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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문정과 다마고치 • 7
즐거운 나라 • 41 랠리 • 77 살아 있는 당신의 밤 • 111 긴 하루 • 141 수색기 • 177 별개의 문제 • 211 스위트 홈 • 245 자라는 자라서 • 277 해설 | 성현아(문학평론가) 무덤덤이라는 무덤에서 끌어올린 관 • 311 작가의 말 • 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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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쓴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쓰고 싶었다.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붙드는. 밀치는 게 아니라 당겨 안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제약과 무례한 질문을 돌파하는 방식으로. 힘을 선도하는 힘. 강함을 지향하는 강함을 갖고 싶었다. 문정에겐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는 괴력이 필요했다.
--- p.39 「괴력문정과 다마고치」 중에서 만약 내가 작물이었다면 어땠을까. 터질 듯이 부풀어오른 배추나, 팔뚝만큼 굵은 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기어이 가지를 꺾고 마는 탐스러운 열매였다면. 마트에서 유난히 크고 실한 것들을 기쁘게 골라 담는 사람들의 마음이 내게도 향했을까. 길거리 뚱뚱한 고양이들의 펑퍼짐한 엉덩이를 귀엽다며 두드리는 손길처럼, 수령이 수백 년 된 보호수의 웅장한 몸집 앞에서 경건해지는 마음처럼, 커다란 것을 향한 당연한 환대가 내 몸에도 찾아와줬을까. 크고 실한 것을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기는 마음이 분명 존재하는데, 오직 ‘사람의 몸’만은 왜 예외가 되는 걸까. 왜 사람의 살만은 생명력이 아닌 탐욕과 미련이라 불리는 걸까. --- p.69 「즐거운 나라」 중에서 희원은 주현과 주고받았던,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던 랠리를 떠올렸다. 끝없이 팽창되던 그 기분. 내가 보내면 저쪽에서 반드시 받아낼 거라는, 서로를 향한 믿음. 호흡, 박자, 타이밍이 서로를 통과하여 하나의 기관처럼 움직이던 감각. 두 사람은 같은 리듬 안에 있었다. 희원은 그게 좋았다. 누군가와 이렇게 같은 흐름 안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 p.92 「랠리」 중에서 나는 그제야 그가 왜 그토록 생의 흔적에 집착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자연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소리들은 선배의 몸안에서 고이지 않고 흐르며 선배를 채우는 무엇이 될 것이었다. 근육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는 살이 되어줄 것이었다. --- pp.134-135 「살아 있는 당신의 밤」 중에서 빗발처럼 거세게 흩날리는 눈 때문에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스타렉스는 눈발을 가르며 앞으로, 앞으로 힘있게 나아갔다. 안전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유연하게,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빨리 갈 수도 있었지만 병철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것이 품위 아닌가. 가끔씩 기분 내듯 부리는 게 아니라 끝내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 p.174 「긴 하루」 중에서 가끔은 어떤 사건을 통해 자신의 삶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끝난 줄 알았던 무대에 새로운 막이 열린다면. 그런 열망을 품을 만큼 애영은 자신에게 소진될 무엇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었다. 고된 하루를 보내도 도무지 닳아 없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 p.184 「수색기」 중에서 난 별이가 아빠 닮았으면 좋겠어. 아빠는 용감하거든. 이 세상은 용감하거나 미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렵거든…… --- p.241 「별개의 문제」 중에서 버렸는데 왜 버려지지 않을까. 나는 지금 여기 있는데. --- p.260 「스위트 홈」 중에서 백 년이란 어떤 시간일까. 앞으로 딱 사십 년만 더 버티면 닿을 수 있는 시간. 마음먹는다고 해도 누구나 당도할 수는 없는 시간. 오정규는 그 시간을 버티고 버텨서 윤하나를 만나면 알려주고 싶었다. 자라는 정말로 계속 자라더라고. 지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여전히 강한 채로 그렇게, 한 세기를 다 살아내더라고. 그리고 자신 있게 다음 세기를 살아갈 기세였노라고. --- p.308 「자라는 자라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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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내면 저쪽에서 반드시 받아낼 거라는, 서로를 향한 믿음”
