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빈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명제들이 나란히 서는 역설을 깊이 이해하는 시인이다. 그가 시인이면서 사진작가이고 강사이면서 타로마스터이기에, 여러 몸이 되어 분할된 일들을 동시에 꾸려나가 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통찰이 가능했던 것일까.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바쁘게 살아가는 일과 느리게 죽어가는 일, 열렬히 사랑하는 일과 맹렬히 미움받는 일을 그가 동시에 감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당할 뿐 아니라 잔망스럽게 즐긴다. 물방울이 맺히듯 가뿐한 표정으로 산뜻하게 울고 꼬박꼬박 웃는 강혜빈 시인을 따라가면 왠지 허물어지는 세계가 마냥 두렵지 않다. 우릴 기다리는 게 빼곡한 멸망만은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