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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평론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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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최남선 평론선집 (큰글씨책)
최남선 저/문흥술 편/김학중 해설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34,000
최남선 평론선집 (큰글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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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문학평론

제1장 신변잡기와 기행문 서문
書齋 閑談
十年
半巡城記
平壤行
巡禮記의 卷頭에
≪白頭山 覲參記≫ 卷頭에
≪金剛 禮讚≫ 序詞

제2장 문학평론
朝鮮의 家庭文學
外國으로서 歸化한 朝鮮 古談?朝鮮歷史通俗講話別錄
토?타령
朝鮮의 神話
時調類聚


제2부 역사

海上大韓史
壇君 及 其 硏究
我等은 世界의 甲富


제3부 문화 교양

現時代의 要求?? 人物
少年 時言


해설
최남선은
엮은이 문흥술은
해설자 김학중은

저자 소개 3

崔南善, 육당六堂, 공육公六,

1890년 4월 26일 서울 출생. 본관은 동주(東州 : 철원). 자(字)는 공육(公六), 호는 육당(六堂).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등을 저술한 문인. 언론인이자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일본 유학 후 『소년』 등 잡지를 발행하고 저술을 통해 신문화운동을 벌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획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 뿌리가 같다는 ‘문화동원론’을 주장하며 일본 신도 보급, 학병지원 권유 등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1890년 4월 26일 서울 출생. 본관은 동주(東州 : 철원). 자(字)는 공육(公六), 호는 육당(六堂).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등을 저술한 문인. 언론인이자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일본 유학 후 『소년』 등 잡지를 발행하고 저술을 통해 신문화운동을 벌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획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 뿌리가 같다는 ‘문화동원론’을 주장하며 일본 신도 보급, 학병지원 권유 등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한국 개화기 인문학의 선구자요, 신문화운동의 개척자로 출판사 ‘신문관(新文館)’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를 설립하여 수많은 서양의 고전 명작들과 한국의 고전들을 번역 소개하는 등 출판문화로 ‘문장구국(文章救國)’하려는 의지가 대단했다. 1908년 근대 종합잡지의 효시인 [소년]을 창간했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으며, 이후 [붉은 저고리] [아이들보이] [청춘] [새별] 등 많은 잡지를 발간했다. 1919년 3.1운동에 주동으로 참여, [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민족대표 47인 중의 1인으로 체포, 2년 8개월간 복역하기도 했으며, 한국역사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43년 11월에는 일본 동경에서 학도병 지원 연설에 나오는 등 일제에 협력했다. 1949년 2월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 수감되었고, 옥중에서 친일행위에 대한 해명과 속죄를 담은 [자열서(自列書)]를 제출했다. 1957년 10월 10일 [한국역사사전]을 집필하던 중 68세로 작고했다.
* [백팔번뇌(百八煩惱)](1926, 근대 이후 최초의 창작시조집), [단군론](1926),[시조유취(時調類聚)](1928), [심춘순례(尋春巡禮)](1925),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1925), [금강예찬(金剛禮讚)](1926), [풍악유기(楓嶽遊記)](1926), [백두산근참기](1926), [아시조선(兒時朝鮮)](1927), [삼국유사해제](1927), [살만교차기(薩滿敎箚記)](1927, 북방 샤머니즘 해설서),[육당최남선 전집] 15권(1973), [고사통(故事通)](1943), [조선상식문답](1947), [국민조선역사](1945), [역사일감(歷史日鑑)](1947)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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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김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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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선천적 저시력 장애인이다. 저시력 장애인이란 말이 낯선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장애인이면 장애인들이 하는 일을 하며 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말이 몹시 아프게 들렸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미래가 제한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고 있다. 2009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7년 첫 시집 『창세』를 냈고 같은 해 제18회 박인환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경희대와 안양예고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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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인간주체의 와해와 새로운 글쓰기」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자멸과 회생의 소설문학』(1997), 『작가와 탈근대성』(1997), 『시원의 울림』(1998), 『모더니즘 문학과 욕망의 언어』(2000), 『한국모더니즘 소설』(2003), 『존재의 집에 이르는 지도』(2004), 『형식의 운명, 운명의 형식』(2006), 『문학의 본향과 지평』(2007) 등을 썼고, 장편소설 『굴뚝새는 어디로 갔을까』(200
1961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인간주체의 와해와 새로운 글쓰기」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자멸과 회생의 소설문학』(1997), 『작가와 탈근대성』(1997), 『시원의 울림』(1998), 『모더니즘 문학과 욕망의 언어』(2000), 『한국모더니즘 소설』(2003), 『존재의 집에 이르는 지도』(2004), 『형식의 운명, 운명의 형식』(2006), 『문학의 본향과 지평』(2007) 등을 썼고, 장편소설 『굴뚝새는 어디로 갔을까』(2000), 편저 『운수 좋은 날』(2001), 『태평천하』(2002), 『상록수』(2003), 공저 『소설 신라열전』(2001) 등을 펴냈다. 2006년 김달진 문학평론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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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7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313쪽 | 128*188*30mm
ISBN13
9791130457826