마찰하는 우리 사이에 오가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주고받음 『랠리』 속 인물들은 상대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무언가를 교환한다. 그 무언가란 순간의 감정이나 기억이기도, 더 나아가 생과 죽음에 관한 감각이기도 하다. 마치 자력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때때로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작용을 느끼며 그를 통해 비로소 온전한 ‘나’를 구축해나간다.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자아를 확립해나가는 이 과정을 박민경은 환상적인 설정을 경유하여 서사화한다. 소설집의 초반부에 배치된 작품들에서는 특히 강인한 신체를 타고난 여성에 관한 각별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정체불명의 괴력을 가진 소녀 ‘문정’이 등장하는 「괴력문정과 다마고치」와 계속해서 자라나는 비대한 몸을 가진 여인 ‘신나라’를 다루는 「즐거운 나라」는 여성이 좀처럼 지닐 수 없다고 여겨지는 ‘힘’을 초인적인 차원으로 확장해 증폭시킨다. 두 인물은 도드라지는 신체적 특성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배척됨에 따라 가진 힘을 ‘봉인’하기로 결정하지만, 문정은 기를 갈고닦으면 만물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아버지 ‘장원’과의 수련을 통해, 신나라는 산속에 자신만의 세계를 “건국”(72쪽)하고 환각 속에 빠져드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힘을 내재화하는 법을 터득하고 주변에 파동을 일으킨다. 한편 이어지는 소설 「랠리」 속 ‘희원’은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몸이 모래가 되어 부서진다고 느끼는 ‘입자성 해리’를 앓게 되고, 문득 전 연인과 주고받았던 탁구 랠리를 떠올린다. “호흡, 박자, 타이밍이 서로를 통과하여 하나의 기관처럼 움직이던”(92쪽) 그 감각은 타인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일의 가치를 일깨우고, 비슷한 처지인 ‘나미’와 교감하도록 이끈다. 이렇듯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박민경 소설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주제의식이다. 상대가 곁을 떠난 뒤에도 그와 나누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세상을 등진 전 연인이 보내오는 생전의 GPS 신호로(「살아 있는 당신의 밤」), 심근경색 환자인 아내를 살려준 의사에게 보답하기 위해 어느 남편이 선물한 자라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순환하며 내보이는 강인한 생명력으로(「자라는 자라서」) 형상화된다. 한곳에 멈추지 않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끊임없이 왕복하는 삶의 흐름을 박민경은 가까운 이의 사연을 들여다보듯 친근하고 섬세한 필체로 속속들이 기록한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제약과 무례한 질문을 돌파하는 방식으로”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 삶이 흐르는 방향을 표현하는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노화’일 것이다. 박민경은 「긴 하루」와 「수색기」 속 노령 인물들의 생에 주목하면서, 한때는 누구보다 빛났을 그들의 일상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긴 하루」의 ‘병철’은 요양원에서 송영 차량 운전사로 일하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해고 압박을 받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좋은 일이 남아 있을 거라는 낙관”(173쪽)을 품고서 자신이 아끼는 주변 존재들의 안부를 부지런히 살핀다. 「수색기」의 ‘애영’ 역시 고령임에도 매일 아침 미화팀으로 출근하고 세상에 뒤처지지 않으려 디지털 수업을 듣는 등 “시니어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184쪽)을 이수하기 위해 분투한다. 젊은 세대와 공존하려 부단히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시시각각 ‘노망난 노인네’ 취급을 당하는 일상에는 낭패감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들이 낙담하기에는 여전히 활기차며 때로는 낙천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박민경은 ‘노인’으로 통칭되는 개개인의 삶을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되살린다. 박민경의 인물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스스로가 필요하지 않다는 감각, 더는 효용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경계한다. 