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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검예 3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
임성묵
행복에너지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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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소리를 그리다

박정진 추천사

머리말

편집후기

一. 神(신)의 나라

1. ‘武藝(무예)’의 意味(의미)
濊(예)·穢(예)·(예)의 意味(의미)/歲(세)에 담겨진 象徵(상징)
2. ‘武(무)’자에 숨겨진 秘密(비밀) 61
武(무)자의 象徵(상징)/(무), 矛(모), (월), 戌(술), 戍(수), 伐(벌), 戒(계)의 意味(의미)/無(무), 夏(하), (쇠)의 意味(의미)
3. ‘藝(예)’에 숨겨진 秘密(비밀) 77
藝(예), 勢(세), 무(巫)의 象徵(상징)/節(절), 卽(즉)의 象徵(상징)/武藝(무예)의 意味(의미)
4. 武藝(무예)에 스며든 玄武(현무) 81
玄武(현무)/玄(현), 申(신), 呂(려), 率(률), 豆(두), 親(친), 辛(신), 帝(제), 立(립)의 象徵(상징)/星(성)의 象徵(상징)/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의 意味(의미)/律呂(율려)/麗(려), 鹿(녹), 驪(려)의 意味(의미)/玄武(현무)와 東邦(동방) 7宿(수)

二. 天文(천문), 하늘을 기록하다

1. 하늘의 별을 그리다
文(문)의 記錄(기록)과 주역팔괘/大熊星(대웅성) 고마/四神(사신), 조선 하늘의 별/天文(천문) 28宿(수)에 숨겨진 秘密(비밀)/天文(천문) 10干12支(10간 12지)의 密(비밀)/10干(간) 어원의 意味(의미)와 자형의 秘密(비밀)/12地支(지지) 띠의 秘密(비밀)/12支(지) ‘띠’의 순서와 동물의 자형/北斗七(북두칠)의 構成(구성)과 秘密(비밀)
2. 東西南北(동서남북)의 象徵(상징)
東(동)에 담겨진 象徵(상징)/西(서)에 담겨진 象徵(상징)/南(남)에 담겨진 象徵(상징)/北(북)에 담겨진 象徵(상징)
3. 朝鮮(조선)과 韓民族(한민족)의 신화를 담은 漢字(한자)들
朝(조)에 담겨진 象徵(상징)/鮮(선)에 담겨진 象徵(상징)/艮(간)과 良(랑)에 숨겨진 한민족의 秘密(비밀)
4. 我(아)! 나는 누구인가?
我(아)의 象徵(상징)/天(천)과 태극의 象徵(상징)
5. 閼百台(알백태)와 閼英井(알영정)의 秘密(비밀)
閼(알), 於(어), 烏(오), 鳥(조), 乙(을), (을), 燕(연)의 象徵(상징)/尸(시), 仁(인), 人(인), 千(천)의 象徵(상징)/族(족)·奏(주)의 象徵(상징)/君(군), 契(계)의 意味(의미)/신()의 象徵(상징)/此(차), 乎(호), 焉(언), 以(이)의 意味(의미)
6. 한글은 漢字(한자) 음가의 뿌리
7. 한글은 ‘형태(形)·소리(音)·의미(意)’가 일치된 文字(문자)

三. 本國(본국)의 武神(무신) 蚩尤天皇(치우천황)

1. 蚩尤天皇(치우천황)
2. 왜곡된 蚩尤(치우)의 이름
3. 蚩尤(치우)의 별칭 慈烏支天皇(자오지천황)
4. 잊혀진 蚩尤祭(치우제)
5. 사라진 纛祭(둑제)
6. 중국의 東北工程(동북공정)
7. 纛祭(둑제)의 復活(부활)

四. 武寧王劍(무령왕검)

1. 蠶頭馬蹄(잠두마제)
2. 鳳(봉), 龍(용)자의 象徵(상징)
3. 雖(수)자의 象徵(상징)
4. 王儉(왕검)의 象徵(상징)
劍(검)에 담겨진 견우와 직녀/能(능)의 象徵(상징)
5. 百濟(백제)와 日本(일본)의 神化(신화)
6. 阿斯達(아사달)과 徐羅伐(서라벌)

五. 劍(검)의 始原(시원)은 朝鮮勢法(조선세법)

1. 雙明刺(쌍명자), 旋風格(선풍각), 騰蛟洗(등교세), 虎穴洗(호혈세)
2. 朝鮮勢法(조선세법)과 天遁劍法(천둔검법)
3. 朝鮮勢法(조선세법)과 四寅劍(사인검)
岡(강), ?(선단)의 意味(의미)
4. 朝鮮勢法(조선세법)과 昆吾劍法(곤오검법)
昆吾劍訣歌(곤오검결가)/昆吾劍訣歌(곤오검결가)의 解讀(해독)/拔劍(발검)과 納劍(납검)
5. 朝鮮(조선)은 中華武術(중화무술)의 始原(시원)
斗劍之風(두검지풍)/吳越春秋(오월춘추)/易筋經(역근경)의 始原(시원)은 朝鮮(조선)/易筋經(역근경) 12세 가결/易筋經(역근경) 12세 가결의 秘密(비밀)과 解讀(해독)/內家掌拳(내가장권)의 始原(시원)은 朝鮮(조선)/小林棍法(소림곤법)의 始原(시원)은 朝鮮(조선)/朝鮮勢法(조선세법)의 劍訣(검결)/太擊(태격) 그리고 태극무(太極武)

六. 倭劍(왜검)은 本國劍(본국검)의 支流(지류)

1. 本國劍(본국검)의 歷史(역사)
國(국)과 三足烏(삼족오)/本國(본국)은 새의 民族(민족)/琉球國(류구국)과 唐手術(당수술)
2. 가라데의 語源(어원)
3. 本國劍(본국검)과 武藝圖譜通志(무예도보통지)
本國劍(본국검) 繼承(계승) 및 本國劍(본국검)·朝鮮勢法(조선세법) 복원에 관한 主張(주장)/武藝硏究(무예연구)의 현실
4. 日本(일본)은 또 하나의 百濟(백제)
日本(일본)의 實體(실체)/倭(왜) 文字(문자)의 始原(시원)
5. 新羅(신라)의 擊劍(격검)과 일본 劍術(검술)
本國劍(본국검), 新羅起源說(신라기원설)의 矛盾(모순)/本國劍(본국검)의 日本傳來(일본전래)/明治神宮(명치신궁)의 劍道(검도)/ 劍佩用(검패용)과 服飾(복식)

七. 本國(본국)의 맨손무예 相撲(상박)

