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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學的 藝術批評의 發展
外國 文學과 朝鮮 文壇 푸로 文壇의 危機 文學 遺?에 對한 맑스主義者의 見解 ≪海外文學≫ 創刊 前後 非常時 世界 文壇의 新動向 앙드레·지이드의 人間的 放浪 朝鮮 演劇 史上의 劇硏의 地位 行動 精神의 探照 蕭條한 一九三五年의 評壇 朝鮮 演劇 運動에 對한 一小論 貧困한 精神 狀態 評壇 一年의 回顧 朝鮮 映畵人에게?素朴한 啓蒙的 數言 國際 文化와의 交流 問題?佛文學·映畵와 朝鮮 大戰이 나흔 文學 文學의 ?事詩 精神 自由의 擁護?自由主義 批判에 對하여 民族文學 精神의 再認識 解放 記念 詩集을 내며 佛蘭西 文化의 近代的 性格 散珠片片?나의 文壇 回顧錄 散珠片片?續·나의 文壇 回顧錄 해설 이헌구는 엮은이 차선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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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特히 關心하며 注意하는 바는 어떠한 態度와 立場에서 過去의 外國 文學(自國의 文學에 있어서도 同一하다)을 鑑賞 批判할 것인가이다. 다만 漠然하게 文學은 人生 生活의 그 어느 反映이라거나 그 어느 階級人의 心理 描寫라는 外部的 感官만을 通해서 볼 것이 아니요, 더 깊이 그 속에 具現된 人間 心理의 緻密한 描寫·呼訴·엑스터시와, 또는 그때 社會 人間의 對外部的(支配階級 또는 被支配階級) 活動 如何를 感受할 수 있는 藝術的 感興의 所持者인 同時 그 自身이 그 作品, 또는 그 思潮를 鑑賞·批評하는 데 있어서 恒常 自己의 生活하는 社會와의 關聯을 忘却하지 않는 人間이어야 할 것이다.
---「外國 文學과 朝鮮 文壇」중에서 經濟的 逼迫에서 生活의 機會를 喪失한 수많은 人間, ? 民衆이 있는 反面에 生活 能力 以上으로 物質的 享有에 專進하려는 現象이 나날이 늘어 가는 傾向이 一部에 擡頭되어 온다. ? 부르조아의 安逸된 物質의 世界에 對하여 賢明하여야 할 인텔리겐차가 그 地位를 轉換시키려는 燥急 속에 苦憫하고 있다. ---「行動 精神의 探照」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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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국민문학파의 민족문학과 카프의 계급문학으로 양분되어 있던 1920년대 조선 문단에 당당하게 등장한 ‘해외문학파’, 그 중심에 비평가 이헌구가 있었다. 해외문학파는 1926년 동경에서 외국문학연구회가 결성되고 이듬해 1월에 ≪해외문학≫이 창간되면서 활동의 근거지가 마련되자 문단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했다. 특히 이헌구는 1932년 1월 ≪조선일보≫에 <해외 문학과 조선에 있어서 해외 문학인의 임무와 장래>(<외국 문학과 조선 문단>로 개제)를 발표해 임화 등 카프 문인과 ‘해외문학파 논쟁’으로 설전을 벌이며 비평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카프 문인은 ‘해외문학파’를 한낱 외국 문학을 기계적으로 소개하는 중개상 노릇이나 하는 반동적 부르주아에 불과하고 더욱이 어떤 주의나 사상도 없는 조직이라고 비난했지만, 정작 ‘해외문학파’가 내건 명분과 사상은 국수주의에 빠진 국민문학과 서구주의에 편향된 카프문학을 모두 비판하며 민족문학의 주체성과 세계화를 도모하는 길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헌구는 당대에 이미 ‘해외문학파’의 이론적 대변자로 활약했지만, 이후 문학사적 평가에서도 ‘해외문학파’의 유일한 이론가로 이름을 남겼다. 여기서 우리는 ‘해외문학파’의 대변인으로서의 이헌구와 독자적인 비평가로서의 이헌구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즉 이헌구는 ‘해외문학파’의 사명과 이념을 공유하면서도 남다른 비평적 입장을 견지하며 차별화되는 면모를 보여 주었다. 문학예술의 사회적 성격과 역할에 두드러진 관심을 표명한 것이다. 그는 외국 문학작품을 수용하여 읽고 감상할 때 독자가 생활하는 현실과의 관련성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문학예술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면서 근본적으로는 민족문학 건설의 주체적 태도를 견지하기 위함이었다. 외국 문학 연구자로서 이헌구는 외국 문학에 대한 지식과 그 번역이 민족문학의 토양을 두텁게 하는 교양이 된다고 여겼다. 교양주의자로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교양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 행동주의를 표방했다. 문학의 사회적 책무는 교양으로서의 지식이나 번역의 수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행동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이헌구가 외국문학연구회를 비롯하여 영천소년회, 아동예술연구회, 백광회, 색동회, 신흥과학연구회, 극예술연구회 등 수많은 회합을 조직하고, 세계아동미술전람회나 연극 공연을 기획하는 등 대중적 문화운동에 열성적으로 뛰어든 것은 바로 ‘행동하는 교양’을 몸소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