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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을 지내가는 ?너스
文藝運動의 目的意識論 雜誌 編輯者가 본 朝鮮 文壇 側面史 文學과 苦惱의 饗宴 朝鮮語와 朝鮮文學 標準語와 文學 文學上 功利的 價値 如何 文壇 時評: 文壇을 너머선 文藝 ≪朝鮮文壇≫ ‘合評會’에 對한 所感 作家와 批評家의 辯: 評家側 學生과 文學 文學 硏究의 素材에 關한 再吟味(一) 創作 方法과 作家의 視野 쳬호 戱曲에 나타난 露西亞 幻滅期의 苦痛 <惡의 花>를 심은=뽀드레르論 文學上으로 본 李光洙 苦憫文學의 必然性 新傾向派의 文學과 그 文壇的 地位 最近 文藝理論의 新展開와 그 傾向 해설 박영희는 엮은이 허혜정은 |
朴英熙, 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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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闢≫을 標準 하고 말한다면 十五年이나 發展해 온 今日에 雜誌界가 아주 말 아닌 것을 보게 될 때 亦是 그때가 雜誌 ≪開闢≫의 黃金時代이였든 것이다. 定價 每 冊 五拾錢이고 特別號가 七拾錢이었는대 八千餘 部가 發行 旬日에 賣盡하는 形便이였으니 이것은 어느 便으로 본다면 敎會 關係가 크다고 볼 수 있으나 그것뿐만도 아니라 地方에를 巡廻해 보면 新聞 支局이나 書店치고 ≪開闢≫誌 없는 데가 없고 또는 내 目睹한 바이지마는 靑年들치고 外出할 때면 의레히 短杖 들듯이 이 ≪開闢≫을 옆에 끼고 다니였다. 그만큼 이 雜誌는 時代的 寵兒 노릇을 하였든 것이다. 그때의 版局으로 말하면 거리거리 동네동네의 各樣의 團體의 看板이 붙어 있었고 누가 言行이 不美한 點이 조금만 있어도 會 뫃은흔다 代表를 뽑는다 하고 야단법석을 하던 판이었는데 그 틈에서도 ≪開闢≫은 할 수 있는 대로 公正한 立場을 직히여 왔으며 오히려 그 옳다고 생각하는 便에 率先 加擔해서 輿論을 이리키였다.
또한 그때의 新聞은 그들을 當할 出版物이 없으매 때때로 專橫하는 일이 많었는데 이것을 民衆을 代表해서 敢히 反駁을 試한 것도 ≪開闢≫誌이었든 까닭에 젊은 사람들의 唯一한 伴侶가 되였든 것도 까닭 없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文藝 方面에서도 長久한 歷史를 가진 雜誌인 만큼 그 功積이 컸으며 지금 一家를 成한 大家들의 搖籃이였든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成長하였다, 구 해도 過言은 아니겠다. 雜誌 ≪靑春≫을 이여서 朝鮮 文學 運動에 功獻을 等閑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雜誌 編輯者가 본 朝鮮 文壇 側面史」중에서 |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박영희(朴英熙, 1901∼?)가 문학 활동을 시작한 1920년대는 근대의 충격에 가장 격렬하게 맞부딪친, 조선 문학의 세련화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박영희가 “조선의 문단에 온 詩의 黃金時代”이며 ‘詩의 世紀’라고 규정하고 있는 1920년대를 정점으로, 박영희는 대단히 빼어난 시와 소설, 평론 등을 다수 발표했다. 문학사적으로 박영희는 우리나라 낭만주의 제1세대라 할 수 있는 동인지 중심 시 운동의 연장 선상에 있다. 박영희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 동인지 ≪장미촌≫(1921)의 핵심 동인으로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장미촌≫은 비록 2호로 단명, 폐간되기는 했으나, 낭만주의라는 특정한 목표를 명백히 주장하고 나선 최초의 시 전문지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922년에 낭만주의를 표방하고 간행된 동인지 ≪백조≫는 그 동인의 대부분이 ≪장미촌≫의 동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우리 현대시사의 낭만주의를 더욱 의식적으로 치밀하게 추구하며, 1920년대 조선 문단에서 전위시 그룹으로서 정체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백조≫ 동인들 중에서도 박영희, 홍사용, 박종화, 이상화는 ≪백조≫ 3호까지 작품 발표를 거르지 않았던 핵심 동인이었는데, 특히 박영희는 여느 동인과 달리 이론에 가장 강한 동인이었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 ≪백조≫ 동인들은 창작에만 주력한 것이 아니라, 사상지로 ≪흑조≫를 병행 발간하여 문예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작업들을 병행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대단히 조직적인 문학 운동을 펼쳤다. 이 책 박영희의 1920년대 평론에 초점을 맞추면서, 거기서 엿보이는 낭만주의적 색채와 프로문학으로의 사상적 전환의 의미를 논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