1. 卞角(변각)과 手搏(수박)
2. 角抵(각저)
3. 相撲(상박)
4. 韓民族(한민족)의 相撲(상박)과 신라의 大東流柔術(대동류유술)
倭(왜)의 神社(신사)와 源氏(원씨)과 平氏(평씨)/新羅系(신라계) 天王家(천왕가) 源氏(원씨) 大東流柔術(대동류유술)의 系譜(계보)/大東流柔術(대동류유술)의 한국 재유입/大東流柔術(대동류유술)의 뿌리, 朝鮮勢法(조선세법)/大東流柔術(대동류유술) 118개조의 기법과 合氣道(아이키도)/ 本國相撲(본국상박)의 原理(원리)와 相搏武(상박무)/大東流柔術技法(대동류유술기법)과 劍(검)의 기법 比較(비교)/傳目錄(비전목록)/송일훈(2008)의 ?傳目錄(비전목록) 系譜(계보) 주장과 解釋(해석)
5. 新羅(신라)의 花郞道(화랑도)와 仙道(선도)
新羅(신라)의 劍道(검도)와 仙道(선도)/仙(선)과 單(단) 그리고 禪(선)의 意味(의미)/道敎(도교)와 仙道(선도)/武士(무사)와 武事(무사)/武士(무사)와 武者(무자)/國(본국)과 仙劍(선검) /仙人還丹(선인환단)
6. 禮(예)와 道(도)의 哲學的 本質(철학적 본질)
禮(예)/禮度藝(례도예)와 禮道藝(례도예)/道法自然(도법자연)/仙(선)과 道(도)/日本(일본)의 神道(신도)/日本神道(일본신도)는 天王(천왕)을 神(신)으로 모시는 宗敎(종교)/日本天王(일본천왕)이 숭배하는 신의 실체는 檀君(단군)/日本(일본)의 道(도)/藝(예)와 道(도)/韓民族(한민족)의 天地人(천지인) 思想(사상)과 일본의 武(무) 중심 思想(사상)/武(무)와 藝(예)의 哲學的 定立(철학적 정립)

八. 雙手刀(쌍수도)

1. 雙手刀(쌍수도)의 뿌리를 찾아서
2. 李舜臣(이순신) 장군의 雙手刀(쌍수도)
3. 紀效新書(기효신서), 武備志(무비지), 影流之目錄(영류지목록), 武藝諸譜(무예제보)의 沿革(연혁)
4. 遠回(원회)와 遠飛(원비)
5. 日本劍術(일본검술)의 뿌리
新陰流(신음류)의 創始(창시)/무예도보통지의 倭漢三才圖會(왜한삼재도회)/源義經(원의경)/陰流(음류)와 新陰流(신음류)/陰流(음류)와 카미이즈의 신가케류
6. 遠回(원회)·遠飛(원비)의 秘密(비밀)
影流之目錄(영류지목록) 년도별 기록/日本(일본)에서 遠回(원회)가 遠飛(원비) 기법이 사라진 이유
7. 影流之目錄(영류지목록)
모원의의 武備志(무비지)의 影流之目錄(영류지목록)/紀效新書(기효신서)의 影流之目錄(영류지목록)/日本學者(일본학자)들의 紀效新書(기효신서)의 影流之目錄(영류지목록) 해석
8. 우오쯔에 타카시 외 8인(2012)이 해독한 影流之目?(영류지목록)의 誤謬(오류)
意分太刀(의분태도)/猿回(원회)
9. 影流之目?(영류지목록)의 劍訣(검결)
10. 影流之目?(영류지목록)의 解讀(해독)
猿飛(원비)/月影(월영)/獅子奮迅(사자분신)/猿回(원회)/浮船(부선)/初段·初退(초단·초퇴)/浦波(포파)/山陰(산음)/山霞(산하)
11. 影流之目?(영류지목록) 그림의 意味(의미)
12. 影流(영류)
13. 紀效新書(기효신서)와 武備志圖譜(무비지도보) 比較(비교)
紀效新書(기효신서) 圖譜(도보)/武備志(무비지) 影流之目錄(영류지목록) 圖譜(도보)/紀效新書(기효신서)와 武備志(무비지) 그림의 검법 순서 比較(비교)/紀效新書(기효신서)와 武備志(무비지)의 동일 劍訣(검결) 그림 比較(비교)

九. 雙手刀譜(쌍수도보) 解說(해설)

1. 雙手刀譜(쌍수도보) 原文(원문)
2. 雙手刀(쌍수도)의 意味(의미)
3. 向前殺賊勢(향전살적세)와 進前殺賊勢(진전살적세)
4. 雙手刀譜(쌍수도보) 解說(해설)
負劍正立 以左手持刀柄 旋作見賊出劍勢 進一步以劍從頭上一揮 作持劍對賊勢(부검정립 이좌수지도병 선작견적출검세 진일보이검종두상일휘 작지검대적세)/進一足作向左防賊勢 又進一足作向右防賊勢(진일족작향좌방적세 우진일족작향우방적세)/轉身跳進一步作向上防賊勢 回身進一足作向前擊賊勢一擊(전신도진일보작향상방적세 회신진일족작향전격적세일격)/又進一步以向前擊賊勢向左一擊 又進一步以向前擊賊勢向右一擊(우진일보이향전격적세향좌일격 우진일보이향전격적세향우일격)/轉身作初退防賊勢退至原地(전신작초퇴방적세퇴지원지)/回身進一步爲進前殺賊勢(회신진일보위진전살적세)/仍轉身作持劍進坐勢 卽作拭劍伺賊勢(잉전신작지검진좌세 즉작식검사적세)/還退一步閃劍退坐勢(환퇴일보섬검퇴좌세)/起立更進一足以進前殺賊勢一擊 又進一足爲向上防賊勢(기립갱진일족이진전살적세일격 우진일족위향상방적세)/卽進一足爲進前殺賊勢一擊 仍作揮劍向賊勢 (以此)連進三步 更進一足以進前殺賊勢一擊(즉진일족위진전살적세일격 잉작휘검향적세 (이차)연진삼보 갱진일족이진전살적세일격)/又進一足爲向上防賊勢 進一足以進前殺賊勢一擊 又進一步一刺(우진일족위향상방적세 진일족이진전살적세일격 우진일보일자)/轉身以刀三揮退 作再退防賊勢 (以此)退至原地(전신이도삼휘퇴 작재퇴방적세 (이차)퇴지원지)/回身進一足爲向上防賊勢 又進一足爲向前擊賊勢一擊(회신진일족위향상방적세 우진일족위향전격적세일격)/轉身爲持劍進坐勢 (卽)爲拭劍伺賊勢(전신위지검진좌세 (즉)위식검사적세)/回身進一足 以左手揮劍向前 以右手更把 (仍)爲向左防賊勢 進一足爲向右防賊勢(회신진일족 이좌수휘검향전 이우수갱파 (잉)위향좌방적세 진일족위향우방적세)/轉身進一步爲向上防賊勢 回身進一步爲向前擊賊勢一擊(전신진일보위향상방적세, 회신진일보위향전격적세일격)/又進一步以向前擊賊勢向左一擊 又進一步以向前擊賊勢向右一擊(우진일보이향전격적세향좌일격, 우진일보이향전격적세향우일격)/轉身作三退防賊勢 (以此)退至原地(전신작삼퇴방적세 (이차)퇴지원지)/回身進一足 以向前擊賊勢一擊 又進一步一擊(회신진일족 이향전격적세일격 우진일보일격)/轉身爲持劍進坐勢 (卽)爲拭劍伺賊勢 回身作藏劍賈勇勢畢(전신위지검진좌세 (즉)위식검사적세 회신작장검고용세필)

十. 提督劍(제독검)

