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철은 아무도 아닌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 말들은 누군가가 스치며 남긴 흔적이다. 놀랍게도 자신의 목소리도 이름 없는 목소리의 흔적 속에 있다. 그 흔적은 순간이라 읽을 수 없다. 다만 들어 감내할 뿐이다. 들음을 견디는 일은 “바람을 반려 삼”는 일이다(「남방계」). 그것이 이어지는 일이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전형철의 시는 그 질문 앞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처음과 끝을 잇는 모든 순간이 우리의 시간이라 할 때, 그 시간을 전형철은 “당신의 이름은 참”이라고 부른다(「참(站)」). 순간이 “참”으로 이어질 때 종종 우리는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앞에 무언가 나타나는 순간이 사라지는 순간과 함께 다가올 때 삶은 늘 그 살아 숨 쉼으로 인해 우리를 지나쳐 가므로, 이 지나침이 시간이므로, 시간은 우리에게 독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의 진로를 읽어 내려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별의 궤도는 이미 뒤틀려 버렸”기 때문이다(「말들의 묘지」). 그래도 전형철은 노래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를 스쳐 간 모든 삶이 태어난 순간이라면 그 뒤틀림의 기록을, 우리 생의 기이함을 감내해야 한다고. 그 행위는 늘 실패한다. 그 실패를 산다.
전형철은 그것이 우리 생의 “밀률”이라 노래한다(「카이로스」). 우리 삶이 그렇듯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아닌 노래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노래는 이후를 연다. “여전히 그 무엇도 아니”지만 이후에는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온다(「신의 사슬」). 그 이름 이후에야 우리는 다만 사람일 수 있다. 전형철이 “이름 이후의 사람”(같은 시)이라 노래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전형철은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 전형철이 듣는 이름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함께 듣자. 그 들음의 순간 우리 삶이 마주할 빛나는 순간이 시간의 처음과 끝을 끊어 내고 우리 앞에 올 것이니. 전형철의 시는 이 들음과 함께하며 이후를 여는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