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 애가 내 앞에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게 존재 하고 있다는 감격에, 나는 급작스럽게 고백을 하고 말았다. "내가, 너 많이 좋아했으니까." 역시나 어설프고 굼뜬 고백이었다. 그때쯤 커다랗고 뜨거 운 해가 정원의 등 뒤로 환하게 떠올랐다. 한 시간 후면 정원 은 바다가 보이는 도시로 떠나게 될 것이었다. 그때 정원이 말 했다. "사실 나도 너를 좋아했어."
내가 묻자 이석진은 그건 비밀이야! 소리 지르고 저 멀리 달 려갔다. 이석진의 묵직한 가방에서 온갖 것들이 부딪치며 요 란한 소리를 내었다. 나는 이석진이 그렇게 한참 달려갈 때까 지 내버려두었다. 이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해야지 다짐하면 서. 문득 멈춰 선 이석진이 뒤돌아 내게 손짓했다. 나는 되도 록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