1. 提督劍(제독검)과 雙手刀(쌍수도)의 關係(관계)
2. 雙手刀(쌍수도)와 提督劍(제독검)의 差異(차이)
3. 本國劍(본국검)과 提督劍(제독검)의 關聯性(관련성)
4. 提督劍(제독검) 原文(원문)
5. 提督劍(제독검) 解說(해설)
初作對賊出劍勢右手負劍左手左挾正立右手右脚前一打(초작대적출검세우수부검좌수좌협정립우수우각전일타)/旋作進前殺賊勢右手右脚一打(선작진전살적세우수우각일타)/仍作向右擊賊勢右手右脚右廻一打(잉작향우격적세우수우각우회일타)/又作向左擊賊勢左手左脚左廻一打進一步躍一足(우작향좌격적세좌수좌각좌회일타진일보약일족)/作向右擊賊勢(작향우격적세)/又作向左擊賊勢(우작향좌격적세)/仍作揮劍向賊勢右廻擧右足內掠(잉작휘검향적세우회거우족내략)/作進前殺賊勢右手右脚一打(작진전살적세우수우각일타)/仍作初退防賊勢左三廻退至原地(잉작초퇴방적세좌삼회퇴지원지)/右手右脚左廻一打作向後擊賊勢(우수우각좌회일타작향후격적세)/右廻身向前右手左脚作向右防賊勢左手右脚(우회신향전우수좌각작향우방적세좌수우각)/作向左防賊勢(작향좌방적세)/又作向右防賊勢(우작향우방적세)/又作向左防賊勢(우작향좌방적세)/仍作進前殺賊勢右手右脚進一步前一打(잉작진전살적세우수우각진일보전일타)/旋作勇躍一刺勢右手右脚向前直刺(선작용약일자세우수우각향전직자)/仍作向左擊賊勢右手左脚躍一步一打(잉작향좌격적세우수좌각약일보일타)/仍作揮劍向賊勢右廻擧右足內掠(잉작휘검향적세우회거우족내략)/仍作進前殺賊勢右手右脚一擊(잉작진전살적세우수우각일격)/又作再退防賊勢向後右三廻退至原地旋(우작재퇴방적세향후우삼회퇴지원지선)/作進前殺賊勢右手右脚一打(작진전살적세우수우각일타)/進一步又一打(진일보우일타)/旋作拭劍伺賊勢以右劍拭于左肱仍洗腰(선작식검사적세이우검식우좌굉잉세요)/左旋作藏劍賈勇勢左手負劍以右拳右脚前一打畢(좌선작장검고용세좌수부검이우권우각전일타필)

十一. 武藝圖譜通志(무예도보통지)의 倭劍譜(왜검보)

1. 倭劍譜(왜검보)의 家系(가계)
2. 倭劍譜(왜검보) 文章(문장)의 特徵(특징)
3. 倭劍譜(왜검보) 그림의 秘密(비밀)

제1장. 土由流(토유류)
1. 土由流(토유류)의 意味(의미)
2. 土由流(토유류)의 構造(구조)
첫 번째 단락: 藏劍初進(장검초진)/두 번째 단락: 藏劍再進(장검재진)/세 번째 단락: 藏劍三進(장검삼진)

제2장. 運光流(운광류)
1. 朝鮮軍營(조선군영)의 運光流(운광류)
2. 運光流(운광류)의 意味(의미)
3. 運光流(운광류)의 構造(구조)
4. 運光流(운광류)의 理解(이해)
5. 運光流(운광류) 劍訣(검결)의 意味(의미)
千利勢(천리세)/跨虎勢(과호세)/速行勢(속행세)/山時雨勢(산시우세)/水鳩心勢(수구심세)/柳絲勢(유사세)
6. 運光流(운광류)의 解說(해설)
첫 번째 단락/두 번째 단락/세 번째 단락/네 번째 단락/다섯 번째 단락

제3장. 千柳流(천유류)
1. 千柳流(천유류)의 意味(의미)
2. 千柳流(천유류) 解說(해설)
첫 번째 단락/두 번째 단락/세 번째 단락

제4장. 柳彼流(유피류)
1. 柳彼流(유피류)의 意味(의미)
2. 柳彼流(유피류)의 構成(구성)
3. 柳彼流(유피류)의 解說(해설)
첫 번째 단락/두 번째 단락

十二. 武藝諸譜飜譯續集(무예제보번역속집)의 倭劍譜(왜검보)

1. 倭劍譜(왜검보)
2. 倭劍譜(왜검보)와 棍棒(곤봉)
3. 倭劍譜(왜검보)의 解說(해설)
첫 번째 단락: 進前殺賊勢(진전살적세)/두 번째 단락/세 번째 단락: 齊眉勢(제미세)/네 번째 단락 :撫劒伺賊勢(무검사적세)/다섯 번째 단락: 相撲(상박)/여섯 번째 단락: 齊眉(제미)
4. 倭劍總圖(왜검총도)의 解說(해설)

十三. 武武藝圖譜通志(무예도보통지) 交戰譜(교전보)
1. 交戰譜(교전보)와 김체건
2. 交戰譜(교전보)의 解說(해설)
3. 交戰譜(교전보)의 構成(구성)
첫 번째 단락/두 번째 단락/세 번째 단락

天符印(천부인)
출간후기

저자 소개 1

충남 공주 출생(1961) 공주고등학교(53회) 단국대학교 해병대 1사단 현) 대한본국무예협회 총재 1 본국검예 <조선세법> 2 본국검예 <본국검법> 3 본국검예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 4 본국무예 전수제자 김광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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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80쪽 | 1326g | 188*254*30mm
ISBN13
9791156026419

출판사 리뷰

[저자의 말]
무예문화의 중흥을 기대하며

어느덧 조선세법과 본국검을 복원하여 《本國劍藝(본국검예)》 1편 〈朝鮮勢法(조선세법)〉과 2편 〈本國劍(본국검)〉을 출판한 지 5년이 흘렀다. 출판을 하고 보니 아쉬움이 많았다. 우리 고유검법 조선세법과 본국검은 복권하였으나 왜검을 복원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왜검의 대표적인 〈雙手刀(쌍수도)〉는 한·중·일에 영향을 끼친 검술로 무예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또한 본국검과 쌍수도에 나오는 持劍對賊勢(지검대적세)는 좌우 방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본국검예》 2편의 부록에 간략하게 〈쌍수도〉를 소개하고 추가 연구를 통해 후일에 발표할 것을 기약하게 됐다.

특히 쌍수도는 기효신서에서 ‘長刀(장도)’로 표현했다. 장도의 뿌리는 〈影流之目錄(영류지목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무예학계에서는 영류지목록에 대한 연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영류지목록은 일본 고어와 초서체로 되어있어 난해하기 때문이다. 영류지목록은 일본검술의 3대 지류 중 影流(영류)와 陰流(음류)의 근거가 된다. 일본학계는 치밀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일본 학계가 검도계와 연합하여 연구했지만 영류지목록을 해독하지 못했다. 검도를 숭상하고 잘 보존하는 일본에서 왜 기법이 실전되었고, 일본의 문서임에도 해독하지 못하는 데는 분명히 어떠한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다.

한국에는 《武藝圖譜通志(무예도보통지)》에 있는 조선세법·본국검·쌍수도·제독검·왜검보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고 각각의 단체들이 수련하고 있지만, 그 동작에 대한 해석이 부족하고 원문과 무예도보통지의 그림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르다. 대한검도회에서는 본국검과 조선세법을 승단심사에 필수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검도의 검리로 해석하여 원문과 동떨어져 있고 쌍수도·제독검 등 왜검류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더러 《쌍수도》·《제독검》·《왜검보》에 대한 연구와 발표는 있으나 문헌적 해석, 기법의 비교분석, 역사적 의의 등에 관한 논문들이 주를 이룰 뿐 전체 기법과 동작 및 검결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서 전무한 실정이다.

