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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文學上에 나타난 戀愛?戀愛와 文藝의 新舊
濁流에 抗하야?文藝的인 詩評 浪漫的 精神의 現實的 構造?新創作 理論의 正當한 理解를 爲하야 朝鮮的 批評의 精神 技巧派와 朝鮮 詩壇 主體의 再建과 文學의 世界 本格小說論 어떤 靑年의 懺悔 新文學史의 方法 現下의 情勢와 文化 運動의 當面 任務 해설 임화는 엮은이 이형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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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苦悶이나 希望, ?嘆, 또는 貧窮의 記述이나, 否定 面의 暴露 等에서 우리의 文學은 解放되면 實로 巨大한 歷史的 實踐的 意義를 갖는 人間的 形象과 事件 實際의 生活보다도 더한層 ‘따이나믹’한 骨格을 가진 大文學의 길을 向하여 徐徐한 그러나 正確한 武步를 옮길 것이다. ---「主體의 再建과 文學의 世界」중에서
文化에 있어서 모?든 反人民的인 것과의 鬪爭 이것이 또한 文化 統一戰線의 鬪爭 目標가 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이리해야만 文化 統一戰線은 名目만이 아니라 實質에 있어 推移해 가는 새 情勢와 呼吸을 가치할 수 있으며 文化建設中央協議會의 組織도 거기에 適應하도록 새로운 基礎 우에서 再組織되어야 한다. ---「現下의 情勢와 文化 運動의 當面 任務」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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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임화가 비평 활동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내세운 것은 우리 문학의 근대성의 문제였다. 그는 1926년 1월 1일에 발표한 처녀 평론 <근대문학상에 나타난 연애>에서 근대문학의 요건으로 개인의 내면 문제를 초점화하고 있다. 그가 먼저 관심을 둔 비평 이론은 전위적 모더니즘에 속하는 다다이즘·미래파·쉬르레알리슴 등이었다. 특히 다다이즘에 대한 관심이 컸는데, 그 이유는 문학의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혁명적 요소 때문이었다. 다다이즘 이후 임화의 비평은 계급주의문학론으로 나아간다. 모더니즘론에서 계급주의문학론으로의 이행은 임화가 비평가로서의 전문성을 갖추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는 계급주의문학론을 통해 감상 비평과 해설 비평을 넘어서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비평을 추구하게 된다. 임화의 계급주의문학론은 카프라는 단체에서의 활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다. 그는 1926년에 카프에 가입하여 1928년 박영희의 비호 아래 중앙위원이 되고, 1932년에는 불과 24세의 나이에 윤기정의 후임으로 서기장이 된다. 그가 카프 활동에 열성적이었던 시기에 발표한 <탁류에 항하야>는 계급문학론의 볼셰비키화에 대한 옹호가 또렷하다. 임화의 비평은 1930년대 초반 카프 맹원들에 대한 검거 사건이 일어난 이후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는 단순한 계급주의를 넘어서 혁명적 낭만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본격적으로 수용한다. 그의 낭만주의에 대한 인식은 <로맨티시즘의 현실적 구조>에 잘 드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낭만적 정신이 사실주의문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낭만주의는 사회주의혁명이라는 이상을 지향하는 것과 관련되는 것이다. 낭만주의와 연계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임화의 인식은 <주체의 재건과 문학의 세계>라는 글에 드러난다. 그는 이 글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사회의 어두운 부면을 폭로하는 비판적 리얼리즘과는 다르게 “거대한 역사적 실천”과 관련된다고 주장했다. 광복기 임화 비평의 핵심어는 인민 혹은 민족이었다. 그는 <민족문학의 이념과 문화 운동의 사상적 통일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人民과 극히 類似한 槪念으로 國民, 民族, 民衆이란 말이 있다. 國民이란 簡單히 말하여 一定한 國家에 屬한 民衆의 總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여 인민의 범주를 포괄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당파적 계급성을 뛰어넘어 민족적 대동단결을 강조하는 임화의 생각이 적실하게 반영되어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채롭고 화려했던 임화 비평의 문학사적 의의는 우선 실천 비평 내지 현장 비평의 전문가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당시 문단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기동성이 강한 현장 비평가로서의 존재감이 뚜렷했다. 또한 그는 근대 비평의 이론적 심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비평가였다. 다다이즘, 낭만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등의 이론(이념)을 비평에 도입함으로써 인상 비평이나 감상 비평의 차원을 현격히 넘어서는 본격 비평을 실천했던 것이다. 덧붙여 그가 정통 사회주의 비평가이자 민족주의 비평가였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계급과 민족이라는 모순 개념을 아우르면서까지 이 땅에 근대 비평을 정착, 발전시키고자 온갖 열정을 다 바친 비평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