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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
1977년 출생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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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국내작가 문학가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선천적 저시력 장애인이다. 저시력 장애인이란 말이 낯선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장애인이면 장애인들이 하는 일을 하며 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말이 몹시 아프게 들렸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미래가 제한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고 있다.

2009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7년 첫 시집 『창세』를 냈고 같은 해 제18회 박인환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경희대와 안양예고에 출강하고 있다.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허민의 첫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이 우리에게 재현하는 세계는 이러한 특성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웹진 「시인광장」으로 등단한 이래 사 랑이란 주제를 자기만의 독특한 감성적 언어로 노래해 왔다. 여기에서 허민이 천착하는 사랑의 특성은 부재하는 연인과의 관계에 대한 감응이다. 문제는 이 러한 시적 상황은 사랑이 이미 끝난 자리에서 불가능한 사랑의 가능성으로 열 려 있으려 한다는 점이다. 허민에 따르면 그 자리는 사랑이 우리에게 선사하 고 떠난 자리이며 떠났지만 지속적으로 복귀의 가능성을 환기하는 자리이다. 부재하지만 부재를 통해 현존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우리는 사랑이 불가능한 결합을 수행한 행위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허민에게서 시는 이 자리 에 도래하는 노래이며 사랑의 회복을 어루만지는 노래들이다. 이것은 문장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문장은 불가능한 결합을 이미 내적 으로 성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문장은 이미 사랑이다.
  • 전형철은 아무도 아닌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 말들은 누군가가 스치며 남긴 흔적이다. 놀랍게도 자신의 목소리도 이름 없는 목소리의 흔적 속에 있다. 그 흔적은 순간이라 읽을 수 없다. 다만 들어 감내할 뿐이다. 들음을 견디는 일은 “바람을 반려 삼”는 일이다(「남방계」). 그것이 이어지는 일이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전형철의 시는 그 질문 앞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처음과 끝을 잇는 모든 순간이 우리의 시간이라 할 때, 그 시간을 전형철은 “당신의 이름은 참”이라고 부른다(「참(站)」). 순간이 “참”으로 이어질 때 종종 우리는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무언가 나타나는 순간이 사라지는 순간과 함께 다가올 때 삶은 늘 그 살아 숨 쉼으로 인해 우리를 지나쳐 가므로, 이 지나침이 시간이므로, 시간은 우리에게 독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의 진로를 읽어 내려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별의 궤도는 이미 뒤틀려 버렸”기 때문이다(「말들의 묘지」). 그래도 전형철은 노래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를 스쳐 간 모든 삶이 태어난 순간이라면 그 뒤틀림의 기록을, 우리 생의 기이함을 감내해야 한다고. 그 행위는 늘 실패한다. 그 실패를 산다. 전형철은 그것이 우리 생의 “밀률”이라 노래한다(「카이로스」). 우리 삶이 그렇듯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노래는 이후를 연다. “여전히 그 무엇도 아니”지만 이후에는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온다(「신의 사슬」). 그 이름 이후에야 우리는 다만 사람일 수 있다. 전형철이 “이름 이후의 사람”(같은 시)이라 노래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전형철은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 전형철이 듣는 이름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함께 듣자. 그 들음의 순간 우리 삶이 마주할 빛나는 순간이 시간의 처음과 끝을 끊어 내고 우리 앞에 올 것이니. 전형철의 시는 이 들음과 함께하며 이후를 여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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