이는 시시각각 위협해오는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방책이기도 하다. 「별개의 문제」와 「스위트 홈」에 이르러 이 같은 자기방어는 보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된다. 「별개의 문제」 속 ‘병주’가 새로 차린 자신의 피자 가게에 악질적인 별점 테러를 일삼는 상대를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스위트 홈」의 ‘주원’이 알코올중독자 엄마를 저버리고 겨우 독립해 얻은 집에 불쑥 찾아와 자신의 평화를 위협하는 동생 ‘문영’을 해하겠다고 결심할 때의 무모한 용기는 “‘살아볼 만한 삶’을 꾸리려는 이의 눈물겨운 발악”이자, 그를 위해 “‘나’ 아닌 것들을 관에 밀어넣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해설)에 해당한다. 타인과 교류하는 삶의 긍정적 측면에 주력했던 앞선 작품들과는 또다른 결로, 좀처럼 낙관을 품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박민경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위기와 맞닥뜨렸을 때 한 인간이 되레 품게 되는 뜨거운 갈망과 동력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각기 다른 성격과 사연을 가진 이들을 이토록 바지런히 호명하는 시도는 인간을 향한 작가의 근본적인 애정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박민경은 각자의 고난에 휩쓸려 존재 가치를 잃어가는 인물들의 안에 저마다의 열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끈덕지게 조명하고, 그들이 세상에 남기는 흔적들을 조각조각 모아 리듬감 있게 이어붙인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신만의 활로를 발견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내부에 잠재된 열기가 멈춰 고이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도록 이끈다. 절망과 비관을 딛고 불쑥 움트는 활력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지치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여전히 강한 채로” 그렇게 “다음 세기를 살아갈”(「자라는 자라서」) 수 있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말 오래 갸웃거리고 서성이며 쓴 아홉 편의 소설을 묶었다. 잘 늙는 몸과 잘 늙지 않는 마음, 여전한 것과 여전하지 않은 것, 그리고 너와 나에 대한 이야기다.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그래도 소설에 대해 아는 게 딱 하나 있다. 소설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일이라는 것.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과 만나기 위해 썼다. 닿았다 드디어. 2026년 여름 박민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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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리’란 탁구나 테니스 등에서 양쪽의 타구가 이어지는 일을 말한다. 우리말 순화어로는 ‘주고받기’가 제시된 바 있다. 경기장에서의 주고받기는 즐겁지만 마음은 공처럼 둥글지 않다. 주고 싶어도 줄 수 없고 받기 싫어도 받아야 하며, 휘두르고 보면 번번이 헛손질이다. 차라리 어떤 이들은 ‘인생은 혼자’라는 말을 택한다. 그러나 그 또한 희망사항일 뿐, 우리는 사회라는 경기장을 떠날 수 없고 네트 너머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박민경의 소설은 도망치지 않는다. 맞은편에 사람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게임일지언정 최선을 다해 주고받는다. 이렇게나 기꺼이 랠리-하기. 삶을 살고 사람을 아끼는 작가만이 그럴 수 있다. - 김기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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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리듬”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느끼며 “끝없이 팽창”되는 일은 살아 숨쉬는 타자와 함께 호흡하며 상호 소통하고 있음을 환기하는 일이다. 이는 감정을 억제하고 타자를 혐오하면서 주어진 자기 몫을 겨우 해내어 물리적인 죽음만큼은 모면하는 소극적인 생존과는 다르다. 나를 열고 나가 자기 바깥의 생과 연결되고, 타자와 무언가 주고받음으로써 살아볼 만한 삶을 함께 도모할 수 있음을 경험하는 ‘랠리’이다. (…) 박민경의 소설에 치열하게 기록된, 살 만한 삶에의 절실한 갈망들을 생각한다. 하루 단위로 파편화된 생존이 아닌 자기만의 서사가 있는 삶을 기다리며 죽은 채로 버텨온 우리에게 그러한 낙관이 깃들길 바란다. -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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