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바람이 몰아쳐서 문을 열기 버겁다. 온몸으로 밀어붙이자 꼼짝도 하지 않던 문틈이 겨우 벌어진다. 우리는 잠시 바람이 약해진 틈을 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먹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에서 천둥에 이어 번개가 번쩍인다. 번갯불이 잠시 사위를 비추자 안에서 들은 굉음의 원인이 눈앞에 드러난다.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던 나무가 기어이 쓰러져 있다. 그나마 집이 아니라 창고를 덮쳐 다행이다.P.226 중에서
네가 죽고 나서 난 계속 똑같은 의문이 들었어. 사람이 죽으면 사랑은 어디로 갈까? 마지막 숨결은 공기 중에 흩어지고, 시신은 땅에 묻히지만 사랑은 어디로 갈까? 혹시 네가 아직 여기 있는 건 사랑이 갇혀 있어서가 아닐까? 나는 널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고, 내가 일을 바로잡아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넌 아직 여기에 남아 있어.P.366 중에서
떠올리기 싫을 만큼 끔찍한 비극은 망각을 부른다.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또다시 같은 비극을 겪을 것 같아서. 내 경우에는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비극을 결코 완전히 망각의 세계로 던져버릴 수 없었다. 단지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P.352 중에서
나는 충격과 혐오, 슬픔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의 파고에 휩싸였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기억이 유령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갈 때 우리의 몸은 꼼짝없이 얼어붙게 된다. 교통사고를 목격한 사람처럼 그들의 행위가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그러다 바위 위에서 미끄러졌고,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P.298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