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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문학평론
제1장 신변잡기와 기행문 서문 書齋 閑談 十年 半巡城記 平壤行 巡禮記의 卷頭에 ≪白頭山 覲參記≫ 卷頭에 ≪金剛 禮讚≫ 序詞 제2장 문학평론 朝鮮의 家庭文學 外國으로서 歸化한 朝鮮 古談?朝鮮歷史通俗講話別錄 토?타령 朝鮮의 神話 時調類聚 제2부 역사 海上大韓史 壇君 及 其 硏究 我等은 世界의 甲富 제3부 문화 교양 現時代의 要求?? 人物 少年 時言 해설 최남선은 엮은이 문흥술은 해설자 김학중은 |
崔南善, 육당六堂, 공육公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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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최남선의 글은 시와 시조 등의 창작 작품이나 번역문 등의 작업과는 거리가 있으며 주로 기행문, 문학, 역사학 및 민속학 연구 등과 관련된 글들이다. 이 글들은 최남선의 광범위한 글쓰기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사실 이 글들은 엄밀하게 말해 “평론”이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다. 여기에 실린 비평적 준거나 작품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근대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려고 애쓰고 있는 점들이 엿보이고 당시 일제의 역사학이나 풍속학, 문화학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것들에 내재하고 있는 비평적 시각을 부각해 볼 수 있다. <書齋 閑談>의 서두에서 “나는 어려서부터 文?의 價値를 혼자 생각하고 甚히 尊重하게 알아서 무릇 글씨를 쓴 종이는 다 貴重하게 넣어 두는 중에서도 特別히 國家와 民族의 生活에 關係되는 文?을 수집 保存하기에 苦心한 것은 거의 天性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매우 압축적으로 자신의 수집가의 면모와 조선적인 것 또는 민족과 관련된 관심이 거의 동일 선상에 놓여 있음을 말하고 있다. 글로 쓴 것을 수집하고 모으되 그 수집의 최고의 준거점은 “국가”와 “민족”과 관련된 것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계몽적인 작업을 통해 “신문화”를 열어 나가는 것이 어려워졌을 때 “문화”가 등장하는데 이 둘 모두를 실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수집”이라는 것을 최남선은 말하고 있다. 즉, 새로운 문물에 대한 열망과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열망은 사실은 한 쌍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중화되고 이중적인 것이지만 최남선에게 그것은 서로 자리를 바꾸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지평이 바로 “문화”다. 그리고 이 “문화”는 “수집”이란 모험을 통해 구체화되고 글쓰기를 통해 “문화”로서 정립된다. “내가 이 冊에 執筆할세 우리 國民에게 向하야 着精키를 願할 一事가 잇스니 그것은 곳 우리들이 우리나라가 三面環海한 半島國인 것을 許久間 忘却한 일이라”(<海上大韓史>)라고 말하며 “바다”의 개척을 요청할 때, 그것은 최남선에게 구체적으로 “바다”의 개방성을 “수집”해 구체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수집”에 근거한 비평적 시각의 확보와 연구 방법론의 구체화를 추구하는 작업을 글쓰기로 풀어내는 지점에서 최남선의 백과사전적이고 다양한 영역에 대한 탐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글쓰기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문화”이며 이미 최남선에게 “신문화”인, 새롭게 재규명되고 구축된 “조선적인 것”이다. 최남선은 우리의 손으로 조선학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조선학”은 근대적인 차원에 놓인 전혀 새로운 차원의 조선학이었던 것이다. 그의 모든 외적인 활동과 그에 따른 글쓰기, 백과사전적 지식과 그 지식을 통한 글쓰기는 모두 이러한 지평에 놓여 있다. 그의 모든 모험은 결국 그의 서재를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비평적 시선이 어디에 가닿아 있는지 우리에게 암시한다. 수집가로서 최남선은 바로 이 채워지지 않는 조망의 지평, “문화”, “민족”, “국가”라는 지평에 끊임없이 다가가려는 시도를 했다. 그것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으며 실패하기도 했고 언제나 수정될 것의 지평에 놓여 있었다. 그것이 물리적으로 책들의 집합으로 놓여 있을 때조차 그것은 늘 그 수정될 것의 지평을 가리키고 있었을 것이다. 비평, 그것은 형체를 가진 것에서조차 형체를 가지지 않는다. 아마도 최남선이 우리에게 근대적 비평의 시작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면 바로 이 지점을 알려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가 더욱이 ‘한담’이라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오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한가한 이야기를 통해서야만 이 부제하면서도 미끄러지는 지평의 차원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