저자는 평소 고무예 연구를 통하여 맨손무술(태껸·태권도·합기도)의 이론적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조선세법과 본국검을 저술로 밝혔다. 대한민국이 전통무예를 등한시 한 사이 유감스럽게도 북한이 먼저 《무예도보통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 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뿐만 아니라 태권도의 뿌리도 무예도보통지와 연결시켰고 무예도보통지의 시원을 고조선으로 밝혔다. 저자도 《본국검예》를 통해 검과 한민족 무예의 시원은 고조선임을 주장했다. 무예도보통지라는 문헌이 있기 때문에 기록과 일치하지 않은 동작은 퍼포먼스에 불과하고 문서로 해석되지 않은 동작은 창작에 불과하기 때문에 학술적 근거로 인정받을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학계는 무예계와 힘을 합쳐 전통무예를 복원해야 한다. 한국이 북한보다 유네스코 등재는 늦었지만 학술적 발표를 선취해야 복원무예의 뿌리를 지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예도보통지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저자는 학술적 일환으로 본국검예를 통해 조선세법과 본국검을 발표하였지만, 무예도보통지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쌍수도와 왜검류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상태였다.

〈영류지목록〉이 눈에 아롱거려 마음이 무거웠다. 일본에서도 600년간 해독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 자문하면서도 한 번 잘못 빠져들면 수년의 시간을 허비할 것 같아 마음 접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답답한 마음에 세계일보에 〈무맥〉을 연재하신 박정진 문화인류학 박사를 찾아뵙고 한숨을 쉬며 토로하자, 한번 시도해보라는 격려의 말씀과 함께 김세택 전 일본 대사를 소개해주셨다. 김세택 전 대사께서 연구에 사용하라며 대사님이 저술한 《일본어한자 훈독사전》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의문이 들 때마다 전화를 드려 답을 구했다. 이 과정에 ‘唐(당)’자의 일본어 훈독의 어원도 구술해 주셨다.

도전할 마음을 세우고 임수원 협회장에게 말하자, 종합적인 자료와 연구가 필요하므로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구하자는 제안과 자료수집과 연구물을 함께 검토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선문대학교 무도학과 최종균 교수께서 영산대학교 박귀순 교수께 부탁하여 〈영류지목록〉의 초벌 해석에 도움을 주었다. 최종균 교수는 일본 논문의 번역에 도움을 주었고, 세계평화무도연합 성도원 사무총장은 일본학계의 영류지목록 논문과 찾아주고 英名錄(영명록)과 射禮錄(사례록)을 제공해줬다. 서울대학교 나영일 교수께서는 원고의 흐름에 대하여 참고할 책을 소개해주셨고 유익한 의견을 제시해주셨다. 이러한 여러분의 도움으로 천우신조 영류지목록을 해독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또한 육군3사관학교 외래교수 제갈덕주께서 무예신문에 기고한 新羅劍(신라검)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주셨다.

해독결과 〈영류지목록〉은 일본에서 보관하고 있으나 내용은 한반도를 노략질한 왜구들에 대해 응징하는 내용으로 우리 선조의 문서였다. 영류지목록도 본국검·조선세법의 검결과 같은 형태의 문장이었다. 왜검술로 당연시 알고 있었던 영류지목록·토유류·운광류·천유류·유피류·왜검보가 오래전 일본에 전래된 것이었다. 일본이 해독하지 못한 이유가 한민족의 신화와 역사, 이두식(향찰) 음가로 쓰여진 검결 은유와 비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해독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조선의 무예를 찾아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떤 이는 과거의 기록에 평생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런 일은 학계나 국가에서 할 일이지 개인이 할 일이 아니라는 말도 듣는다. 더러는 현재의 무도가 중요하지 왜 과거의 무예를 가지고 시간 낭비하는지를 묻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찾고 연구하는 것은 현재를 다져 미래로 나가기 위해 발판을 놓는 것이다. 일제에 의해 말살된 우리의 무예를 되찾고 상처투성이인 전통무예의 자존심을 치유해야만 미래로 당당히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있음에도 남의 것을 숭배한다. 동양무예의 종주국은 당연히 중국이라 인정하고 그 다음은 일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무술은 역사적 기록이 분명하고 일본무술 역시 기록을 바탕으로 전승된 힘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무예는 일제의 강제 점령으로 인하여 뿌리째 송두리 뽑히고 일본의 무술 속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세계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인식을 고무예의 연구를 통해 무예의 종주국이 조선이었음을 증명하여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대한검도회는 일본검도라는 정체성에, 한국의 合氣道(합기도)는 일본의 合氣道(아이키도)라는 정체성 시비에 흔들리고 있다. 태권도 역시 세계적인 스포츠로 우뚝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성 시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 무술의 역사적 근본에서 정체성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양무술의 종주국이라 자처하는 중국도 明(명) 이전에는 무예에 관한 도해나 그 기법을 설명한 문서가 없다. 다만 《漢書(한서)》 〈藝文志(예문지)〉에 射法(사법)을 비롯하여 劍道(검도) 38편 등 兵技(병기) 13家(가) 199편이 기술되어 있고 무예를 중시했다는 技巧者習手足便器械積關以立攻守之勝者也(기교자습수족편기계적관이립공수지승자야)란 기록만 있다. 특히 〈藝文志(예문지)〉에서 ‘藝(예)’자를 사용한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중국 최초의 무술서는 《무예총서》이고 그 이후 明(명)의 唐順之(당순지)가 《武篇(무편)》을 찬술했다. 당순지의 영향을 받은 척계광이 기효신서를 찬술한다. 여기에서 왜구의 검술을 극찬하고 중국의 검술이 스스로 倭(왜)보다 못하다 기록했으니 일본의 검술은 동양검술에서 최고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우리의 무예서는 연개소문의 《金海兵書(김해병서)》, 삼국유사의 《安國兵法(안국병법)》, 삼국사기에 원성왕(786) 때의 《武烏兵法(무오병법)》, 그리고 신라에 세 개의 병법이 있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후대에까지 전해지지 않고 모두 사라졌다. 조선 초 태조의 명을 받고 하륜의 《陣說(진설)》, 문종 때《東國便覽(동국편람)》 , 단종 때 《歷代兵要(역대병요)》의 병서가 출간 됐다. 무예서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1598년(선조31) 한교가 중국의 《기효신서》를 토대로 허유격의 도움을 받아 《武藝諸譜(무예제보)》를 최초로 편찬했다. 그 후 최기남이 《武藝諸譜飜譯續集(무예제보번역속집)》을, 훈련도감교련관 林秀雄(임수웅)이 1759년(영조35)에 사도세자와 함께 18가지 도보를 정리하여 《武藝新譜(무예신보)》를 편찬했으며,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박제가와 장용영초관 백동수 그리고 화공 김홍도가 참여하여 정조 때 18기에 6기를 더하여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했다. 한국은 《무예도보통지》를 그린 원화를 화원은 허감, 한종일, 김종희, 박유성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에 《무예도보통지》등재하면서 김홍도로 원화자로 했다. 본 책에서는 김홍도를 원화자로 서술한다.
우리 사학계는 무예서가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편찬했다는 이유로, 중국과 일본무술을 정리한 것이고 우리의 고유무예는 본국검·조선세법 뿐이라는 주장들을 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중화의 기록에 “동이족 치우천황이 철제무기 다섯 종류〔刀(도)戟(극)大弩(대노)·劍戟(검극)·銅頭鐵額(동두철액)〕을 최초로 만들었고 도끼장창 등 14가지 무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紀效新書(기효신서)》에서 다루는 모든 무기가 이미 동이족에서는 있었다. 철재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했는데, 그것을 다루는 무술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기록이 없으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한국의 실증사학이다. 중국 역사를 보면 대부분 북방민족이 중원을 점령하여 나라를 세웠다. 이들이 사용한 무기와 무술은 당연히 북방의 무술이지만, 중원을 점령한 왕조가 다시 망하고 교체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북방계열의 모든 무예는 중국 고유의 무술로 인식하게 됐다. 고구려 벽화의 군사행렬을 보면 전장에 사용한 무기들이 중국의 무기들로 가득하다. 후대에 기록이 없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무예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중화에 남아 있는 무예서에서 찾아내야 한다. 조선세법도 明(명)의 茅元儀(모원의)가 지은 《武備誌(무비지)》에서 찾았다. 그동안 본국검은 신라의 검법으로 알고 있었으나 조선세법을 해독하고 나서야 조선세법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됐다. 과거의 기록은 이처럼 중요하다. 과거의 기록은 결코 죽은 망령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의 산물이다.

