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가 된 이후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선배 의사들의 진료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공의 때는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선배의 진료 모습을 곁눈질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그때는 그것이 특권인 줄도 몰랐지만. 어느덧 십수 년이 지나고 나니, 그 특권이 새삼 그립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는 선배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훌륭한 교과서였으니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선배의 진료실을 들여다보는 행운을 되찾았다.
저자인 고병수 원장과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그러다 2018년, 내가 일하고 있는 살림의원에서 주치의 등록을 기반에 둔 일차의료 사업을 직접 만들어 보려고 했을 때 가까워졌다. 당시 고병수 원장은 어떻게 주치의 제도를 운영하면 좋을지 구체적으로 조언을 해 주셨는데, 그 조언들은 현장에서 먼저 길을 걸어온, 아니, 길을 내어 본 사람만이 해 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의정 갈등을 겪으며 우리는 의대 정원을 둘러싼 논쟁이 결국은 의대 입시를 넘어 한국 보건의료 제도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 또한 의료 제도를 기획하는 과정에는 의료인이나 정치가, 보건의료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의료를 이용하는 국민 전체가 같이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이제 역사적인 주치의 시범 사업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니 고병수 원장의 《동네의사로 살아보니》는 딱 알맞게 나온, 지금 당장 필요한 책이 아닌가? 의료인들에게도, 주치의를 갖고 싶은 국민에게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제목 그 자체에 있다. ‘동네의사로 살아보니.’ 이 생활감과 생생함. 그런데 동시에 느껴지는 통찰의 고집스러움이라니! 이 책에는 단지 동네의사의 현장 기록만 담겨 있지 않다. 오랫동안 일차의료의 현실을 살아 내고, 그 나아갈 길을 고민해 온 저자의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임상의사이면서, 현장 연구자이기도 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이었다가, 그걸 구현하려 애쓰는 실천가이기도 하다. 이런 스스로의 정체성을 모두 담아 ‘동네의사’라고 표현하시기예요?
한 의사가 한 마을을 오래 지키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 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동네의사로 살아가고 있는 의사라면, 아마도 어느 순간 자신의 진료실과 환자들이 책 속 의 내용과 겹쳐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동네에서 자라나고, 누군가는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며, 또 누군가는 동네에서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 모든 삶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 결국에는 일차의료라는 것을, 오랜 세월 동네를 지켜 온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된다. 동네의사. 의사면허만 있다면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