 마주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택견은 일개인이 점유하거나 독점할 문화가 아닙니다. 택견은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로써 한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한민족 모두의 무예이고 더 나아가 세계인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택견 근현대사』를 읽으면서 아픈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김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송덕기 옹이 살아생전 기록으로 남겨놓은 택견 술기의 원형을 복원하고 계승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은 택견인들에게 있지만, 송덕기 옹에게 택견을 가르쳤던 스승 임호와 함께 고군분투했던 무인의 역사를 찾는 것은 전통무예를 지키는 모든 무인들에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잃어버린 택견의 역사를 바로 찾을 수 있고, 대한민국 국민들과 세계인들에게 택견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리게 되는 것입니다. 『택견 근현대사』를 읽으면서 우리가 택견을 왜 지켜야 하는지, 택견 속에는 어떤 역사가 담겨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무예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번 무예 문화를 잃으면 되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오랜 시간 택견의 역사와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생하신 김영만 박사님께 추천사를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게 돼서 다행입니다. 택견은 민족의 얼이요 혼입니다. 2020.6.28. - 임성묵 (사단법인 대한본국검예협회 총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