현재의 무예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기록이 필요하다. 중국과 일본도 과거의 기록을 연구하여 세계무대에 발표하고 있다. 자국의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왜검술을 연구하면 우리와 일본의 역사가 혼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의 역사는 한반도 역사가 투영된 실존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 일본은 고대사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고대사를 연구하면 일본을 이룩한 주체 세력은 한반도 이주민의 역사이기에 일본은 끊임없이 고대사를 드러내지 않고 왜곡하려 한다.

특히 百濟(백제) 패망 후, 倭(왜)에 백제의 다른 이름 ‘日本(일본)’이라는 이름으로 새 나라를 세운다. 그리고 빼앗긴 고향의 나라 한반도로 진출하기 위해 절치부심 한다. 일본의 ‘왓따산(渡來山)’ 정상에 母國(모국)을 그리며 3층 석탑을 세우고, 그 주변에는 3만 5,000여 개의 부도를 세워 고국을 향하고 있다. ‘왓따산’은 한자로 ‘渡來山(도래산)’이다. 훈독으로 보면 ‘(백제에서)왔다’는 뜻이다.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야마모토(大和倭)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의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통해 미래의 분란을 심어주고 있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면 미래에 영토분쟁은 필연으로 다가올 것이다. 백제멸망 후, 무력이 곧 국가의 근본이라는 철학으로 와신상담 힘을 키워온 일본이다. 전쟁은 대부분 이웃한 나라와 하게 된다. 그러기에 한중일은 항상 위험한 경계에 있다. 일본은 1,000년의 역사적 관점에서 자신들은 중원의 천자국과 대등한 관계고, 한민족은 중화의 속국으로 보아왔다. 중국과 일본이 힘이 강성해지면 늘 한반도를 넘보았다. 이것이 이 땅의 운명이다.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무인정신을 고취하고 강한 국방력을 가져야 한다.

일본은 근대화와 함께 일본무예는 세계적 위치에 서게 된다. 러시아와 중국을 격파하고 세계최강 미국에 선제공격을 한 나라다. 결과는 패했지만 그 속에 잠재된 무인정신과 자존심은 결코 패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한 번 붙어보겠다는 결기가 서려 있다.

한국은 일본에 강제 점령당한 이후 근대사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강제 점령기에 한국의 무예는 일본의 신도문화인 일본 무도에 흡수됐다. 일본은 신도의 나라이다. 신도는 불교의 전래로 약화되었으나 다시 불교를 신도 밑으로 둔 결과, 鎌倉(카마구라) 시대에 일본 천왕은 ‘부처님의 화신’이 됐다.

에도시대에는 儒佛道(유불도)를 격하시키고 復古神道(복고신도)를 사상화 했다. 마침내 메이지 천왕은 1868년 불교와 신도를 분리하는 ‘신불분리령’을 제정하여 신사에 있던 불상을 모두 철거하고 승려를 神職(신직)으로 강제임용 했다. 征韓論(정한론)을 주장한 야마가 소고·요시다 쇼인 등과 같은 철학자들이 사상적으로 신도를 뒷받침했다. 오늘날 일본 무술은 모두 ‘道’자를 넣어 ‘武道(무도)’로 사용하고 있다. 즉 일본 ‘무도’는 ‘신도’라는 천왕중심의 군국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아베 총리가 “요사다 쇼인 선생의 사상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고 공언하는 것을 보면 제국의 망령이 신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일본 무도의 산실은 明治神宮(명치신궁)의 至誠館(지성관)이다. 여기에서 검도·합기도·궁도·유도 등을 상류층이 수련하면서 武士道(무사도) 정신을 통해 신도를 계승하고 있다.

일본은 근대철학을 하면서 개념이 곧 정체성이라는 것을 알고 일본에서 그동안 사용해오던 무예, 무술의 단어를 ‘무도’라는 개념으로 통일시켰다. 일본은 ‘무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고대사의 콤플렉스를 탈출하고 한민족의 무예를 일본 무도의 개념 속에 가두는 놀라운 묘수를 두었다. 그러나 고대의 기록 속에는 한민족의 위대한 무예의 역사가 남아 있다. 선조들의 무예문화를 부흥시켜야 한다. 생물뿐만 아니라 국가도 생멸한다. 강하면 살고 약하면 죽는다. 國運(국운)을 좌우하는 ‘運(운)’자는 ‘軍+’으로 군사력이다. 군사력이 없으면 국가는 망한다. 일본은 국가의 본질이 무력임을 알기에 武人精神(무인정신)을 고취시키고 은밀하고 치밀하게 무력을 키운 결과, 패망 후 재무장의 길로 자연스럽게 가고 있다.

한편, 역성혁명을 일으킨 태조 이성계는 무인의 속성을 잘 알기에 무인을 경계했다. 이성계는 明(명)에 무력을 의지하고 조선을 文人(문인)의 나라로 개조했다. 그 결과 조선은 明(명)에 事大(사대)하게 되고 무인들은 천대를 받게 됐다. 이러한 조선 600년의 풍토가 문인의 나라로 구조화됐다. 문인의 나라가 지속되는 한, 한민족의 불행은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 박정진 선생은 ‘임 총재가 해야지 누가 하겠나’ 하시며 채찍과 격려로 이끌어 주셨다. 武文哲學(무문철학)으로 한국의 무예가 나아갈 방향을 반듯이 세워주셨다. 초서체 해독에 도움이 되도록 일본어 한자 훈독 사전을 보내주신 전 일본 김세택 대사와 전대한병원협회 서석완 전 사무총장께 감사를 올린다. 《본국검예》에 이어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의 제호를 주신 손병철 박사께 감사를 드린다. 소전체의 대가이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동양화가 ‘눈꽃송이’ 雪花白(설화백) 임기옥께서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의 제호와 무예의 자존을 세울 수 있도록 武神(무신)이란 서체를 써주셨다. 오혜림 명인께도 감사드린다. 오랜 세월 곁에서 용기를 주신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조혜자 부회장과 안홍 회장 그리고 만해 김경호장인의 전통무예에 대한 관심과 석각을 새겨주신 한국서예협회 한상봉 이사께 감사드린다.

