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영의 첫 시집을 읽고 나면 결코 내가 가져 본 적 없던 지난 계절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 속에서 나는 엎질러진 물처럼 쏟아진 여름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 있다. 하얀 병실에 누워 네가 먹고 싶다던 초콜릿 하나를 끝내 사 주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하고, 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 옛 동기의 불가해한 죽음을 추억한다. 그 장면들의 미감 taste 은 연유도 모른 채 “서로의 것을 받아먹었”(「평양냉면 먹기」)던 맑은 시절의 향취이기도 하고, 오랜 시절 동안 “뒤엉켜 사랑을 나누”고 파먹다 서로를 상처 입힌 썩은 “귤”(「귤의 알고리즘」)의 내음이기도 하며, 마음이 가난하고 쓸쓸한 내가 “한입 베어 물기에 딱 알맞”은 “말캉한 자두”(「썸머타임」)와도 같은 저녁의 식감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이처럼 다채로운 감촉과 향기들로 그 시절의 풍경을 가득 채운다. 평소였다면 이만큼의 서술로 족하겠으나 어째서인지 나는 정보영의 시집을 손에서 쉽게 내려놓기 어려웠다. 추천사라는 명목 아래 시에 덧붙는 췌언들을 자꾸만 썼다 지웠다. 아마도 그것은 이 작품들을 아름다운 활자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 탓일 것이다. 그의 젊음과 병, 사랑과 이별, 좌절과 웃음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나는 그가 꾹꾹 아껴 둔 첫 발화를 실로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그의 이번 시집은 어디로 조문을 가야 할지 모르는 우리의 지난날과 “밤마다 몰래 눈물을 흘린”(「세상의 모든 안녕」) 슬픔의 시간들이 그 누구보다 열렬히 시를 사랑했던 한 청년의 세월과 겹쳐 유달리 아름답고 서정적인 무늬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