출판사 리뷰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최남선의 글은 시와 시조 등의 창작 작품이나 번역문 등의 작업과는 거리가 있으며 주로 기행문, 문학, 역사학 및 민속학 연구 등과 관련된 글들이다. 이 글들은 최남선의 광범위한 글쓰기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사실 이 글들은 엄밀하게 말해 “평론”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여기에 실린 비평적 준거나 작품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근대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는 점들이 엿보이고 당시 일제의 역사학이나 풍속학, 문화학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것들에 내재하고 있는 비평적 시각을 부각해 볼 수 있다.

<書齋 閑談>의 서두에서 “나는 어려서부터 文?의 價値를 혼자 생각하고 甚히 尊重하게 알아서 무릇 글씨를 쓴 종이는 다 貴重하게 넣어 두는 중에서도 特別히 國家와 民族의 生活에 關係되는 文?을 수집 保存하기에 苦心한 것은 거의 天性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매우 압축적으로 자신의 수집가의 면모와 조선적인 것 또는 민족과 관련된 관심이 거의 동일 선상에 놓여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글로 쓴 것을 수집하고 모으되 그 수집의 최고의 준거점은 “국가”와 “민족”과 관련된 것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계몽적인 작업을 통해 “신문화”를 열어 나가는 것이 어려워졌을 때 “문화”가 등장하는데 이 둘 모두를 실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수집”이라는 것을 최남선은 말하고 있다. 즉, 새로운 문물에 대한 열망과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열망은 사실은 한 쌍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중화되고 이중적인 것이지만 최남선에게 그것은 서로 자리를 바꾸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지평이 바로 “문화”다. 그리고 이 “문화”는 “수집”이란 모험을 통해 구체화되고 글쓰기를 통해 “문화”로서 정립된다. “내가 이 冊에 執筆할세 우리 國民에게 向하야 着精키를 願할 一事가 잇스니 그것은 곳 우리들이 우리나라가 三面環海한 半島國인 것을 許久間 忘却한 일이라”(<海上大韓史>)라고 말하며 “바다”의 개척을 요청할 때, 그것은 최남선에게 구체적으로 “바다”의 개방성을 “수집”해 구체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수집”에 근거한 비평적 시각의 확보와 연구 방법론의 구체화를 추구하는 작업을 글쓰기로 풀어내는 지점에서 최남선의 백과사전적이고 다양한 영역에 대한 탐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글쓰기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문화”이며 이미 최남선에게 “신문화”인, 새롭게 재규명되고 구축된 “조선적인 것”이다. 최남선은 우리의 손으로 조선학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조선학”은 근대적인 차원에 놓인 전혀 새로운 차원의 조선학이었던 것이다.

그의 모든 외적인 활동과 그에 따른 글쓰기, 백과사전적 지식과 그 지식을 통한 글쓰기는 모두 이러한 지평에 놓여 있다. 그의 모든 모험은 결국 그의 서재를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비평적 시선이 어디에 가닿아 있는지 우리에게 암시한다. 수집가로서 최남선은 바로 이 채워지지 않는 조망의 지평, “문화”, “민족”, “국가”라는 지평에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시도를 했다. 그것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으며 실패하기도 했고 언제나 수정될 것의 지평에 놓여 있었다. 그것이 물리적으로 책들의 집합으로 놓여 있을 때조차 그것은 늘 그 수정될 것의 지평을 가리키고 있었을 것이다. 비평, 그것은 형체를 가진 것에서조차 형체를 가지지 않는다. 아마도 최남선이 우리에게 근대적 비평의 시작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면 바로 이 지점을 알려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가 더욱이 ‘한담’이라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오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한가한 이야기를 통해서야만 이 부제하면서도 미끄러지는 지평의 차원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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