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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시대의 문학과 밤의 작가들?현진건, 이상, 김승옥을 다시 읽으며
문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페르세우스 신화의 교훈과 문학의 미래 프로테우스와의 씨름과 문학의 길 찾기 문학과 이념의 경계를 넘어서?문학과 이데올로기 문학과 게임?리얼리티의 확장과 인식의 변화 ‘중급·중간 문학(Middlebrow Literature)’의 시대적 필요성과 새로운 가능성 오늘의 한국문학,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해설 지은이에 대해 해설자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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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가 공식적으로 발효된 1910년부터 시작된 한국 작가들의 ‘백 년 동안의 고뇌’는 2010년과 더불어 끝이 난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시대 의식은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될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바로 문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하고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 아닌 이가 있으리까?” 하고 <날개>에서 이상은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세상의 하고많은 문인 중에 본질적으로 소중한 것을 이미 빼앗긴 자 아닌 이가 있으리까?’ 하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빼앗긴 시대의 문학과 밤의 작가들」중에서 완벽한 낙원에서 살지 못하는 인간은 어쩌면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유혼을 중요시하는 문학은 모든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만 한다. 문학은 결코 특정 이데올로기를 위해 복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사회, 화목한 나라, 그리고 위대한 문학은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부터 벗어날 때,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문학과 이념의 경계를 넘어서」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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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김성곤은 미국 유학 중이던 1970년대 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낯선 사조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었다. 또한 지금은 너무도 익숙한 주제가 되어 버린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1980년대 중반에 역시 처음 들여와 국내의 학계와 문단에 작은 불씨를 던진 것도 바로 김성곤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20대 후반의 젊은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이제 막 도래했거나 곧 도래할 새로운 시대의 철학적·문화적 징후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그곳에서 자신이 접한 제3의 시각이 극단적 이념 갈등과 모더니즘/리얼리즘의 대립으로 점철된 모국의 문단 상황에 얼마간의 숨통을 틔워 줄 수 있을 것이라 적극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당시의 국내 학계와 문단으로부터 전폭적인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분단 상황과 군부독재 정권 시절에 그가 전하는 메시지들은 국내의 정치적 현실과 문학적 요구를 간과한 지적 유행이나 충분히 진보적이지 못한 공허한 담론으로 비쳐지기 십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혹들은 국내외 정세의 변화와 더불어 포스트모더니즘과 탈식민주의 논의가 활발히 진행된 1990년대에 들어와서도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성곤은 조금도 주춤하는 기색 없이 학계와 강단, 문단을 가리지 않고 20세기의 낡은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문화적 지형과 문학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펼치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그로서는 외래 담론의 단순한 소개나 수용이 아니라 낡은 틀을 부수는 도전이었고,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고자 하는 창조적 접합이자 비평적 실천이었다. 김성곤의 비평을 가장 굳건히 지탱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필경 그것은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포착 능력과 새롭게 다가오는 것에 대한 용감한 도전 정신일 것이다. 그의 에너지는 어쩌면 다음과 같은 판단의 어느 지점인가로부터 분출된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변화는 불안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변화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순간, 불안은 사라질 것이다.” 그의 언어는 많은 경우 새털처럼 경쾌하고 유연하며 막힘없이 씩씩하다. 하지만 그의 비평이 우리에게 시시각각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결단, 그것도 두려운 결단임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그간의 다양한 학문적 행보와 비평을 통해 그가 매번 외쳐 온 것은 우리 자신의 오랜 관습과 인식을 바꾸라는 것, 새로운 변화를 인정하라는 것, 심지어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서거나 아예 지우라는 것, 그리하여 매 순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창출하라는 버거운 주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 주문은 이제 더 이상 ‘주문’이 되지 못한다. 그의 주문은 어느새 우리의 삶 속에서, 현대의 급박한 흐름 속에서 선택의 대상이 아닌 필연 또는 결단의 영역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예언은 실현되었고 우리는 그의 예언을 출발점 삼아 새롭게 나아갈 길의 방향을 다시 찾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