특히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를 졸업하고 이학박사인 임수원 대한본국검예협회장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 이 일은 한민족의 자존을 위한 역사적인 일로 분명히 가치가 있으니 후대에 남기어 후손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일개 개인이 하고 있다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용기 잃지 말라며 힘과 용기를 주며 외로운 길의 동반자가 됐다. 무예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숱한 시행착오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수련에 열중했다. 복원과정의 기록과 연구과정의 작은 기록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모든 것을 기록하고 녹취하여 남겨뒀다. 그리고 조선세법·본국검·왜검보 등의 술기를 체득한 자로 연구방법과 원고와 복원된 동작을 비교분석하여 목차와 소제목을 정하고 3년여에 걸쳐 구성과 교정·교열을 했다. 무문를 겸한 자로 한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위해 모든 술기와 검예의 정신을 후대에 계승할 막중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간 어려운 가운데 물심양면으로 헌신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일찍이 조선세법이 대동류유술의 기법과 관련이 있음을 2014.08.25.일 무예신문사 인터뷰에서 처음 발표하였고, 2015년 4월 18일 제 2회 대한민국합기도를 위한 포럼에서 ‘검과 대동류유술의 연계성’을 주제로 조선세법의 동작과 무예도보통지의 기록과 비교하여 발표했다. 검술과 대동류유술의 술기를 연구하고 있을 때, 마침 장인목 선생으로부터 대동류유술을 계승하고 비전목록을 2002년 9월에 물려받은 허일웅 명지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났다. 허일웅 박사님의 도움으로 2017년 6월 17일 ‘대동류유술과 본국검’을 명지대학교 자연사회교육원에 학과를 개설하여 대동류유술과 조선세법의 연계성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986년부터 허일웅 박사와 교류가 있는 91세의 다나카시게호(田中茂穗) 지성관 合氣道(아이키도) 명예총관장을 2017년 6월 29일 만났다. 다나카시게호는 아이키토 창시자 植芝盛平(식지성평: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제자로 동경대·중앙대·토야마대에서도 지도하는 일본 合氣道를 대표하는 최고수(9단) 무인이다. 이번 방문은 허일웅 박사, 임수원 본국검예협회장, 류지량 천지관 총관장, 허재원 동방무예 원장과 함께 했다. 지성관이 일본의 ‘무도’가 사무라이 정신의 부활과 신도의 무사도임을 확인했다. 합기도 창시자의 식지성평(植芝盛平:우에시바 모리헤이)의 3대 손, 식지수영(植芝守央:모리테루) 도주를 만나 본국검이 일본에 전래한 사실을 직접 설명하고 그 증거로 본국검예를 증정했다. 대동류유술의 중흥조인 源正義(원정의) 계승자인 종가대리 석교의구(石橋義久:이시바시기규)를 만나 小野派一刀流소(야파일도류)의 秘技(비기)를 직접 확인했고, 그 비기가 조선세법 擊刺(격자)의 기법임을 확인했다. 또한 석교의구가 대동류술이 검술의 기법에서 나왔다고 확인시켜줌으로써 조선세법과 대동류유술의 기법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실제 대동류 一木捕(일목포)는 조선세법의 거정세와 평대세의 수수세와 연결된다. 그밖에 많은 기법들도 조선세법과 검의 범주 속에 모두 들어있었다. 조선세법에서 맨손술기가 복권되면 朝鮮相撲流(조선상박류)가 복원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박술기의 시원은 고조선이 된다.

무예신문사 최종표 회장께서는 한국 ‘武藝(무예)’가 ‘武道(무도)’의 개념에 빠져있을 때, 한민족 정체성이 담긴 ‘武藝(무예)’의 개념을 알리기 위해 ‘무예신문’을 발간했다. 무예의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선구자로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한결같은 성원과 지지를 해주었다.

디플로머시 임덕규 회장, 신문명정책연구원 장기표 대표, 계원예술대학교 권영걸 총장, 선문대학교 석준호 전 이사장, 중원대학교 김두년 총장, 한국간도학회 이일걸 회장, 경기대 박영규 명예교수,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상보 김상근 회장, 사)계수나무장학회 김상천 회장의 호의에 감사드린다. 또한 협회 발전을 위해 노력해주신 강준석 부총재, 이상억 사장께 감사드린다. 특히 2018. 8.15일 양정무 회장은 저자에게 고조선 시대 흑피옥으로 된 환웅국새를 해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로인해 환웅국새가 《三國遺事(삼국유사)》에 기록된 天符印(천부인)임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에 桓雄國璽(환웅국새)를 최초로 공개하도록 하고, 고조선박물관에 본국무예원을 세워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나영일 교수, 선문대학교 무도학과 최종균 교수, 영산대학교 박귀순 교수, 남부대학교 김영식 교수, 일본아이비스포츠단 윤상준 박사, 중앙대학교 손환 교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성봉주 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곽낙현 박사, 계명대학교 송형석 교수, 이호연 문학 박사, SDA종합예술실용전문학교 전관식 이사장, 세계일보 조정진 논설위원과 조형국 박사, 세계통일아카데미 최문형 회장과 회원 여러분들의 관심과 조력에 감사드린다. 특히 음양오행 학자 박창보 국학박사께서 ‘천문과 10간 12지’의 내용을 보시고, 《음양으로 본 우리상고사》에 인용하려 출판을 미루셨다. 그러나 본국검예의 출판이 계속 지연된 관계로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에 죄송함을 표한다.

대한민국무예체육단체협의회 이용복김의환 고문님의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린다. 통천철권도 허통천 총재, 동국검법 전영식 회장, 프로태권도 김형룡 회장, 한국화랑도협회 최종태 회장과 김진수 이사, 세계합기도연맹 최선길 회장, 세계평화무도연합 송희철 본부장, 대한삼보 문종금 회장, 국선도 박윤박 회장, 대한궁술원 장영민 원장, 차력무술협회 우명덕 회장 등 33개 대한민국무예체육단체협의회원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한국무예총연합회 김정기 상임이사, 국제특공무술연합회 박노원 총재, 세계국무도연맹 양승근 총재를 비롯한 한무총 회원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천지무예도협회 왕호 창시자, 호신권법 임성학 총재, 미국태권도계의 대부 이현곤 회장, 합기도수도관 홍승길김홍철 회장, 대한호국특공무술 김진영 이사장정효진 총재, 세계국무원 황영진 총재, 은평구태권도협회 황소선 회장, 진검도법 이정직 회장, 세계글로벌합기도 이희관총재, 풍류문화연구소 김두섭 소장, 다물흥방단 구용본 단장께 감사드린다. 전통예절을 계승하는 청학동 김봉곤 훈장과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시는 한배달 박정학 회장,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기 위해 광개토태왕비를 세우신 너른마당 임순형 회장께도 감사드린다. 특히 정진석 선배님과 이창선 의형의 깊은 우의에 감사드린다. 그밖에 소개하지 못한 많은 지인 무인께 송구함과 감사를 표합니다.

