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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보는 문학적인 눈
이승과 저승 사이의 문학(文學) 시공(時空)의 초극(超克)과 삼국유사 소월과 恨 상징, 그게 뭔데 웃음이라는 코드 김환기?학이 되어 고향 하늘에 날아온 선비 한국 문학사 기술의 제(諸) 문제(問題) 소위(所謂), ‘인문학(人文學)의 위기(危機)’에 관한 몇 가지 단견(短見) 해설 김열규는 엮은이 오윤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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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그렇듯이 시인도 분명하게 ‘들린 사람’이다. 신이 들리듯이 시에 들린 사람이다. 그러면서 그는 남들도 들리게 한다. 시인은 스스로 들리면서 남들로 들리게 하는 사람이다. 그는 신들린 듯한 신들림을 이내 남에게로 감염시키는 사람이다. 여기서 시에 들린다는 것은 릴케처럼 시가 제 것 아닌 남의 것, 알 수도 없는 어느 다른 원천에서 오는 것임을 느끼는 그 행복과 경이를 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문학」중에서 동양화는 자연을 화폭에 담되 그 속에 유폐시키거나 가두어 두지 않는다. 화폭은 덫이 아니고 올가미도 아니다. 시에서 언어가 덫이 아니고자 함은 동양적 포에지가 오래 가꾸어 온 꿈이다. 동양화에 테(프레임)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양화는 자연과 사물을 화폭에 담으면서 숨 쉬게 하고 부풀게 한다. 확산하고 팽창하게 한다. 유한에 무한을 담고 제한에 영원을 깃들게 하는 것이다. ---「김환기?학이 되어 고향 하늘에 날아온 선비」중에서 그다음에 또 하나 우연을, 예컨대 한국문학사의 상당한 수가 조선조 소설의 우연을 얼마나 깔보고 능멸하고 업신여겨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코인시던스(coincidence), 컨티전시(contigency), 그런 것들이 문학작품에서 무시되어도 좋은 것입니까. 우리들의 인생이 얼마나 우연의 연속이고, 우연일수록 필연적인 의미를 더 가지고 우리들에게 뒤집어씌운다는 것을. 그들은 인생을 안 살아 본 걸까요.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우연을 깔보고. 더 걸작인 것은 환상이라든가 몽상 그런 것도 깔본 것입니다. 이거는 인문학 할 자격이 없다고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들의 상상력이라든가 환상을 무시하고 무슨 인문학자라고 그럴 것입니까. 사실에 달라붙는 것은 파리라도 달라붙습니다. 그래 가지고 환상을 깔보고, 꿈을 깔보고, 그러면 그런 식의 환상이라든가 우연이라든가 그 따위가, 그 너절한 것들이 어떻게 사라져 가는가를, 그러면서 근대사의 기점을 자랑스럽게 위로 가져가려고 들었습니다. 이건 명백한 진화론이고 이른바 발전주의 사관입니다. ---「한국 문학사 기술의 제(諸) 문제(問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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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김열규는 국문학과 민속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한국인의 원형적 삶과 전통 문화의 우수성을 풀어 보여 주는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며 한국학의 거장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한국민속과 문학연구≫(1971), ≪한국의 신화≫(1976), ≪한국문학사≫(1983), ≪삼국유사와 한국문학≫(1983)과 같은 전문연구서에서부터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1986),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1997), ≪고독한 호모디지털≫(2002), ≪노년의 즐거움≫(2009)과 같은 교양서에 이르기까지 70여 권의 책을 쓰며 국문학의 다양한 분야와 인문학 주제에 통찰력 있는 비평을 보여 줌으로써, 인문학자의 폭넓은 감수성과 지적 프레임에 경외감을 갖게 만든다. 그를 텍스트주의자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비평적 태도에 내면화되어 있는 20세기 문학이론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 비평적 원형을 통해 한국문학과 문화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평생에 걸쳐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열규 비평의 근간을 이루는 신화비평은 신비주의적이고 전통이라는 편향성에 기반하지 않고, 현대 문학이론의 언어적·구조적 객관성을 내면화한다. 그의 신화비평은 인류학, 종교학, 민속학과 깊이 관련되면서도 언어학과 심리학과도 연관되어 그 적용 영역의 다양성이 풍부하다. 롤랑 바르트의 확장된 신화 정의를 통해 랑그와 파롤의 구조적이고 의미론적 역동성에 주목하며 신화비평의 기호학적 차원을 점검하기도 하고, 뮈토스와 미메시스를 재개념화하며 핍진성을 추구하는 서사 장르의 시각에서도 신화비평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예술은 ‘원형’이라는 신화적 현상과 집단적 무의식이 낳는 창조물”이라고 정의하며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적 이해를 예술의 신화적 상상력까지 관련지음으로써, 신화비평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