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의미는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그래서 나도 가야만 하는 길”
이 구절은 앞서 언급된 모든 존재들의 여정이 궁극적으로 화자 자신의 여정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화자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이미 수많은 존재들이 통과해 온 길이며, 동시에 자신에게도 주어진 필연적 운명임을 자각한다.
특히 ‘순례자의 길’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의미를 더욱 심화시킨다. 순례자는 단순히 이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목적을 지닌 채 고통을 감수하며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 순례의 본질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자체보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 ‘길’은 단순한 삶의 비유가 아니라, 존재의 소명이며 윤리적·신앙적 사명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인식은 시인의 생애와도 깊이 연결된다. 목회와 노동운동, 통일운동의 길은 편안한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고통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 길을 멈출 수 없는 길, 곧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로 받아들인다.
결국 이 시에서 ‘순례자의 길’은 단순한 이동의 경로가 아니라, 고통과 상실을 통과하면서도 끝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의 운명이며, 동시에 자신의 존재 의미를 실현하는 소명의 길을 상징한다. 이 시는 삶을 선택 가능한 경로로 제시하기보다, 존재 자체에 내재된 필연적 여정으로 인식하며, 그 길을 받아들이는 순례자의 실존적 자각을 형상화한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