본 협회 임종상 부총재께서 천부인의 사진 촬영에 도움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또한 이운성 부회장이석숭임인홍정승원조길현김상호이양환 이사, 문영길 경상도본부장(세계대학태권도협회 부회장), 김정웅 고문, 이재원 자문위원(남서울실용전문학교), 김정락 자문위원, 이창환 기획이사께 감사드린다. 또한 이승영 치과원장의 전통무예에 대한 열정과 후원에 감사드린다. 《본국검예》의 정체성을 계승하는 김광염 총관장김동훈김재환정주현이임선유운지와 김정필과 특공무인 김동제정규호백운식백승동과 기무사 김근호 등 여러 제자들의 투철한 무인정신에 감사드린다. 해동검도의 이승량(본협회충남본부장)임만수(본협회충남부회장)가광순(세계특수무술연맹 설립자)정호종유응선이병홍이종훈이창경김석환 관장의 참여에 감사드린다. 세계평화무도연합 사무총장 성도원과 겐신, 미국 태권도 유윤암과 전통검 제작에 헌신하는 박동조와 협회마크를 디자인한 오경근 대표, 오랜 인연을 함께 한 인스팩코퍼레이션 김주호 회장, 지우 김진술, 정은경 시낭송가, 송산시왕선태 스님, 청산스님의 승군무예를 계승하는 청룡황룡보리 스님, 승병무예단단장 연화스님경천 스님과 전통사폭바지를 무복으로 개량해준 한복 디자이너 최수현 교수께 감사드린다.

《본국검예》를 출판한 것이 바로 엊그제 같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에 전통무예의 희망을 보았다. 본국검예를 읽고 무엇이 옳은지 알게 되었다며 멀리서 찾아와 수련을 청하는 용기 있는 무인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잃어버린 우리의 무예를 바로 세울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어떤 독자는 본국검예를 수 없이 읽었다며 오탈자도 찾아주었다. 처음 출판하면서 잦은 원고수정으로 원고가 뒤섞인 곳이 여러 곳이 있다. 기회가 되면 한권의 책으로 조선세법과 본국검을 정리할 계획이다. 출판 업계가 매우 어렵다. 독자가 한정되어 손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출판사 권선복 사장의 결단으로 《본국검예》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또한 권선복 사장님의 배려로 전퉁무예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출판업계에서 보기 드문 심지 깊은 철학을 가지셨다. 이번에도 용단을 내려주신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본국검예》 1·2권에 이어 3권의 원고를 꼼꼼히 읽고 멋지게 디자인 해준 최새롬 팀장에게 감사드린다.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가 전통무예와 동양검술의 흐름을 알고자 하는 무인과 진검술기를 연구하는 학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돌아가신 부친께 《본국검예》를 헌상한 지 5년이 흘렀다. 모친께서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자식이 걱정된다며 언제쯤 이 일이 끝나 너의 삶이 나아지냐며 때마다 물으셨다. 에둘러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가 마무리되면 다 잘될 거라며 안심시켜드렸는데 출판을 못 보시고 2015년 6월 11일(음력 4. 24)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오랜 세월 걱정만 끼쳐드렸다. 歸天(귀천)하신 모친께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를 바친다. 끝으로 여식의 결혼을 축하하며 변함없이 믿고 지지해준 가족에게 감사드린다.

[편집 후기]
한민족의 무예에 대한 광대하고 깊이 있는 탐구를 통해 우리의 뿌리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샘솟아 오르길 기원합니다!

정신이 죽으면 몸도 죽습니다. 민족의 정기가 죽으면 민족의 미래도 죽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 없는 지식이 무엇일까요? 인문학적 소양의 대중적 소외 현상 속에서 특히 심각한 것은 역사와 고유문화에 대한 경시 풍조와 무관심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먹고 사는 데에 쓸모없는 지식’이라는 인식이 심화되면서, 우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배달 문화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 『본국검예 3권 -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는 단순한 무술 서적을 떠나 배달 문화의 시원과 원류를 통찰하고 우리 민족의 뿌리에 대한 관심과 민족적 자긍심을 키워 준다는 면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아울러 저자는 검결 분석에 앞서 먼저 한자 문화와 동아시아 문화사의 원류 및 개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논리적 바탕을 튼튼히 다져 놓았습니다. 따라서 본서를 읽어 내려가는 독자들은 무예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인문학적 지평의 확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편 본격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조선왕조가 우리에게 남겨 준 세계에서 하나뿐인 무예의 바이블,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조선 고유의 무예 복원입니다. 특히 이제까지 이루어진 복원 시도들처럼 단순히 조각난 조선 고무술의 파편에 중국일본의 무예 기법을 짜깁기하는 수준을 뛰어넘었습니다. 무예 동작에 붙은 ‘가결’을 해독하고 복원해 내는 한편, 조선 무술의 뿌리를 탐구하여 우리 상고사의 비밀과 중국·일본 무술에 끼친 영향까지 분석해 냈습니다. 이런 시도는 무예를 넘어서서 인문학적 차원에서도 비교문화연구 측면에서 가치를 지닙니다.

전 세계의 글로벌화가 가속되면서 많은 나라들은 국가와 민족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을 강화하여 주변국들과의 ‘문화 전쟁’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책 『본국검예 3권 -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가 격화되는 문화 전쟁의 시대에 민족적 자긍심을 팡팡팡 샘솟게 하는 마중물이 되어 주기를 희망합니다.

추천평

잃어버린 무예를 복원하는 과정은 참으로 지난한 여정이다. 무예에 관한 책이 남아 있다고 해서 무예가 복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예의 입체적인 동작을 평면의 책에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문 무예인이라 하더라도 동작의 전후 맥락이나 회전 등 각종 동작에서 오차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왕조가 우리에게 남겨준 세계에서 하나뿐인 무예의 바이블 《武藝圖譜通志(무예도보통지)》를 복권한 내용도 지금까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예의 복원도 처음엔 고고학처럼 파편을 가지고 원형을 추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무예인들 저마다 일본의 무도나 중국의 무술을 가지고 복원에 매달렸다. 그러나 동선의 자연스러움과 칼을 쥐는 방법과 회전은 물론이고, 적을 다루는 실전효과 면에서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세계일보에 《무맥》을 연재할 당시, 무예의 동작에 붙여진 가결에 무엇인가 숨겨진 것을 육감적으로 느꼈다. 검결은 검술의 요체를 담은 일종의 무예인의 詩(시) 혹은 呪文(주문)이었다. 나는 “검결에 비밀을 푸는 열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 암호를 풀어야만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를 복원할 수 있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해주는 무인을 만나지 못하고 후대에 눈 밝은 무인이 나타나주길 기대하며 “비결을 숨긴 칼의 노래, 검결(2009년 7월 2일)”을 연재했다. 마침내 임성묵 총재가 최초로 가결을 해독한 것이다.

역자고에 중국 고대부터 전래되는 많은 검법 중 가장 실전적인 쌍수검을 곤오검(법)이라 했는데 《무비지》를 찬술한 모원의(1594~1641) 대에 와서 곤오검결가만 무편에 남아있고 기법은 사라진 상태였다. 모원의는 조선세법의 검결과 곤오검결을 보고서야 조선세법이 바로 실전된 ‘곤오검법’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간 한·중·일이 해독하지 못한 곤오검결가를 해독함으로써 조선세법과 곤오검이 한 뿌리임을 입증한 것으로 무예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업적을 세운 것이다.

