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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理와 生理?唯物史觀의 生理的 不適應性
枯渴한 批判 精神?眞正한 價値判斷을 爲하여 文學의 領域?宗敎와 哲學과 文學의 基礎的 內容 文學과 思想?文學에 있어서의 思想性 虛無에의 意志?<黃土記>를 通해 본 金東里 本格小說論?小說의 正道와 그 究竟 批評의 論理와 生理?나의 批評文學觀 槪念의 空虛와 그 模糊性?白鐵 氏의 ≪朝鮮 新文學 思潮史≫를 中心으로 近代 朝鮮 小說 思想 系譜論 序說?우리의 近代小說이 試驗한 思想的 課業 救援에의 渴望?生의 創造로서의 文學 批評人의 悲哀?未知의 靑年 ×에게 해설 조연현은 엮은이 서경석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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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이 ‘究竟的인 生의 形式’을 志向하는 것은 事實이나 그것이 完成되는 瞬間 文學은 宗敎나 혹은 그 外의 哲學과 같은 다른 領域으로 戶籍을 옴기고 만다는 것이다. 文學의 領域은 어디까지나 ‘究竟的인 生의 形式’을 志向하는 過程에서만 成立되여질 수 있는 性質의 것이지 그것이 完成되면 文學과는 別個의 領域이 展開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文學과 思想」중에서 詩나 小說이 現實을 直接的으로 取扱함으로서 作品을 通하야 作者의 世界를 表現하는 것처럼 批評은 對象의 價値를 評定하는 形式을 通하야 自己의 世界를 表現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批評의 最初의 要求는 價値判斷에 있으나 批評의 究竟의 目的은 그러한 價値判斷을 通하야 自己의 世界를 完成해 가는 詩나 小說과 마찬가지의 價値 創造의 事業이라는 것이다. ---「批評의 論理와 生理」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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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조연현은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청년문학가협회’의 일원으로서 6·25전쟁 이후 김동리·서정주·조지훈 등과 더불어 남한 문단의 주류를 형성했으며, 국어국문학의 학제 속에 현대문학을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정립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유수 문예지를 주관하며 수많은 문인을 배출해 내어 문단의 흐름을 좌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수완가임과 동시에 일류 비평가였다. 당대 ‘면도칼’에 비유되었던 그의 비평은 좌파 계열 문학가들이 주축이 된 ‘조선문학가동맹’과 벌인 공방에서 순수문학파의 논리적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또한 우리 문학사에서 비평이라는 문학 형식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 최초의 비평가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조연현은 1938년 ≪조광≫의 독자 투고란에 시 <하나의 향락>을 게재하며 문학가의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후일 ‘시국의 급박함’ 때문에 비평가가 되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해방 공간에서 좌파 계열의 문학자들이 한국 문단의 선편을 쥐는 형국을 좌시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들과의 논리 공방을 수행하려면 ‘시’라는 예술의 한 형태보다 직접적 언어로 수행되는 ‘비평’이 더욱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지면에서 스스로 포기했던 ‘시’에 대한 미련을 드러내며, 밖으로는 ‘문맹’과의 논전을 통해 이러한 부채 의식을 일종의 소명 의식으로 전환하며 대립각을 세웠고 안으로는 자신이 몸담았던 ‘청문협’의 수장 김동리와의 대결 의식으로 전환하며 돌파구를 마련한다. ‘문맹’원 대다수가 월북하고 김동리마저 극복해 버린 1949년에 이르러서는 시나 소설에 비해 이차적으로 인식되는 비평이라는 형식의 열등성을 극복하기 위해 비평가로서 자신의 삶의 윤리를 발견하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