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은 시인의 관찰에서 각자의 몫을 부여받는다. 시인이야 욕심이 없으니 오롯이 발견된 이면들은 편 편의 시편들 차지다. 가시거리도 방대하여 빨래의 풍경에서부터 천체의 운행에까지 시인의 눈썰미가 미친다. 세모꼴의 감자 씨앗이 동그랗게 되기까지 땅을 설득했다는(「대답」) 추측의 관찰이 어디 쉬운 일인가. 명징과 상상이 교대하는 그의 세계와 발견해내는 역설들은 상처하나 입지 않고 기꺼이 자신들의 처지를 자리바꿈 해 주는 것이다. 역지사지의 전령傳令으로 규정하는 일에는 미천微賤과 고귀가 따로 없다. 그러함에는 줄기찬 시인의 건각健脚이 뭇 사물을 위로하듯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첫 시집이라 하기엔 철학적 사유가 편 편에 넘친다. 이는 수많은 혼종들 사이를 상담하는 촉매觸媒의 자세를 시인은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뼛속 깊숙이 끊어진 곳이 많았는지/뚝뚝 물을 끊어서 버리는”(「맑은 날을 매다」) 그런 맑은 날 하나 허공에 매겠다는 시인의 사유건조법이 유독 청명한 가을, 이도훈 시인의 첫 시집에 축하를 보낸다.