조선세법 64세가 천문과 칠성사상이 연결된 것을 찾아낸 것은 주역이나 음양론이 한민족의 철학이며 우주관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상고조선은 천제의 퍼포먼스에 검은 중요한 의례였다. 이런 문화가 남은 것이 중화의 4대 검 ‘곤오·청평·팔선·순양’이다. 여기에서 칠성검·태극검·팔괘검·천둔검 등으로 분화되고 후대에 800여 검술로 분화됐다. 이처럼 조선세법은 동양무예의 정수다.
일제에 의해 전통무예가 처절하게 단절된 후, 몇몇 무술단체가 《무예도보통지》를 토대로 복원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무예도보통지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객관적 근거가 없어 학계입장에서도 복원했다고 말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면에서 임성묵의 《본국검예》 1권 [조선세법〉과 2권 [본국검〉은 무예를 모르는 일반인들과 학자들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나는 2016년 9월 2일 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 대한무도학회 국제학술대회의 기조논문 발표자로서 《본국검예》가 동양이 무경 무예도보통지를 최초로 해석한 것임을 발표했다.
《본국검예》 출판한 후, 5년 만에 다시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를 출판한다는 연락이 왔다.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의아했다. 대개 학자들도 우리의 무예가 일본에 전해진 것은 짐작하나 사료부족으로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고무예를 연구하는 과정에 한자를 단순하게 해석하지 않고 갑골문·금문의 자형의 형태와 음가의 뿌리까지 더듬어 연구하고 한글이 한자의 모체임을 밝힌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연구방식은 절벽에 막혀있는 무예인문학의 시대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학계에도 연구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는 커다란 디딤돌을 놓았다.

동양삼국은 지금 정체성과 역사전쟁이 시작됐다. 일본은 명치시대에 제일먼저 道(도)로써 武道(무도)를 정립하고 중국은 術(술)로써 武術(무술)로 정립했다. 이제 한국도 藝(예)로써 武藝(무예)를 정립해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武藝(무예)’의 개념이 한민족 견우와 직녀와 연결된 신화임을 밝히고,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답을 ‘我(아)’자에서 찾아낸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견우와 직녀’로 연결된 한민족의 신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 분명히 기존의 접근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 향후 학계에서도 심도 있게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임성묵 총재가 무예도보통지의 모든 검술은 해독하려면 영류지목록을 해독해야 한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영류지목록은 600년 된 일본 고어체 문서임에도 일본학계에서도 아직까지도 해독하지 못했다한다. 이것을 임성묵 총재가 도전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혹시 도움이 될까하여 《일본어 훈독사전》을 편찬한 김세택 전 일본대사를 소개해주었다. 그 후 소식이 뜸하더니 영류지목록을 해독했다는 것이다. 보내준 원고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임성묵 총재가 영류지목록을 해석한 방식은 우리의 소리와 한자의 음가의 원리를 밝히고 한자의 자형이 가진 형태를 통해 영류지목록을 해석한 것이었다. 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소리야 말로 각 민족 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음을 오래전에 책을 통해 밝힌바 있다.

일본의 검경 영류지목록은 문자가 일반화 되지 않았던 시절, 의미 전달은 소리와 시어를 통해 문화를 전승하는 것은 인류의 일반적 문화현상이다. 영류지목록과 왜검의 가결에서 이런 시어를 찾아낸 것은 천우신조라 할 것이다. 동양의 무예는 단순한 무술이 아니라 문화를 담은 퍼포먼스였다는 것을 또다시 임총재가 입증한 것이다.
왜검보의 검결이 조선세법의 검결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조선세법과 같은 DNA를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왜검보의 그림이 전후로 그려진 것을 찾아냄으로써 왜검보의 기법을 복원하는 개가를 올렸다.
또한 단절된 한민족 相撲(상박)의 뿌리를 찾기 위해 일본 대동류유술의 종가대리 이시바시요시히사(石橋義久)와 명치신궁에서 아이키도(合氣道)를 지도하는 91세 다나카시케호(田中茂), 그리고 아이키도(合氣道) 우에시바모리테루(植芝守央)도주를 만나 “검술의 맨손 동작이 유술”임을 확인한 것은 단절된 相撲(상박)을 조선세법에서 복원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한 것이다.

문화란 머무름 없이 흐른다. 한·중·일의 무예는 서로 교류됐기에 이 무술은 ‘우리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싫든 좋든 학자는 기록을 통해 소유를 주장하는 속성을 드러낸다. 문제는 어떠한 잣대로 기록을 볼 것인가 하는 사관이 문제다.
중국은 현 영토 내의 모든 역사는 중국문화라 주장한다. 영토사관으로 역사를 보면 한민족의 문화는 모두 중국의 문화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관으로 역사를 볼 것인가? 이 말은 중화에 있는 한민족의 무예를 어떻게 찾아올까하는 반문이다. 이 물음에 답을 임성묵 총재가 제시하고 있다.

임 총재는 검결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조선세법이 고대조선의 것이고, 같은 검결이 중국 여러 지방의 무술에 잔존하고 있었다는 것은 임진왜란 이후 일시에 중국 전역에 전파됐다기보다는 고대조선에서부터 중국과 일본 등의 무술이 조선의 영향권에 들어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본국이라는 것 자체가 고대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리와 문자는 그것을 만들고 사용한 민족의 문화적 바탕위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영토와 시간에 구속되지 않는다. 이것이 문화사관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무예는 정체성을 잃어 혼란에 빠졌다. 양적성장은 했으나 알맹이가 없다. 무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속에 역사성과 정체성이 없으면 내세울 힘이 없게 된다. 일본의 무도는 단조로운 것 같지만 역사성이 담보되어 동양무도를 대표할 경지에 와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전통무술은 사라지고 외래무술과 연원을 알 수 없는 창시무술들로 가득하다. 문화융성을 외치지만 이런 토양에서 세계적인 무술로 성장시킬 수 있는 우리의 무술이 있긴 한가? 하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이 손 놓고 있는 사이 북한이 한국을 제치고 단독으로 무예도보통지를 세계유네스코에 등재함으로써 학술적 기득권을 가지게 됐다. 그동안 연구된 자료도 없이 무예도보통지를 복원했다고 주장만 하고 검증을 회피해왔지만 북한과 학술적 검증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이러한 때에 이러한 연구가 북한보다 먼저 발표한 것은 우리로서는 매우 의미가 크다.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는 북한과 세계 학계에 내놓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일본으로서는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하는 것은 치욕이라 생각할 것이다. 치밀하기로 정평 난 일본학계가 영류지목록을 해석해내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문자적 해석만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말은 임성묵 총재의 연구방식이 한·중·일 고무예 연구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통무예가 단절된 우리로는 이러한 방식의 연구가 절실하다. 이러한 연구는 학계가 나서서 연구해야 할 장기 국책연구과제 임에도 일개인이 연구해 온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문인의 나라다 보니 무인을 홀대하는 것이니 어쩌겠나!”라고 하며 위로의 말을 해주곤 한다.
《왜검의 시원은 조선이다》는 한국무예사에 남을 역작임에 틀림없다. 어렵게 복원된 무예인만큼 잘 계승되길 바란다. 임성묵 총재의 노고를 추천의 글로 가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 박정진 (도농(道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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